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남북관계, 지배계급 관용에 달렸다"(인터뷰)

임창수 기자 / 입력 : 2011.01.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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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류승희 인턴기자


'1000만 감독' 이준익이 돌아왔다. 영화 '평양성'은 2003년 '황산벌'에 이은 8년만의 후속작.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어 또 다시 사극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평양성'은 제목 그대로 나당 연합군과 고구려군의 평양성 전투를 담았다. 악에 받힌 관창의 희생을 앞세운 신라군은 역사 속에서와 똑같은 8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평양성문 앞에 당도했다.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을 두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했다. "상업영화 은퇴를 걸었다"는 발언 또한 그러한 자신감의 발현. 전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20대 개새끼론'을 자조하는 88만원 세대의 아픔과 먼지처럼 흩어지는 남자의 꿈을 그렸던 이 감독은 '평양성'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황산벌'을 구상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3부작이 될 수밖에 없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크게 세 번의 전투를 치르는데 그게 황산벌 전투, 평양성 전투, 매소성 전투다. 그럼 왜 하필 8년이 지난 후에야 후속작을 만들었느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라스트를 희망이 없는 절벽에서 끝냈더니 감독으로서 희망적인 결말에 대한 갈증이 일었던 것 같다. 그걸 해소하는 방법은 영화를 다시 찍는 수밖에 없었고. 그때 생각했지. 아 '평양성'을 찍을 때가 왔구나. 라스트는 이렇게 끝내야겠구나."

김유신과 계백의 대립구도 속에 반전 메시지를 녹여냈던 '황산벌'과는 달리, '평양성'은 인물 군상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그 내용을 풍성히 했다. 5000결사대의 유일한 생존자 거시기는 갑순과의 멜로 끝에 '전쟁 종결자'가 되고, 연개소문의 세 아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구려를 구하려한다. 김유신과 당나라 총사령관 이적은 고구려 점령 후를 염두에 둔 파워 게임을 벌인다.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에서 이 같은 여러 인물간의 심리적 관계를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극중 권력자들의 너그러운 모습과 계층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으로 결국 그 마지막에는 희망의 방점을 찍고자 했다.

"'황산벌' 때와 가장 다른 것이 있다면 드라마의 이야기 방식이다. '황산벌'이 김유신과 계백으로 대표되는 신라, 백제간의 대결구도를 전제로 민초 거시기의 존재가 살아남는 이야기였다면 '평양성'에서는 모든 인물간의 밀도 있는 심리적 관계를 표현해내고자 했다. 더불어 지배계층과 권력자의 너그러움과 계층 간의 갈등이 해소됐을 때의 기쁨을 녹여내고 싶었다. 김유신을 보면 확실히 느껴질 거다. 거시기의 비방방송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노사협상을 방불케 하는 문디와의 협상에서도 쿨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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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류승희 인턴기자


남북을 떠올리게 하는 신라와 고구려의 대결을 종결시키는 것은 결국 민초들 중 하나인 거시기고 마지막까지 남는 것도 민초들이다. 극중 그려진 지배 권력의 관용과 포용은 이준익 감독 개인적인 바람과도 맞닿아 있었다.

"남북관계든, 동서간의 지역갈등이든 지혜로운 해결은 결국 지배 계급의 너그러움에 달려있다고 본다. '못 살겠다', '배고프다' 민초들은 항상 자기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결국 우리가 지배자나 권력자의 너그러움이 부족한 세상에서 사는 거 같고 개인적인 권력자들에 대한 바람이 영화에도 녹아난 셈이다. 전쟁도 결국 다 살자고 하는 것이다. 민초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솔직하게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권력자들이 인정을 했을 때 갈등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러닝타임 안에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와 심리를 그려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 이 감독은 그럼에도 한 두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단 다양한 인물 군상의 진정성을 모두 전달하고자 했다. 인물이 많아지면서 시선이 분산되고 상업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부분들은 결국 자신이 극복해야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이 감독은 털어 놓았다.

"한국영화가 상업영화로 획일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점점 장르화, 공식화되어가고 있는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중견감독으로서 장르영화만 답습할 수는 없다는 소명의식이 있다. 분명 주인공이 많다보니 시선이 분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극복해야하는 숙제 아니겠나."

이 감독은 '평양성'에 대해 관객들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수백의 사람들이 함께 같은 영화를 보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민초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인물을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한 두 명의 영웅들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에 이미 많지 않냐'는 반문이다.

"이 이야기는 민초들의 이야기고, 때문에 인물 개개인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가치 있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한 두 명의 인물의 이야기와 판타지에 몰입하기보단 개인이 존중받는 모습과 그를 통해 가치를 이루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위한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다. 관객 하나 하나를 영웅으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으로 찍었다."

전쟁을 코미디로 푸는 작업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두 가지를 이종교배하는 기분이었다는 이 감독은 어려움 속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작업했노라 밝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희적인 본능이 있는 동물이다. '권력에 대한 풍자와 해학에서 나오는 웃음이 가장 높은 단계의 웃음'이라는 말이 있다. 빵 터지는 개그는 없을지 몰라도 상황이 주는 풍자와 해학, 익살과 유머는 통할 거라 생각했다. '황산벌' 때도 그랬고 '왕의 남자'때도 그랬다. 절박함 속에서도 광대의 웃음을 슬프고 행복하게 관객들이 같이 즐기지 않았나."

상업영화 감독 은퇴를 건 8년만의 후속작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1000만 감독 이준익. "속으로야 자신 있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라며 활짝 웃는 그에게서 모든 걸 쏟아 부은 뒤의 후련함과 시원섭섭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처음 기획한 대로 완성됐으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그의 결과물이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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