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 세계영화사상 가장 키작은 영웅&마초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5.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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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든 킹덤'(사진)을 보며 성룡과 이연걸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예전처럼 취권을 구사하는 성룡은 반가웠고 변함없이 짧은 머리로 왕년의 무영각을 구사하는 이연걸을 보며 향수가 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연걸이 마초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여전히 '소림사'로 시작해 '황비홍'으로 완성한 까까머리 귀여운 이미지의 파이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포비든 킹덤'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진출 이후의 이연걸 이미지는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는 뻣뻣한 마초의 그것과 별 다르지 않다.


'포비든 킹덤'에서도 이연걸이 ‘허허실실’ 성룡보다 훨씬 의젓하다. 이소룡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그는 의외로 결코 뒷걸음질 치지 않는 남성적 면모를 보여줬다. 게다가 귀여운 이미지와 별개로 자존심 강한 그는 데뷔 이래 '리썰 웨폰4'(1998)같은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조연을 해본 적도 없다. 어린 나이에 '소림사'로 데뷔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주인공이었고 존경받는 영웅상을 연기했다. 그는 언제나 의젓하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주변의 귀감이 됐다.

이처럼 이연걸은 남성적 면모 이전에 사실상 믿음직한 아버지를 연기한 적도 꽤 된다. 선배 성룡이 그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유부남’으로 출연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걸 떠올려보면 확실한 비교가 된다. 그것은 이연걸의 실제 가족사와도 겹치는 부분이 크다. 1963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는 유독 지기 싫어하는 성미에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의젓하고 튼튼해야 한다고 믿는 소년이었다.

한번은 오른손잡이인 그가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훈련을 거듭하다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가족들에게 비밀로 한 채 아무 말 없이 참고 지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들에게만은 밝은 미소를 보여야겠다는 게 어린 이연걸의 다짐이었다. 그래서 강인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언제나 환한 미소의 영웅 이연걸의 모습은 아마도 그러한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1974년부터 5년 연속 중국 전국무술대회 종합우승 기록을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였고 믿음직한 가장이었다. 비록 적은 돈이었지만 일가 5명의 최저 생활을 책임진 것은 오직 ‘정부에서 특기생으로 선발된’ 막내인 그의 수입이었다.

이후 홍콩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할리우드 진출을 즈음해 굳은 얼굴의 마초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쎌 웨폰 4'(1998)로 할리우드로 가기 앞서 출연한 이인항 감독의 '흑협'(1996), '황비홍 6 서역웅사'(1997), 동위 감독의 '히트맨'(1997) 등에서 그는 더 이상 밝은 영웅의 이미지를 고수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인 첫 번째 주연작이었던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 정도만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 뿐 이제 그는 얼굴에서 웃음마저 지운다.

이제 이연걸은 이소룡처럼 고독한 마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성룡처럼 주변의 지형지물을 지혜롭게 이용하지도, 적당히 물러설 줄 아는 융통성도,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치는 꾀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언제나 한번쯤은 거구의 백인 악당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급기야 '더 원'(2001)에서는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날 죽일 순 있어도 내 머리만은 건드리지 마라”고까지 얘기한다. 그는 세계영화사상 가장 키 작은 영웅이자 마초라 해도 틀리지 않다. 벌써부터 이연걸의 다음 액션영화가 기다려진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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