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아나운서 채용 '0'에 우는 지망생들

신희은 기자 / 입력 : 2009.11.2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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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공채를 진행 중인 MBC에 2008년 응시, 2009년 초 입사한 아나운서 양승은(왼쪽), 구은영(오른쪽).


2007년 2월 서울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지민(26·가명)씨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다. 4학년이던 2006년부터 방송사 시험에 응시하기 시작해 올해로 4년째다. 김씨는 지상파, 케이블 방송뿐 아니라 제주도까지 가 지역방송 시험을 치렀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탈락 횟수만큼이나 김씨가 쏟아 부은 비용도 만만찮다. 아나운서 아카데미 입문반·정규반을 다니느라 450만 원, 카메라테스트와 면접 의상 구입에 300만 원, 미용실 메이크업·헤어 비용에 3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계속되는 낙방에 자신감을 상실해 100만 원 가량 들여 쌍꺼풀 수술도 받았다.


이제 자신감이 생겼을 법도 한데 김씨는 올해 고민이 더 깊어졌다. 지난해부터 아나운서 채용이 꾸준히 줄더니 현재 공채를 진행 중인 MBC가 아나운서 선발을 포기한 탓이다. SBS, KBS도 올해 내 뚜렷한 채용 계획이 없는 실정이다.

지상파 3사의 아나운서 채용 인원은 2006년 9명, 2007년 13명, 2008년 9명으로 경쟁률이 1000대 1을 훌쩍 넘는다. 그나마 채용이 있다 해도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경쟁률을 통과해야 하는 바늘구멍인 셈이다.

아나운서 지망생 카페에는 "아나운서 하나만 보고 준비해 왔는데 이제 포기해야 하느냐", "긴 터널 같은 입사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슬럼프에 빠졌다", "경제도 어려운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는 등의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나운서 지망생인 이화여대 4학년 현수연(25·가명)씨는 "방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꿈으로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준비하고 있지만 계약직을 맴돌다 소모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며 "주변에 아나운서 지망생은 많지만 정규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라고 털어놨다.

사설교육기관인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 임성건 실장은 "지상파 방송의 채용이 줄어든 데다 케이블, 지역 방송의 경우 1~2년 계약직인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장래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느낀다"며 "아나운서의 경우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경기불황에도 아나운서 지망생 대부분은 아카데미를 거쳐 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나운서직에 지원하는 순간 기자, PD 등 여타 언론 직종에 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KBS가 아나운서 카메라테스트 복장을 청바지에 흰 티셔츠로 제한한 것도 과도한 비용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몸매와 외모에 치중한 선발 아니냐", "청바지, 티셔츠까지 결점 커버용으로 맞춰야 하느냐"는 등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아나운서 지망생의 90% 이상이 2~3년 계약직으로 채용된다는 것.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 공채를 준비해 시험에 응시해야만 아나운서로 계속 활동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리포터, VJ 등 직종을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행 아나운서 선발 시스템이 막대한 비용과 긴 준비기간을 거쳐 비정규 인력을 양산하는 구조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올해 SBS, KBS 등 방송업계의 경영사정 악화와 인력 감축 움직임으로 이 같은 상황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지상파 방송의 아나운서 채용 인원은 '제로'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KBS 인사팀 관계자는 "올해 신규인력 채용 계획은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며 "공채 시기와 채용인원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SBS 인사팀 관계자도 "2008년에 예정했던 것보다 신규 인력을 많이 뽑아 올해는 공채 일정이 없다"며 "아나운서의 경우 2008년, 2009년 채용이 없었기 때문에 2010년에는 선발 가능성이 높으며 인원은 그 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SBS측은 2010년 공채계획이 세워지면 이 해 6월경 공고를 통해 9월 초까지 신입을 채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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