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휘, 한국 최초의 마초 액션 스타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8.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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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액션영화사를 통틀어 최초의 마초 액션스타를 고르라면 장동휘다. 박노식, 오지명, 독고성, 이대근 등 이후 등장한 화려한 명단의 첫 머리에 손꼽혀야 할 그는 그야말로 ‘묵직한’ 남자 중의 남자였다. 특별히 잘 생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둔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흔히 화려한 테크닉의 ‘무술’로 대표되는 액션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보스’ 혹은 ‘큰 형’이라는 이미지에는 딱 들어맞는 사나이였다.

그의 구수하고 믿음직한 외모야말로 한국액션영화의 옛 얼굴이다. 한국식 패싸움 영화라 할 수 있는 왕년의 소위 ‘다찌마와리’ 영화에서 그는 결코 움직임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포알 같은 효과음을 뿌리는 가죽장갑의 묵직한 한 방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아마도 그런 장동휘의 이미지를 확립시켜 준 것은 김효천 감독의 '팔도사나이'(1969. 사진)였다. 영화 속에서 확실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종로 일대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김두한의 그것이었다. 고아로 자라 일본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그는 야쿠자 아베(허장강)를 손봐주면서 민족의식을 불태우게 된다.

하나둘 전국의 의리의 주먹들을 규합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반일’영화가 흥행성 있던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소문을 듣고 오직 한 판 붙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용팔이(박노식)는 그를 평생의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서울에서 젤 센 놈이 누구여?”라며 까불다가 바로 한 주먹에 나가떨어지고는 무릎을 꿇고 높임말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던 용팔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내는 압권이다.

실제로 김효천은 김두한의 숭배자였다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김두한이 세상을 뜬 뒤(1972년) 이대근을 주인공으로 '실록 김두한'(1974)과 '협객 김두한'(1975)을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TV시리즈 '야인시대'의 원조가 바로 그였다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1990)을 만들며 박상민이라는 젊고 날렵한 김두한을 등장시켜 차별화를 시도한 이유이기도 했다.


특별출연한 '전국구'(1991) 역시 김두한 스타일의 액션영화였음을 떠올려보면 그가 만들어낸 김두한 이미지는 꽤 오래도록 한국액션영화를 대표하는 표정이었다. 이후 김효천 감독은 이대근, 김희라, 윤승원 등의 후배들에게 그 이미지를 투사시켰다.

‘김두한=장동휘’라는 사실은 그가 늘 보스 이미지를 대표하는 배우였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것은 굳이 다찌마와리 액션영화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그 이전부터 ‘의리의 큰형’이었다. 한국액션영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정창화 감독의 '대평원'(1963)과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시작으로 '추격자'(1964), '창공에 산다'(1968), '황야의 독수리'(1969), '한국 제일의 사나이'(1970), '비내리는 명동거리'(1970)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라 할 수 있는 이만희, 임권택, 김효천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들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도 그는 만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곧 개봉하게 될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의 부제이기도 한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변태’ 악당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장동휘는 신성일, 최무룡 등이 누렸던 선명한 위상에 비한다면 미약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계속 모습을 비췄다.

안타까운 일은 지난 2005년 그가 타계했을 때 영화전문지들도 그렇고 그 어디서도 그에 관한 의미 있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원로배우들과 달리 그는 유별나게 정치권을 기웃거리지도, 욕심내며 영화 제작이나 연출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저 작은 역할이라도 후배들 영화에 모습을 비추며 평생 배우로만 살았던 사람이다. 이제 그런 이미지의 액션스타를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기에 그를 더 추억하게 된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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