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 "13번째 영화만에 처음 '감정' 느꼈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9.09.1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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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원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맺혀 있는 듯한 배우다. 밝고 씩씩한 듯하지만 갑작스레 왈칵 눈물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을 갖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배역을 넘나들었고 그 배역은 어느새 하지원이 됐다.

그래서 인간 하지원은 배역에서 떨어져 있을 때면 늘 공허하다. 하지원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털어놓은 고민은 "작품 속에서는 신이 나는데 끝나면 아무것도 못하겠다"였다.


그런 하지원이지만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는 그 진정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권투를 하다 코뼈가 부러지고 액션을 하다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을 봤을 뿐 진정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랬던 하지원이 이번에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줬던 감정의 깊이를 스크린에 선보인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내사랑 내곁에'(감독 박진표'에서 하지원은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를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여인을 맡았다. 시체를 염하는 일을 하느라 남자에 거부당하는 여자, 그래서 자신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자에 순애보를 바치는 여자. 하지원은 '내사랑 내곁에'에 푹 빠져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멜로영화도 많았고 다른 여자배우가 거론되기도 했는데 '내사랑 내곁에'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편지'나 '약속', 감독님 작품이기도 하지만 '너는 내운명' 등 기존 멜로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 같지 않고 병실 기록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현실적이었다. 빈티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례지도사 역이다. 시신을 닦고 염을 하는 여자라는 게 어쩌면 이 영화에 전형적일 수도 있는데.

▶장례지도사로 내게 일을 가르쳐주신 분도 여성이셨다. 그 분들의 삶이란, 음...내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영화가 그 만큼 현실적이란 것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3편째 영화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선 그다지 좋은 평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지원의 재발견'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는데.

▶억지로 일을 하는 성격은 아니다. 지금까지 작품들도 모두 내가 간절히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뭔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을 느꼈다.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감정에 부딪혔다. 영화를 순서대로 찍었기에 김명민 선배가 아파가는 것을 보고 같이 아파했다.

-영화처럼 아픈 사람과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니깐 내가 납득이 됐으니깐 이 영화를 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시체 닦은 손으로 어디 내 몸을 만지냐는 모진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가슴 아픈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가슴 아픈 소리라기 보단 나를 강하게 만든 소리를 들었다. 신인 때 '연예인 되겠어'란 소리를 모 감독님에게 들었다. 꼭 배우가 되서 나타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나중에 그 감독님이 날 못알아보고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왔냐'고 하시더라.

-이번 영화에선 참 예쁘게 그려지는데.

▶글쎄. 메이크업도 안했다. 라인도 안그리고 입술도 화장을 안했다. 감독님이 최대한 수수한 것을 원하셨고 그렇게 했을 뿐이다.

-12세 관람가인데 베드신도 제법 있는데. 영등위 담당자들이 그 장면에선 잠을 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던데.

▶(푸하하) 왜 베드신이 필요한지 명확하니깐. 또 생활 같고. 입에 담아보지 못한 대사들, 예를 들어 '우리 잘래' 같은 단어들이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결혼한 언니들을 상대로 연습까지 했다. 우리 잘래도 여러 버전이 있다. 감독님이 키스신 같은 장면에도 스태프들을 다 빼줄 정도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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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기자 qwe123@


-악착같은 몸 연기와 깊게 들어가는 감정 연기, 어떻게 다르고 또 힘드나.

▶복싱이나 에어로빅이나 무사를 할 때 오히려 접근하기가 쉽다. 칼을 겨눈 슬픔이란 게 있으니깐. 하지만 이번에는 더 많이 아팠다. 내가 경험하는 것 같았고. 컨디션도 영화 촬영 순서대로 나빠졌다. 맨 마지막 촬영 때는 혼자 방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그 사람 눈에서 모든 것을 다 읽고 받으려 했다. 영화가 끝났지만 아직도 역에서 못 빠져 나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겠나.

▶영화를 하고 나니깐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동정도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싸우는 장면에서 어느순간 정말 화가 나더라. 이게 사랑인 것 같았다.

-그동안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쉬는 순간을 버거워하는 것 같기도 한데.

▶'무릎팍도사'에 나가서 작품 속에서 살 때는 신나고 재미있는데 나로 돌아오면 심심하고 즐길 수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내 고민이다. 예전에는 매니저 없이는 커피점에도 못갔다. 그러다가 50살이 되서도 나 혼자 다닐 수 없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나를 찾고 싶고 그래서 즐기고 싶다. 그래야 언젠가 인기가 떨어졌을 때 공허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찾고 싶다. 새로운 것을 눈에 담고 싶고.

-'해운대'로 천만배우가 됐는데.

▶그런 표현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 설경구 선배가 그러더라. 두 번 하니깐 좀 알겠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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