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 미모 지상주의의 결정판!

[강태규 까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9.02.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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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 판타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여학생들이 열광하고 있다. 더군다나 20대 여성과 아줌마들까지 그 대열에 합세해 난리란다. 그러한 판타지에 열광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답을 했다.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본능적으로 움츠려진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까지 저지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 그래, 어떠한 형태로든 포만감은 누려야겠다. 내 힘으로든 아니든.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을 기도하는 것. 그래서 잠시라도 잊고 살고 싶은 순간의 방편을 찾는다. 그렇다. 그것은 본능이다. 그래서 이 삭막한 현실 도피처로 판타지 영상물에 열광하고 대리만족을 꿈꾸게 된다” 라고.


나는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 말들이 활자화되고 덜컥 겁이 났다. 바른말을 해야겠다.

판타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엄밀히 말해서 B급 감성의 영상물이라 규정해야겠다. 예술성을 가진 영상물 아래라는 이분법적인 뜻이 결코 아니다. ‘사람의 본능을 충실히 따르는 전염성 강한’ 혹은 ‘일종의 익숙해진 통속적 공식을 따르는’으로 해석하면 좋겠다. 그야말로 대중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판타지 영상물의 대표성을 띄고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미모 지상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것 같다.

현실을 이야기 하자. 미모 지상주의부터.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이민호, 김범, 김준, 김현중)는 그들에게 열광하는 여성들에게 환상적인 이상형이다.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다.


그러한 존재감이 끌고 가는 드라마는 드라마안의 모순적 현실까지 모두 용서의 대상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드라마속의 F4같은 짓거리를 하다가는 졸업하기 힘들다. 남학교에서는 반 죽었을 것이고, 여학교였다면 완벽한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20대 여성과 아줌마들까지 자지러지는 것도 20대 남성과 아저씨들이 소시(소녀시대)와 원걸(원더걸스)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쁘니까. 아줌마들도 예쁜 것 들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당당히 보여줌으로써 쾌거를 이룬다.

드라마의 원작은 일본 만화다. 제41회 쇼가쿠칸 만화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코믹 판타지다. 국내에도 이미 소개되었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로 여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친밀한 정서도 ‘꽃보다 남자’ 열풍을 가져오게 한 단초 중 하나다.

일본은 봉건 제국 국가였다. 성주가 거느린 무사계급이 있고 농민이 있었다. 철저한 복종 체제였다. 이동도 불가능했고, 성주가 다른 성주에게 굴복하면 모두 전락해야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F4 꽃미남에게 굴복하는 친구들. 이 정서는 결코 우리의 정서가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어 있는 공식이지만 달리 열풍을 구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모 지상주의가 더 공고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쁘니까, 용서다.

또 하나. 불가능한 재력에 대한 동경. 우리나라가 인간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도 열풍을 부채질하는 철저한 근거로 남는다. 서민들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구조, 그래서 드라마 속의 황당무계한 재력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껴야하는 비애감이 숨어있다.

출생의 비밀, 불륜과 패륜으로 얼룩진 오늘의 드라마 속에 어쩌면 이 황당한 만화적 상상력은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청률 30%라는 수치로 환산하면 시청자가 500만 명이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꽃보다 남자’ 열풍이 불자, 다른 장르의 판타지까지 다 끌어들여 한곳으로 묶은 미디어는 거대 담론을 끌어내 대중을 춤추게 하고 있다. 그리고 불황에 가중된 경제난에서 판타지는 대중의 시름을 잊게 한다고 역설한다. ‘판타지 열풍’의 진원지를 미디어는 굳이 정밀하게 더듬지 않는다. 대세에 따른다. 인기 여세를 몰아 콘텐츠 제작사들은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전 방위적 장르에서 판타지의 연장선을 그릴 태세다.

얼마가지 않아 어느 순간 판타지는 판타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서 모두 잊을 때 쯤, 다시 시기를 보고 대중의 허를 찌를 준비가 될 때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럴듯한 열풍의 이유를 달고서.

어쨌든, 판타지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분석의 의미가 무슨 대세이겠는가. 나는 지금,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잊고 잠시 꿈꾸고 싶다는데. 미모 지상주의면 어떻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극치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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