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의 라디오DJ, 성우 오승룡을 아십니까?

[강태규의 카페in가요]

강태규 / 입력 : 2009.03.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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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

저녁 9시. 올림대로를 달리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순간 놀랐다. 필시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이다. 2009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핫팬티에 물든 오늘의 가요 속에서 엇박자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대범한 라디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도 황금시간대인 이 시각에.


한남대교를 빠져나오자 순간, 라디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음악이 사라져 버린다. 주파수 화면을 보았더니, 100.5메가헤르츠. 인터넷을 통해 저녁 9시 시간대에 편성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찾아봤더니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한참한 뒤에야 비로소 문제의 프로그램을 색출했다. 바로 TBN 한국교통방송 '길따라 노래따라'였다. 며칠 뒤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김양주 프로듀서를 만났다.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서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요. 50대 이상의 장년층과 노인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고 차분히 소개했지만, 다분히 자부심이 베인 목소리였다.


TBN(한국교통방송)은 도로교통공단에서 전국 방송을 제작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서울 지역만 전파를 타고 있지 않다. 필자가 들었던 '길 따라 노래 따라'가 지지직대며 불안한 소리를 냈던 연유는 방송 출력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인천 지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전파는 서울의 일부지역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공식채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지역 청취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 프로그램의 DJ는 성우 오승룡(사진. 1935년생) 74세의 노장이 이끄는 목소리는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우리시대의 대표 성우답게 예의 '묵직하면서도 진솔한' 소리는 11년째 이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1954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오승룡은 중앙방송국 극단원 1기로 연기자와 성우의 길을 동시에 걸었다. 우리나라 최초 드라마 '청실홍실'의 작가 조남사와 민구, 장민호가 그의 선배들이었으니, 사실상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1세대 성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승룡은 지난 50여 년 동안 줄곧 방송을 해왔다. 군 훈련 3개월을 제외하고는 마이크를 손에 놓지 않은 불굴의 현역 DJ로 방송가에서는 경외의 대상이다.

"97년 12월 부산에서 탄생된 이 프로그램은 '부산야곡'으로 첫 전파를 탔지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방송을 하고 올라오는 악조건에서도 방송 한번 펑크 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청취자들에게 대한 애정이었죠."

오승룡은 주로 흘러간 옛 노래들이라 젊은 세대들에게 사랑 받지 못했지만, 장년층과 노인에게는 삶의 활력소를 주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난 2월 28일 필자가 들었던 곡명 미상의 노래는 김정애의 '봄봄부기'로 유성기 음반이었던 사실을 알게 됐다. 흘러간 노래, 더 이상 쉽게 들을 수 없는 노래, 소외된 계층을 위한 노래와 서민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1시간을 촘촘히 채워내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실상 없다는 오늘의 현실을 담담히 털어놓는 김양주 프로듀서의 뚝심에서 불현듯 '사람의 희망'을 읽어 내린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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