가요창작 단절 부르는 리메이크, 제살 깎아먹기

[강태규의 카페in 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04.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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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음악이 범람하고 있다. ‘전진을 두려워하는 고갈된 창의성’이라는 폄하와 성토를 피하기가 어려운 것은 보다 나은 음악 창작을 저해하고 우려먹기라는 비난의 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려 속에서도 리메이크 음악이 최고의 인기와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현실은 창작자와 대중의 도덕적 가치관 동반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리메이크 관행이 가요의 진정성 저해라는 화두를 차치하고서라도 불온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시초에 있다. 가요 불황이 시작되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일시적인 일환으로 시도되어 인기를 얻자 붐을 타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이러한 리메이크 곡의 인기와 성공을 두고 새로운 가요계 트렌디를 제시하고 있다는 소리를 내놓기 시작하자, 가요팬들마저 아연 실색하고 있다. 치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최근, 이승기가 불러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다 줄거야'는 1999년 MBC 미니시리즈 드라마 '햇빛 속으로' 주제곡이었다. 8년 전 조규만의 2집 음반에도 수록돼 수 십 만장을 판매한 베스트셀러를 오늘 다시 끄집어냈다. 가수 박혜경도 마찬가지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가 원곡이다. 이곡은 박혜경 뿐만 아니라, 이수영, SG 워너비가 릴레이 리메이크 대열에 이미 합류한 바 있다.

최근 음반을 발표한 김광진의 더클래식 ‘마법의 성’ 역시 리메이크 단골 메뉴였다. 그동안 에즈원, 동방신기, 핑클, 서영은이 그 전철을 밟았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은 신화, 유리상자, 마야가 다시 불러 발표했다.

손을 꼽자면 밤을 새워야 할 만큼 리메이크 곡은 그동안 봇물 터지 듯 생산되었다. 원곡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요즘의 리메이크 곡들이 창작곡으로 인식되는 것도 별반 무리는 아닐 듯하다. 음반의 소품형식으로 새롭게 편곡돼 가수의 색다른 면면을 보여주는 차원도 아닌 타이틀곡으로 버젓이 내세워 줄기차게 방송에 노출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더 놀라운 일은 요즘의 리메이크 곡이 국내의 히트곡도 모자라 해외로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국내 최고의 음원 수익을 내고 있는 인기곡이 해외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사실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표절보다야 낫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는 이를 조롱하고 있다.

리메이크는 사실 상당히 매력적인 작업이다. 당대 히트곡을 재해석해 새로운 감성을 담은 곡이 탄생되는 일은 반가운 일이며 의미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비교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곡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가요사에서 리메이크곡이 원곡의 느낌을 뛰어넘는 경우는 찾기 힘든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다. 그런 점에서 창작의 고통없이 쉽게 작업해서 인기와 부를 누리겠다는 속셈을 피하기도 어렵다. 결국 제살 깎아먹기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극소수지만 40년 음악인생을 걸어온 조용필을 필두로 이적, 토이, 김동률, 정재형, 김광진 등 우리 가요계는 아직 끊임없는 창작과 음악적 진정성을 담은 음반을 발표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이들은 대중가요 창작의 부재와 ‘보는 음악’ 중심의 기형구조로 선회해 다양성과 진정성을 잃고 길을 헤매는 2000년대 음악시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착실하게 창작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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