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스트로섹슈얼' 열풍, 뜨려면 부엌으로 가라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8.12.26 13:47
  • 글자크기조절
image


최근, '개스트로섹슈얼' 열풍이 불고 있다. '개스트로놈(gastronomeㆍ미식가)'과 '섹슈얼(sexualㆍ성적 매력의)'의 합성어로, 최근 요리 잘 하는 남자가 인기를 끄는 트랜드를 반영한 말로 풀이 된다. 영국의 소비자 조사단체인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aoundation)이 '주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25-44세의 남성들'로 정의를 내리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끈끈한 결속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이여, 가족이나 연인을 위해 요리를 해봤는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마라. 웬 청승이냐고 대꾸한다면 이제 정신차리고 살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세상은 달라졌고 '나'는 언제나 변화해야 한다. 부엌에서 칼을 잡고 야채를 다듬는 재미를 만끽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일이지만 사실 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다.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반복되는 손놀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속으로 적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재료를 쌓아 올리는, 그 감탄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은 차라리 불행한 사람이다. 무뎌진 감각을 다시 끄집어내 간을 맞추고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내는 작업까지 곁들여진다면 이제는 무아지경에 이른다. 그것이 재미의 경지에 오른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퇴근 후 혹은 여행을 떠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힘들다는 핑계로 털썩 주저앉지 말고 주방으로 달려가 보라. 가족들의 경이로운 시선과 맞닥뜨릴 것이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창작이다. 그 섬세한 손길로 이루어진 맛은 혀를 자극하고 이내 발끝을 저리게 한다. 그 탁월한 맛의 탄식은 등줄기를 따라 엉덩이를 쫑긋

세우게 한다. 맛을 음미할 줄 알면 맛에 따라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각이 살아나면 쓰러져 누운 자도 일으켜 세운다는 말이 있다. 그럴진대, 여성의 입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는가.


브라운관속에서도 요리하는 남자들의 반란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심리적 요동 주파수가 얼마나 널뛰기를 하는지 수치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MBC 오락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했던 알렉스가 신애를 위해 요리를 하고 그녀를 위해 부른 김동률의 노래 '아이처럼'은 2008년 올해의 히트곡이 되었다는 점이다.

김동률의 음반을 기획 홍보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알렉스가 부른 '아이처럼'이 전파를 타자 사건은 벌어졌다. 그날 밤 김동률의 '아이처럼'은 평소의 음원 매출 12배를 기록했고 그 후로도 20배가 넘는 기록을 경신하면서 상종가를 기록했다. '아이처럼'의 여진은 계속되었을 만큼 여심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은 '개스트로섹슈얼' 열풍을 방증하고도 남을 법하다.

이 뿐만 아니다. 요리하는 남자들은 그 열풍의 힘으로 모두 광고 모델로 안착하면서 갈채를 받았다. '커피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열연한 이선균, '식객'의 요리사 김래원은 여성팬들이 이상형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요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가수 이현우, 개그맨 박수홍 역시 '개스트로섹슈얼' 열풍의 최대 수혜자들이 되었다.

'개스트로섹슈얼' 열풍은 몇몇 연예인이 주도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은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라는 것이 실감될 정도다. 일반인들의 열풍은 전문가 수준이라는 사실은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주부들이 울고갈 정도로 난처하게 만들 만큼이다. 요리사이트나 블로그에 올라온 남성들의 글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수십개의 요리사진이나 레시피는 주부들을 부끄럽게 만들만큼 농밀한 수준이다.

다음 카페 '즐거운 요리시간'의 회원수는 24만명. 남성 회원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도 단순 열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한국 전통 정서는 이제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여진다. '어디 남자가 부엌 출입을 하느냐'고 큰소리치다가는 늙어 고생하기 쉽게 되었다.

'요리하는 애인과 아빠'가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제 입에 들어가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먹이고 싶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요리의 미학은 생명을 다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결국 요리를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극진한 배려고 최고의 희생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은 요리처럼 익어가는 것이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라. 배려와 희생의 미학을 마음껏 즐겨보라.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쿨투라'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image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