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 "언제까지 '첫사랑'일순 없잖아요"(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11.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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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보영 ⓒ송희진 기자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보다 몇 번 놀랐다. 제목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에 한 번, 두 젊은이의 삶이 너무 지독하게 고통스러워서 또 한 번.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배우 이보영(30)의 모습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아련한 첫사랑, 당찬 신세대의 모습은 간 곳 없다. 암환자인 아버지를 돌보며 사채 빚에 시달리는 주인공 수경은 뺨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부스스한 머리, 초점 흐릿한 눈동자를 하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녀의 나이 이제 서른, 이보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절실했던 촬영 당시의 마음을 털어놨다. 스스로를 자학해가며 고행과도 같았던 촬영을 마친 뒤 그녀는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연기를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였다. 이보영은 "끝내고 나니 내가 대견하더라"며 장난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였다. 영화에서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웃음과 함께.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전에 감독님이 '소름' 하실 때는 장진영 언니한테 긴 머리를 쇼트커트로 자르라고 하셨다더라. 저는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고 기꺼이 했다. 멀쩡하게 나왔으면 그 인물의 고통이 안 보였지 않겠나. 캐릭터 상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쁜 역할 다른 데서도 많이 했는데, 연기라고 생각하면 창피하진 않았다.


아, 창피한 적이 있었다. 촬영 때 영화 찍는다고 동네 주민들이 오셨는데 저를 못 찾으시는 거다. 현빈씨도 그랬다. '어머, 쟤가 이보영이야' 하기 전에 슬쩍 피했다. 연기할 땐 거리낌이 없었는데, 밥 먹으러 나가고 할 땐 조금 민망하더라.

-쉽진 않았을 텐데.

▶망가진다는 생각은 안했다. 피부를 두 톤 까맣게 하고, 다크 서클에 입술 터진 분장이 다였다. 물론 그런 역할을 한 게 처음이다. 여배우가 그런 역할을 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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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보영 ⓒ송희진 기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타이밍이 참 잘 맞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때 찍으면서는 자연스럽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스크린으로 스스로 보니 거슬리는 게 있더라. '영화가 정말 재밌구나, 그런데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몰랐다'는 생각이 들 때 내게 온 게 이거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 말리는 거다. 마침 다른 상업영화 시나리오도 들어왔고. 하지만 여기서 똑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 하나라도 더 발전했으면 했다. 절실할 때 받아서 작정하고 했다.

-수경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 연기하는 배우가 자학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자학을 많이 했다. '내가 왜 이러나' 싶고, 매일 반성하고, 방에 가면 좌절하고 그랬다. 밥도 못 먹고, 스트레스에 위도 안 좋았다. 현장에 가면 미칠 것 같은데 그래도 다 찍고 돌아가면 어제보다 내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참 좋았다. 지금도 영화를 보니 목이 막 메였다.

예전엔 별 생각이 없이 끌려 다니곤 했다. 평생 연기하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지금은 연기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나아졌다고 할까. 찍을 땐 '내가 또 이런 작품을 하면서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순 없다' 이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아픔이 좀 남아서(웃음) 또 하겠다고 못하겠고, 그렇다고 '다신 안 해' 이 말은 못하겠다. 1∼2년 지나면 어찌될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은 그것 하나만으로 울컥하게 하는 게 있다.

▶테이크를 13번 갔다. 마지막에 조명이 카메라에 걸렸나 해서 NG가 났는데 감독님이 '한 번 더 가면 보영이 죽는다'고 해서 거기까지 했다. 그게 마침 둘째 날 촬영이었다. 처음엔 드라마에서 하듯이 걸어가자마자 막 울었는데, 택도 없었다. 감독님이 '넌 미쳤어, 미친 여자인 거야' 하면서 디렉션을 하셨다.

그런데 저는 괴롭혀도 일어나는 스타일인 게,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도 벌떡 일어나서 모니터 확인하러 가고 그랬다. 그래서 감독님이 '쟤가 에너지를 다 쏟은 게 아니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나중에 물어보신 적도 있다. 그게 아닌데. 힘든 티를 많이 내야겠구나 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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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보영 ⓒ송희진 기자


-힘든 작품을 끝내고 변화를 느꼈나.

▶끝나고 나서 제가 대견했다. 철 좀 들었구나 싶고. 예전 같으면 매니저 뒤로 숨거나, 못하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렸을 텐데 그 땐 아무 말 안하고 혼자 견뎠다. 내가 그래도 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 나이 서른이다.

▶나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제 나이가 좋은 게, 내 자체가 많이 여유있어 졌다. 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사람도 무던해지고. 연기에 대해서도 '정말 잘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게 서른이다. 그 전엔 여유도 없었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그냥 하다보면 되겠지 했는데, 이젠 내가 연기를 평생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마음이야 바뀔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내가 똑같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로 승부하려면 지금부터 뭔가를 해야하지 않나 싶고. 언제까지나 예쁘고 청순한 첫사랑일 수는 없지 않나.

-결혼 생각은 없나.

▶지금은 결혼 계획이 없다. 아직 좋지 않나. 연기하는 게 좋고 일이 좋고.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싶은 건 맞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

-연인 지성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소식이 알려진 것도 자의가 아니었는데 저희가 어떻게 말을 할 게 없었다. 드릴 말씀이 정리되지도 않았고. 지금도 굳이 말을 하고싶지는 않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건데. 그냥 서로 조심하고 있는 거다.

-지난 10월에 시구하면서 야구장 데이트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바로 촬영하러 가느라 데이트는 하지도 못했다. 사실 얘기를 한다 해도 그쪽(지성)에서 먼저 얘기를 해줬으면 했는데, 기회가 안 됐다. 내가 영화 개봉 덕에 인터뷰가 먼저 잡혔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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