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진이냐 윤필주냐, 아, 너무 어렵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6.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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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절정의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선택의 기로를 남겨놨다. 독고진이냐 윤필주냐, 차승원이냐 윤계상이냐, 나쁜 남자냐 착한 남자냐. 아, 그것이 문제로다.

'나쁜남자-착한남자'에 대한 로맨틱코미디, 혹은 순정만화의 천착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단팥빵이냐 소보루빵이냐, 물냉면이냐 비빔냉면이냐 만큼 깊고 심각하다.


이 분야 드라마에 일가견이 있는 '홍자매' 홍정은·홍미란 작가는 '최고의 사랑'에서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의 대립 구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 비호감의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이 나쁜 남자 독고진(차승원 분)과 착한 남자(윤필주 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주변 인물들도 저마다 '독라인'과 '필라인'을 자처하며 줄을 섰다.

시청자의 마음이라고 뭐가 다를까. 이벤트로 독라인-필라인을 줄세우기 하는 카페까지 등장했다.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까지 인기를 모으는 세상이다. 알렉스가 진행한 Mnet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상금을 노리고 출연한 나쁜 남자들 등 총 12명의 남자 사이에서 진정 사랑을 위해 출연한 3명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대개의 여성 출연자들이 3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만큼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의 구분은 모호하다. 여기에 착한 남자를 가장한 나쁜 남자, 나쁜 남자를 가장한 착한남자가 더해지면 순정만화의 전문가라 해도 헷갈린다.

차승원이 맡은 독고진은 순정만화의 고전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를 계승한 나쁜 매력남 자체다. 외적 조건은 완벽하다. 대외적으로는 잘생기고 자상하며 부유한 톱스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똥꼬진'이란 별명이 자연스러울 만큼 안하무인의 왕싸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37년만에 처음 사랑에 빠진 중년이라는 것. 그러나 그는 이 첫사랑이 당황스럽고 창피해 사랑하는 여인에게까지 독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반전은 이 나쁜 남자의 여린 순정이다. 여기에 차승원의 출중한 능청 연기가 더해져 독고진의 매력은 더욱 상승했다.


사실 더 독특한 캐릭터는 윤계상이 연기하는 '완벽한 착한 남자' 윤필주다. 잘나가는 한의사에, 살면서 어머니에게 한 반항이라고는 라면 많이 먹고 밥 맛없게 먹기가 전부인 이 착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헌신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대개 가난하다거나, 못생겼다거나, 패션센스가 꽝이라거나 혹은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핸디캡을 갖고 나쁜 남자와 대결해야 했던 그간의 착한 남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어느 하나 흠잡을 것 없는 완벽남 그 자체다.

현실이라면 윤계상의 해맑은, 혹은 쓸쓸한 미소 한 번이면 넘어가는 것이 정상이련만, 그래도 구애정은 독고진에게 더 끌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극중 구애정과 윤필주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알고보면 단팥빵 같은 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진짜 맛있는 빵인데. 오래 두고 봐야 알 수 있죠"

"구애정씨는 그냥 평소대로 해요. 전 옆에만 있을게요. 그러다보면 제가 진짜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현실 속 수많은 구애정에게 (물론 그녀들에게 이같이 꿈같은 선택의 기회가 오게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윤필주를 선택하길 권한다. 중년의 여성들에게 사윗감으로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않고 독고진 대신 윤필주를 고를 것이다. 시간을 두고 지켜볼수록 안전하고 안정되고 편안함 삶의 소중함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로맨틱코미디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 그 자체다. 이 경우 대개의 작가와 연출자들은 나쁜 남자의 손을 들어준다. 왜? 더 극적이고 더 짜릿하고 더 황홀하니까. '최고의 사랑'에서 필주앓이보다 독고진앓이가 더 강하고 극성스러운 것은 예정된 결과나 다름없다.

주인공들만 모를 뿐, 드라마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여주인공은 착한 남자를 버리고 나쁜 남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걸. 사윗감으로 만장일치 윤필주를 추천했던 수많은 장모님 시청자들의 실망, 필라인을 독려했던 가족들의 허탈함이 이어질 것이다. 그건 나쁜 남자의 매력에 푹 빠진 구애정이 사랑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다. 구애정 탓이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들의 운명이다.

'꽃보다 남자'의 잡초같은 금잔디(구혜선 분)는 성질 더러운 구준표(이민호 분)를 선택했으며, '시크릿 가든'의 어메이징한 여자 길라임(하지원 분)은 까도남 김주원(현빈 분)과 맺어졌다. '파리의 연인' 태영(김정은 분) 또한 '내 안에 너 있다'던 수혁(이동건 분)의 간절한 고백을 뒤로하고 한기주(박신양 분)에게 갔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구애정의 운명 또한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에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로맨틱코미디의 마력이요 매력이다.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저울질은 여주인공만의 몫이 아닌 탓도 있다. 시청자 또한 대리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기 마련. 누군가 내게 뜨거운 커피를 쏟았을 때, 쫓아가 그놈을 때려눕힌 그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화상입은 팔에 붕대를 감아준 그를 선택할 것인가. 독고진이냐, 윤필주냐. 아,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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