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조엘, 가수가 아름답게 늙는 법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11.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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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15일 빌리 조엘의 내한 공연은 가수가 어떻게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공연을 위한 공연이라기보다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적 놀이 같다. 일종의 무대 위의 자유로운 유희 같아 보이지만, 그곳에는 음악적 연륜과 깊이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음악 하나만으로도 질퍽한 재미가 무엇인지 여지없이 가르친다. 히트곡은 히트곡대로 그 시절의 추억의 향기를 부여잡게 하고, 설사 낯익지 않는 곡들이라도 그 느낌대로 귀는 즐겁다. 발라드에서 록큰롤에 이르기까지 빌리 조엘의 손끝은 부드럽게 혹은 격렬하게 객석의 가슴을 유유히 쓸어내렸다.

'앵그리 영 맨'으로 막을 올리고 '피아노맨'으로 커튼콜을 하기까지 22곡을 내리 달렸던 2시간의 공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의 음악적 에너지와 관객에 대한 애정은 무대 위에서 화산처럼 녹아내렸다. 수건을 머리에 덮고 피아노를 격렬하게 두드리다가 어느새 엉덩이를 흔들고, 연주를 도중에 멈춰 '내 관객을 손대지 말라'는 그의 제스처는 공연장의 박동을 가파르게 솟구치게 하는 심장 같았다.


지난 1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빌리 조엘 내한공연은 가수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의 무대였다. 환갑을 눈앞에 둔 빌리 조엘의 음악은 삶의 연륜이 음악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를 유유히 가르친 공연이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히트곡 '마이 라이프'(My Life) '어니스티'(Honesty)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New York State Of Mind)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를 비롯한 10여곡은 30년이나 숙성된 음악이지만 현장에서 듣는 노래는 또 다른 해석으로 스며들게 한다. 나이에 따라 원곡이 진화되는 광경은 가히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빌리 조엘의 공연을 그냥 즐기면 될 것을, 직업상 오금이 저린다. 음악적 진정성을 찾기도 전에 부실한 대중음악 토양 앞에 함몰된 우리 가수들의 갈 길이 저 빛나는 무대 뒤로 위태롭고 험난해 보이기 시작한다. 음악이 미디어에 종속되기 시작하면서 가수가 응당 노래를 부르는 일보다 오락프로그램과 맞서서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지 오래다.


이토록 무서운 둔화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수 데뷔를 한 지 수년이 지나도 자신의 브랜드 공연을 토착시키기는커녕 제대로 된 무대조차 꾸미지 못하면서 가수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어느 무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래로 감동시킬 수 있는 무대가 결국 가수가 서있어야 할 곳이라는 숙제는 손 놓은 지 오래돼 보인다.

빌리 조엘은 자신의 공연을 통해 가수가 아름답게 늙는 법을 유감없이 가르친 채 유유히 떠났다.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쿨투라'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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