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100편 떼놓고 데뷔한다는 심정"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1.03.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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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희 인턴기자


"100편이나 찍은 감독이 또 같은 것을 찍을 순 없잖아요."

올해 75세. 임권택 감독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1961년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해 반세기 동안 영화를 해왔지만 그는 지금도 감독이 무섭고 새로운 영화를 갈망한다고 했다. 임권택 감독은 17일 101번째 영화 '달빛길어올리기' 개봉을 앞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청년처럼 눈을 반짝였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천년 한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취화선' '천년학' 등 우리 것을 영화로 만드는 임 감독의 또 다른 도전이다. 청년 임권택은 이번 영화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새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세상이 그렇게 바뀐다는 데 영화를 계속 찍으려면 배워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최근 병원에서 계속 검사를 했는데 어떠신지요.

▶워낙 중고차가 돼서요. 영화 찍을 때는 순 악으로 버티니깐 괜찮은데. 허허. 현장에선 오히려 스태프들이 감독님 안 아프시냐고 해요, 그래야 쉴 수 있으니깐.


-개봉을 앞두고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요.

▶100편이나 찍었지만 매번 흥행이 어찌될지 걱정돼요. 잘 돼야 다음 영화 또 찍을 수 있으니깐.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작업을 하다보니 초조함도 있구요. 기왕 100편을 찍었으니 달라진 영화가 아니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요. 달라지려고 한 시도들이 잘 되고 있는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됩니다.

-흥행은 맞추시나요.

▶늘 모르겠다. 한 번도 맞춘 적이 없다.

-왜 한지를 소재로 만드셨나요.

▶왜 낯선 것만 갖고 일을 저지르나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성격 자체가 작은 성과를 냈다고 그 자리에 머물면 절대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한지를 알면 알수록 우리 삶이란 비슷하더라고. 너무 넓고 깊어요. 1년을 넘게 취재하고 영화를 찍었는데 촬영 마지막까지 한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 많은 이야기에 현혹돼 쏠리면 이도저도 안되니깐 조정하는 게 힘들었죠.

-다큐멘터리를 삽입하는 등 한지를 알리는데도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요.

▶처음엔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했나도 싶었어요. 하지만 한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영화에 담아서 우리 사회에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아직 없을 것도 같고. 또 영진위나 동서대, 전주시에서 도움을 줬으니깐 할 수 있었지, 순 생짜로 남의 돈 갖고 했으면 못했죠.

중국이나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 종이를 알리는데 제일 좋다는 우리 한지는 구박을 받잖아요. 전자제품 말고도 옛날 우리 좋았던 것들을 알리고 팔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국책영화처럼 무조건 우리 한지 좋다고 어거지스럽고 불편하게 만들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모님(배우 채령)이 늘 함께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번 영화에는 출연도 하셨고.

▶내가 상태가 안좋으니 스케줄도 관리해주고 병원도 데려가주고 총괄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번 영화에는 마침 출연하기로 한 배우가 펑크가 나니깐 스태프들이 권해서 출연한 겁니다. 아들 같은 경우는 배우를 한다길래 "임모 아들이라고 도와줄 것은 없다"고 했죠. 그래도 아비니깐 아들이 잘 할 수 있는지 한 번 경험이라도 해보라고 이번에 작은 역할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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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희 인턴기자


-'달빛 길어올리기'는 과거 영화와 달리 사적인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가 다르게 느껴지던데요.

▶100편 만들었는데 그만그만한 영화에서 벗어나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어요. 100편 틀 안에서 허우적대면 이도저도 아니니깐.

-'달빛 길어올리기'란 제목이 인상적인데. 영화에서도 달 이미지를 많이 차용했는데요.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이만재 선생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렇게 지어줬어요. 한지의 품성과 달이 담기도 했고, 태양 아래 놓여있는 게 아닌 것도 닮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는데요.

▶필름현상소들이 4~5년이면 문을 닫는다고 하데요. 이제 디지털 시대라면서. 내가 몇 살까지 살진 몰라도 손 놓고 남들 영화 찍는 거 구경이나 하면서 노후를 보낼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체험해보고자 했습니다. 우리 같은 아날로그 세대 감독은 필름 아까워서 NG가 나면 안되니깐 긴장을 하고 찍는데 디지털 카메라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대신 그 만큼 긴장이 풀어지는 것도 있더라고. 그래도 젊은 감독들에겐 그것도 당연하겠죠.

-영화 자체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편집은 상당히 밭던데.

▶고맙습니다. 내가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어요. 100편을 떼어놓고 데뷔하는 심정이랄까. 영화도 나이 만큼 찍는 것 같아요. 이하도 안되고 이상도 안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영화적 재미를 흉내내려고 해도 절대 될 수 없고, 또 젊은 사람들이 나 같은 나이 베긴 영화를 찍을 수 없잖아요. 영화는 삶이고 체엄이고 누적이고 발견이니깐.

-이번 영화는 CJ,쇼박스,롯데 등 메이저 배급사들이 공동으로 배급하는데요.

▶이런 영화는 개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 밖에 큰 배급사들이 힘을 모은다고 해서 굉장히 고마워요. 성과를 어느 정도 내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다음 영화를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또 다른 기회가 있어 찍고 싶단 생각은 있죠. 그러려면 이번 영화가 흥행이 잘 돼야 할텐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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