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앵커 "자기세계 강하면 뉴스로선 손해"(인터뷰)

배선영 기자 / 입력 : 2011.03.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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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사진제공=SBS>


SBS 신동욱 앵커를 만났다.

그는 오는 3월 18일 5년 5개월 동안 맡아왔던 SBS 8시 뉴스 메인 앵커에서 하차한다. 후임은 김성준 기자와 박선영 아나운서로 결정됐다. 하차 후, 신 앵커는 오는 7월 미국 워싱턴으로 향해 향후 4년간 특파원 생활을 하게 된다. 마지막 방송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2월 25일 오후 목동 SBS에서 신동욱 앵커를 만나 소감을 들어보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신동욱 앵커는 처음 기자를 꿈꾸던 시절부터 기자시절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언론인상을 들려줬다. 다소 말하기 껄끄러울 수도 있는 지난 해 양배추 김치 클로징 멘트와 관련 "그 질문 나올 것 같았다"면서도 거리낌 없이 답해줬다.

"시원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딱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며 웃었다. "뉴스 앵커에서 하차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동안 저녁 약속을 한 번도 못 잡았어요. 여유 있게 친구들 만나 저녁도 먹고 소주 한잔 하고 싶네요"라 답했다.

앵커이기 이전에 기자인 신동욱 앵커로서는 관계의 벽을 가장 허물기 쉽다는 저녁 술자리가 그리울 수밖에 없었나보다.


신동욱 앵커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1992년 SBS 공채 2기 기자로 입사했다. 흔히 언론 고시생이라고도 불리며 대학입학과 동시에 각종 스터디로 분주한 오늘날의 대학생들과 달리, 신 앵커는 군 전역 후에야 기자를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은 일찍 스터디를 하고 준비를 하던데, 사실 제가 대학생일 때는 취업 자체도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민주화 운동이 거세던 시절이었잖아요. 다만 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큼은 대학 신입생부터 하고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그 꿈이 기자로 압축된 것은 군 제대 후였죠."

그 흔한 탈락의 고배도 없었다. 신동욱 앵커가 입사 원서를 넣었던 1992년도에는 MBC는 기자 공채 시험이 없었다. 1991년 새로 생긴 SBS에 이어 KBS에 차례로 원서를 냈다. 이후 SBS에서 합격발표가 나면서 KBS는 원서만 넣고 테스트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SBS에 입성(?)했지만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초년병 시절, 명절 때 고속도로에서 중계를 한 적이 있었어요. 카메라만 봐도 가슴이 쿵쾅대던 시절이었죠. 정말 잘 해보고자 하는 욕심에 열심히 준비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주머니에 원고를 넣어뒀어요. 그런데 스탠바이를 하고 보니 원고가 사라졌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다가 긴장해서 떨어뜨린 거죠. 큐 사인은 들어오고… 간신히 방송을 하긴 했지만 정말 아찔했죠. 그 외에도 현장에 나가 방송시간을 못 맞췄던 기억도 있죠."

기자들의 실수담 치고는 평범했다. 돌이켜보니 신동욱 앵커는 뉴스 진행을 하면서도 크게 회자된 방송사고가 없었다.

"방송 자료 화면에 남을 만큼 큰 실수를 한 적은 없어요. 개인의 스타일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분위기 자체가 실수를 하지 않게 서로 맞춰가요. 화면이 끊어져 갑자기 제게 넘어왔는데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있는 정도의 실수는 한 적이 있어요. 사실 방송실수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네요."

요즘은 뉴스도 시청률 전쟁인데 별다른 사건사고와 에피소드가 없는 그의 뉴스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뉴스도 한 편의 예능쇼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

하지만 신동욱 앵커는 "앵커의 경우,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뉴스로서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고 그의 뉴스관을 말했다.

"처음 뉴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앵커는 굉장히 말을 잘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말을 잘 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정말 좋은 앵커란, 말을 적게 하는 앵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특징 없는 앵커로 기억될 수도 있겠지만 뉴스를 위해서는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동욱 앵커에게도 호된 채찍질은 있었다. 바로 지난해 떠들썩했던 양배추 김치와 관련된 클로징 멘트 때문이다.

대통령의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식탁에 올리면 된다'는 발언을 놓고, 신 앵커는 "대통령이 물가를 잘 모르고 엉뚱한 말을 했다는 건데 설혹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까지 해석하고 논란을 벌일 일인지는 의문입니다"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 옹호 발언이라며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오해하신 부분에 대해 거듭 사과드립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의 방법이 전혀 다른 것 같았어요. 그런 의도로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하죠." 신 앵커는 사과의 말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풀어 설명하면 그날 여러 진보 매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실인식을 이렇게 나이브하게 할 수 있냐는 비판들이 쏟아졌습니다. 문제의 본질이 아닌 것이 쟁점화 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문제 때문에 고통 받는 배추농가와 서민들의 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의도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분들은 그렇게 해석을 안 할 수도 있으니...마음 상하셨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모든 것은 짧은 클로징 멘트 속 행간의 의미가 미처 전달되지 못해 생긴 오해였다는 설명이다. 발언 자체에 어떠한 이중적 의미도 싣지 않았다는 그의 미간에는 어느 새 주름이 잡혔음에도 불구, 표정만은 꼿꼿하고 단정했다.

끝으로 앵커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다. 그 순간 역시 '오해'였다.

"촛불집회 때 였습니다. 하루하루가 막막했죠. 우리 사회는 매체에 대한 이데올로기 적인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방송뉴스 같은 경우는 신문처럼 이념적인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힘들고, 또 방송은 특정한 아젠다를 가지고 독자를 만나는 신문과는 다른데, 고정된 시각을 가지고 우리의 뉴스를 평가하려고 하는 부분이 힘들었습니다. 괴롭기도 했고요. 당시 취재를 나갔던 후배들이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특히 더 그랬습니다.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정치적인 목표나 이념적인 잣대를 가지고 사건을 다루지 않습니다. 대중에 의한 그런 압력에 부닥칠 때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언론인 상요? 여러 가지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내가 존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가져왔습니다. 언론인 역시 그런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네요. 내가 쓰는 기사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영향력 때문에 많은 선후배 기자들이 내가 제대로 기사를 쓰고 말을 하느냐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을 합니다. 때로는 고통이 되는 작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의 언론인 생활이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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