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흥행작에서 '북한'이 사라졌다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9.09.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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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영화 흥행 톱에는 북한과 관련한 영화들이 대세였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명. 2003)와 북한 주석궁 폭파부대를 다룬 '실미도'(1108만명. 2003)는 말할 것도 없다. '웰컴투 동막골'(800만명. 2005)은 정재영 임하룡 등 인간미 넘치는 인민군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공동경비구역 JSA'(583만명. 2000)는 "사내자식이 울기는?"이라는 인민군 신하균의 따뜻한 한마디면 족했다. 최민식의 '쉬리'(620만명. 1999)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그러나 요즘 북한은 더 이상 흥행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3년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다섯번째 영화 '해운대'는 부산에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얘기이고, 640만 흥행뒷심을 발휘중인 '국가대표'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감동기다. 2007년 개봉,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1301만명) 역시 한강에 나타난 괴물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뭐 하나 북한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오히려 처참한 북한 현실 이야기에 손을 댔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더 많다. 지난해 6월 기대 속에 개봉한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이 대표적인 경우. 김태균 감독은 탈북자와 북한의 현실을 아역배우 신명철의 애달픔과 아버지 차인표의 순정을 통해 절절히 그려냈으나 관객은 끝내 외면했다. 장동건과 이정재를 내세운 '태풍', 차승원을 내세운 '국경의 남쪽' 역시 모두 기대에 못미쳤다.

요즘 한국 흥행작은 '남과 북'이라는 대한민국 현실을 떠나 인류 보편의 정서에 호소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따라가는 형국이다. 설경구 하지원 이민기 엄정화 박중훈 등이 출연한 '해운대'는 한국에서 쉽지 않았던 재난 블록버스터. 공교롭게도 북미 역대 흥행 1위 영화도 호화 유람선이 바다에서 두 동강 난 재난 이야기 '타이타닉'(6억달러. 1997)이다.

괴수 블록버스터 '괴물'과 '디워'(842만명. 2007) 역시 괴수의 출연에 과다한 CG를 썼다는 점에서 '쥐라기 공원'이나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등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과속스캔들'(830만명. 2008)이나 '미녀는 괴로워'(661만명. 2006)는 울다 웃고 그러다 살짝 가슴 저린 코미디. 이는 전통적으로 워킹타이틀 같은 영미 제작사의 장기였다. 북미 역대 흥행 2위인 '다크나이트' 같은 액션 히어로 영화만 아직 국내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최근의 이같은 한국영화 흥행공식의 변화는 '탈한국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역사의 상흔이나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지 않으면서 순수 오락적 재미와 스토리의 힘만으로도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 남과 북이 통일을 약속한 근미래에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내세운 '한반도'(2006), 과거로 돌아간 남북한 군인들의 이순신 장군 만들기 프로젝트 '천군'(2005) 등이 크게 힘을 못 쓴 것도 이같은 흐름을 못 읽은 탓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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