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정과 '마술기계'? 고인을 두번 죽이지 마세요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12.16 10:43
  • 글자크기조절
image
배우 박광정 ⓒ홍봉진 기자 honggga@


우리시대의 배우 박광정이 지난 15일 밤 11시 경 폐암으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연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연기와 연출 분야를 넘나든 그였습니다. 열정을 불태웠던 박광정의 46세 일기는 너무나 짧아서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슬픔 만큼의 슬픔이 눈앞에 또 펼쳐졌습니다. 박광정의 죽음을 다루는 거의 모든 뉴스에 박광정이 1992년 연극 '마술기계'의 연출가로 데뷔했다는 대목이 나오더군요. 참 우울합디다. '마술기계'라는 연극은 없으니까요. 정확히 '마술가게'입니다.


박광정의 죽음이 알려진 다음날 새벽 3시, 필자가 뉴스를 검색해 봤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죽음을 전하는 수십 개의 뉴스가 일제히 그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어떻게 해서 이런 기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쏟아져 나오나 싶었습니다. 이 오보의 발단은 지난 4월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더군요. 박광정이 폐암 투병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부터였습니다. 그날로부터 무려 50여 개가 넘는 뉴스에 박광정의 '미술기계'라는 유령 연극이 따라붙었더군요.

혹시나 싶어 주요 포털의 인물 정보를 검색해 보았더니 역시 박광정의 데뷔는1992년 연극 '마술기계' 연출로 되어있더군요. 박광정의 폐암과 함께 그 오보들은 자라났고 그가 죽어서도 그것이 오보였는지도 모른 채 독자와 네티즌들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도 박광정의 '마술기계'는 계속 뉴스로 쏟아져 나오고 있더군요. 박광정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검증 절차 없이 쏟아지는 오보는 그를 두 번 죽이고 있는 셈이었지요.

1992년 박광정은 연극 '마술가게'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필자의 선배인 극작가 이상범이 희곡을 썼지요. 연극 '마술가게'는 고급 의상실로 침입한 늙은 도둑과 젊은 도둑, 경비원이 펼치는 하류 인생의 풍자극이었습니다. 박광정은 1993년 이 연극으로 제2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출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필자는 1994년 김광림의 희곡 '저 별이 위험하다'를 박광정이 연출한 연극을 보았지요. 아마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이이었을 겁니다. 그의 연극은 간결한 극적 구조 안에서 배우들의 유희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연출로 평단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요. 박광정이 만들어온 웃음과 재미 뒤에는 묘한 비극과 은유가 숨어있다는 찬사도 아울러 받았습니다.

대중에게는 화려한 연극 무대에서의 연출 능력보다 감초 같은 조연 연기자로 더 알려진 박광정이었습니다. 그의 짧은 생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를 대표하는 연극 연출작의 오보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알고도 그냥 두기에는 책임감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술기계'라는 연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연극을 박광정의 데뷔 연출작이라고 버젓이 올려놓는 일은 그를 다시 한 번 죽이는 일이지요. 박광정의 죽음은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속보에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오늘의 경솔한 미디어를 조용히 돌아보게 합니다.

'마술가게'와 '마술기계'... 두끗 차인데 뭐 그리 대수냐구요?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쿨투라'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image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