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블루, 맹목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그 무엇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8.07.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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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숱한 에로틱 캐릭터가 있었지만, 에덴 동산의 ‘이브’에 가장 가까웠던 그녀를 꼽으라면 '베티 블루 37.3'의 베티(베아트리체 달)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녀는, 남자에게 선악과를 건네는 악녀는 아니다. 베티에게서 이브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지닌 ‘부끄러움 없는 사랑’ 때문이다. 이 영화의 노출 장면은 어떤 에로틱한 느낌을 위해 연출되지 않는다. 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던 ‘원죄 이전의 이브’의 모습처럼 날것 그대로의 느낌. 베티는 ‘사랑에 미친 이브’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2분 동안 지속되는 롱테이크 속에서, 카메라는 조금씩 침대 위의 남녀에게 다가간다. 침대가 부서져라 섹스를 나누는 그들. 소설을 쓰는 조르그(장 위그 앙글라드)를, 베티는 일주일 전에 만났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뜨거운 관계가 됐다니 정말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어쩌면 그들은 만난 그 순간부터 이런 섹스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상에 단 둘밖에 없는 남녀, 아담과 이브인 셈이니까.


장 위그 앙글라드의 무기력하면서도 열정적인 이중적 느낌도 좋았지만, '베티 블루 37.2'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만든 배우는 아무래도 베아트리체 달이다. 커다란 눈과 두툼한 입술이 언뜻 안젤리나 졸리를 연상시키는 그녀는, 길거리에서 픽업되어 모델이 되었고 스물한 살의 나이에 첫 영화에서 불멸의 캐릭터 베티를 맡았다.

이 영화는 철저히 베아트리체 달이 지닌 ‘날 것’의 느낌에 기대고 있는데, 촬영 도중 단 한 번도 감지 않은 듯한 헝클어진 머리와 쉐이빙하지 않은 액모 그리고 돌발적으로 노출되는 그녀의 나체는, 야생 그대로의 여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 이후 ‘브리지트 바르도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베아트리체 달이 지닌 본능적 느낌은 바르도의 관능성이나 백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베티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며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녀의 얼굴은 미소지을 땐 천상의 행복을 전하지만, 무표정할 때나 분노를 머금을 땐 매우 기묘하게 일그러져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극단적 이중성은 베아트리체 달이라는 배우가 지닌 ‘지나친 개성’이었고, 베티처럼 ‘쎈’ 캐릭터가 아니라면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던 셈이다.


영화에서 베티는 점점 광적인 상태로 치닫고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결국은 연인에 의해 조용히 저 세상으로 간다. 그녀가 정성스레 타이핑한 조르그의 소설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출간되고, 그녀의 열정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조르그는 어느덧 이성적 인간이 되었다.

강렬한 데뷔작 이후 베아트리체 달의 행보는 언제나 ‘제2의 베티’였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 맡은 첫 캐릭터를 넘어서진 못했던 그녀. 폭행 사건, 마약 소지 등 각종 사건과 이슈를 일으킨 그녀는 어쩌면 영화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베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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