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이경미, 스승과 제자는 닮았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8.10.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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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songhj@


오는 16일 개봉하는 '미쓰 홍당무'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 첫 영화이다.

자신이 못생겼다는 콤플렉스 덩어리인 양미숙이 첫사랑이자 고교시절 은사였던 유부남 선생님의 세컨드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신예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맡은 '미쓰 홍당무'는 세컨드가 본처와 다투기 마련인 다른 치정 영화와 달리 세컨드가 되기 위한 다툼을 그리며, 선생과 제자가 '야자'를 트며 우정을 쌓는다. 성에 대한 금기를 교묘히 뚫기도 한다.

마치 박찬욱 감독이 세상에 대한 금기를 도발하듯 그의 제자 이경미 감독 역시 일상의 금기를 깨려했다. 박찬욱 감독과 이경미 감독은 오랜 인연을 자랑한다. 이경미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로 참여했으며,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후 이경미 감독은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비정성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박찬욱 감독은 그녀를 찜했다.


스승과 제자는 과연 스스로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미쓰 홍당무'를 코미디로 정의할 수 있나.

▶(박찬욱 이하 박) 달리 뭐라 할 수 있겠나.

▶(이경미 이하 이) 애초부터 블랙코미디로 생각했다. 캐릭터로 이야기의 반전을 이끌 수 있는 영화.

-첫 제작으로 이경미 감독의 영화를 택한 까닭은.

▶(박)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당시 심사위원 모두가 이경미 감독을 점찍었다. 제작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경미 감독을 원했을 것이다. 당시 나홍진 감독도 작품을 냈는데 두 사람 모두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흥분하면 얼굴이 빨개진다는 캐릭터로 영화를 만든 이유는.

▶(이)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를 할 때 연출부 중 한 명이 그런 증상이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면 오해를 쉽게 사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 얼굴이 빨개진다는 게 콤플렉스를 형성하는데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 못생긴 여자에 주목했나.

▶(이) 아무래도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더 콤플렉스가 쌓일 수 있으니깐.

▶(박) 비호감은 비호감인데 못생겼다는 말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콤플렉스로 그렇게 규정했을 뿐이다.

-'미쓰 홍당무'는 박찬욱 영화의 자장 안에 있는데 어떤 의견 교환을 나눴나.

▶(이)박찬욱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뭐가 좋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빨개지는 여자 이야기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다. 이런 거 어때요, 라고 하면 '재미 없는데'라고는 하시더라.

▶(박) 주어진 돈이 있는데 넉넉하지 않았다. 그 돈 갖고 못찍겠다고 하면 접으려 했는데 할 수 있다고 해서 맡겼다. 강요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돈을 많이 못구해준 그 단계까지는 미안하지만 그 다음은 본인이 한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제작하는 게 처음이지만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다른 감독 영화에 조언도 많이 해줬으니. 조심하려 했던 것은 영화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면 초심을 잃고 동글동글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예술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니 차별성을 두기 위해 개성과 매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공효진 등 배우들에 테이크를 상당히 많이 갔다던데.

▶(이)특히 공효진에게 많이 했다. 테이크를 많이 할수록 다양한 표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효진이 캐스팅됐을 때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관객이 볼 수 없었던 공효진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닦달했다.

-제작자로서 '미쓰 홍당무'를 평가하자면.

▶(박) '수'다. 내 데뷔작은 '양'쯤 되고. 일단 목표를 이뤘다.

-하이라이트인 어학실 장면은 연극 무대 같기도 한데. 모험일 수 있고.

▶(이) 데뷔작인 만큼 마음껏 시험해보고 싶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말로 절정을 끌어내고 싶었다.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타입이다.

▶(박) 제작자로서 돈이 안들어서 좋았다.

-콤플렉스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은.

▶(이)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보이는 게 콤플렉스를 드러낼 때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했다고 생각한다.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봉준호 감독도 출연하고 박찬욱 감독도 등장한다. 영화 성격도 그렇고 마치 박찬욱 패밀리 영화 같은 느낌도 있던데.

▶(이)봉준호 감독은 원래 인연이 있다. 영상원 시절 선생님이었으니. 농담처럼 출연하겠다고 했는데 그걸 놓치지 않았다.(웃음)

▶(박) 우리끼리 어떻게 하기보다는 돈이 없다보니 스태프나 그렇게 다 참여하고 출연한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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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songhj@


-영화에 섹스코드가 상당한데.

▶(이)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고 싶었다. 선생과 제자가 친구가 되는 것도 불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어로 라이타를 의미하는 '좌지깔까'는 러시아어를 원래 전공해서 나온 아이디어다. 극 중 티팬티 장면부터 점점 섹스코드쪽이 풍성해진 것 같다. 성기 장면도 있었는데 영화에 재미가 없어서 삭제했다.

▶(박)결국 러시아 농담도 통쾌한 복수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유부남을 좋아하는 처녀 이야기인데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를 놓고 다툰다는 점이다. 찌질이들끼리.

-주인공을 통해 모든 인물이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영화인데.

▶(이)그건 아마도 모든 인물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기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닮았다고 생각하나.

▶(박) 창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금기를 깨고 싶어할 것이다. 다만 중산층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 상식적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은 것 같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 도덕적인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다고 할까. 금기를 깨고 싶으면서도 그것을 깨는데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생각한다.

-스승을 딛고 일어서는 게 당면과제일텐데.

▶(이)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개봉이 되어야 머릿속을 정리할 것 같다.

▶(박)이제 후배를 안 키우려고 한다. 내 자리를 너무 위협하니깐. 자라는 싹은 밟아야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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