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져? 비디오 하나 찍어둘걸 그랬어?"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05.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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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소속 연예인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는 매니저를 만나면 농담 삼아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비디오 하나 찍어둘걸, 다 엎어버리게...”

일전 드라마 '온에어'(사진)에서도 이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인기 스타의 비디오 존재 여부를 끄집어내면서 그녀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요량으로 말문을 여는 장면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파격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일만한 내용이다. 나에게도 간혹 그런 질문을 한다. 지인들 중에는 연예인 되려면 섹스 비디오 하나쯤 찍는 것이 의례인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를 시청한 친구가 다음날 전화가 왔다. “야, 저거 진짜 저렇게 비디오 다 찍어 두냐” 하며 낄낄댄다. 주둥아리를 한 대 콱 때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강한 부정은 긍정을 말하는 것 같아 그냥 웃어 넘겼다.

섹스비디오를 찍겠다는 발상 자체는 범법행위나 다름없다.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온전한 생각이 아니며, 인권을 유린하는 처사다. 비열하고 비인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가 푸념 섞인 농담을 우스갯소리 삼아 하는 이유는 ‘연예인의 도가 지나친 인성’에 근거한다. 제어할 수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와 맞닥뜨릴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매니저들이 그런 추악한 태도를 보여준 연예인들을 끝까지 온전히 매니지먼트하려는 것은 일종의 직업정신이다.

영화 '라디오스타'를 본 관객들은 연예인 매니저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가졌을 것이다. 영화 속 매니저 역의 안성기는 자신이 관리하는 퇴물 가수 박중훈을 위해 빚까지 내며 강원도 작은 도시에서 갖은 희생을 마다 않는 살신성인의 매니저로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매니저다.

사실, 매니저는 연예인의 생명력과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다. 연예인은 한번 인기가 추락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매니저는 어떤 연예인을 만나고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추락했다가 다시 정점에 오르는 경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니저가 연예인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매니저에게 연예인은 전장의 무기나 다름없을 만큼 확실한 재원이다. 곧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주류 매니저가 전속계약까지 한 연예지망생에 대한 애정은 그야말로 영화 속 안성기의 마음이나 다름없다.

2005년 초, 한 광고회사가 유명 연예인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작성한 ‘X파일’사건이 터졌다. 당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내용들로 도배된 X파일을 열람한 대중이 주목한 연예인들이 있었다. 소위 모범적인 사생활과 연예생활로 높은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몇몇이었다. ‘X파일’ 파문을 통해 연예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언제나 감시와 평가 대상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연예인의 인격과 대인관계, 이러한 사생활들이 어떤 경로로 확산되는 것일까? 바로 최측근에 의해서다. 음주 운전과 폭행 등에 의한 범법 행위 사실은 뉴스로 전달되어 엄중한 평가를 받겠지만 연예인들의 인격과 사적인 대인관계의 진상은 실제로 주변에서 말을 옮긴다. 모든 세상사가 똑같다. 연예인이라고 예외는 없는 법이다.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그 말을 옮긴다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반복되는 안하무인격 처사에 된통 시달린 매니저를 생각해보라. 가족이나 막역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하소연을 늘어놓는다면 매니저로서 직분을 망각했다고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림자처럼 연예인의 뒤를 돌보는 매니저가 자신이 관리하는 연예인의 그릇된 처사를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매니저가 또 다른 측근에게 내뱉는 한마디가 모양새를 갖추어 천리를 날아간다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연예인이 어제 무엇을 했는지 다 알게 된다. 측근들에게 신뢰를 인정받는 일보다 대중의 인기가 더 중요한 연예인이라면 그 위상은 참으로 위험한 모래성과도 같다.

매니저의 입에서 농담 삼아 ‘비디오나 하나 찍어둘걸’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의 연예인이라면 그 생명력도 멀지 않았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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