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 변강쇠, 판타지 같은 한국 남성미의 상징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4.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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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나 역사적으로 ‘섹스심벌’은 존재해 왔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수도 없이 만들어졌던 스페인 귀족청년 돈 주앙이라면 우리의 머슴청년 변강쇠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지금 30, 40대 관객들에게 변강쇠는 판타지와도 같은 남성미의 상징이었고, ‘변강쇠처럼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어른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게 만들던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많은 남자들이 물을 일부러 벌컥벌컥 들이켜서라도 소변줄기 소리를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야 편안하게 잠이 들곤 했다.

변강쇠의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소리 사설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에 옹녀와 함께 등장하는 변강쇠 캐릭터는 음란하고 노골적인 묘사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시대배경을 감안해 분석해 보자면, 변강쇠의 시작은 사회계층의 분화 속에서 빈농층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울분이었다. 바로 '가루지기타령'은 그러한 서민들의 일상을 넘치는 성적 해학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 관객들에게 변강쇠가 익숙한 것은, 이두용 감독의 해학이 넘치는 '뽕'(1986)을 시작으로 한참 유행했던 사극 에로영화 붐 때문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로부터 몇 달 뒤 만들어진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1986. 사진)는 '뽕'에서도 ‘삼돌’로 출연했던 이대근이 변강쇠로 출연해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전까지 김효천 감독의 '실록 김두한'(1974)을 위시해 중절모 쓰고 가죽장갑 낀 김두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이대근은, 이때부터 넉넉한 머슴(혹은 건달) 품새에 늘 입을 벌리고 갈지자를 걷던 변강쇠 캐릭터로 단숨에 각인되기 시작한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마님!” “아니 이런!”같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던 그의 모습은 돈 주앙의 세련미와는 완전히 극과 극이었지만, 사실상 장르영화가 전무했던 당시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코믹 캐릭터이기도 했다. 모든 묘사는 과장돼 있어서,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고, 소변을 볼 때면 천지가 진동하는 폭포수 소리가 나며, ‘후린’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그의 ‘대물’을 잊지 못해 밤마다 몸을 배배 꼰다.


하지만 변강쇠가 한국 성인부부들에게 미친 폐해도 컸다. 변강쇠는 언제나 ‘전희’ 과정을 생략하고 돌진하는, 그러니까 실제 ‘명랑’ 부부생활을 위해서는 결코 닮아서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개봉한 ‘애무의 황제’ 미키 루크 주연 '나인 하프 위크'와 비교해 한없이 초라해 보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좀 비약하자면 변강쇠는 삶의 여유도 없이 서둘러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근대화의 또 다른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이대근은 '가루지기'(1988)에서도 변강쇠를 연기했지만, 엄종선 감독의 ‘정통’ 속편들에서 변강쇠를 연기한 주인공은 바로 김진태다. 당시 수많은 에로마니아들은 1편의 ‘옹녀’ 원미경이 이대근을 배신했다며 씁쓸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고 보면 그것도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이제 곧 봉태규 주연의 현대판 '가루지기'가 개봉한다. 변강쇠의 보다 젊었을 적 이야기라고 하니, 마치 '스타워즈' 프리퀄을 볼 때의 쾌감을 느껴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그렇게 변강쇠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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