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장훈 "마법같은 순간을 담았다"(인터뷰)

"폭탄 하나도 정서를 담아 터지게…" '고지전' 연출 장훈 감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7.2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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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송지원 기자 g1still@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슬픈 전쟁영화다. 영화는 1950년 새벽을 기해 북한군이 남침을 했다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한국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수많은 청춘들이 살아 집에 돌아가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렸던 한국전쟁의 끝을 그렸다. 영화는 남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딱 58년이 되는 지난 27일 드디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가 포착한 한국전쟁은 여느 전쟁 블록버스터처럼 흥분상태의 짜릿함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대신 가슴 저릿한 비애를 절절하게 담아냈다. 장훈 감독이 내내 고집했던 것은 한국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느낌이고 정서였다. 오죽하면 폭탄 하나가 터져도 정서를 담아야 한다고 했을까.


수십번의 리허설을 거쳐 완성됐을 것이 분명한, 가득 메운 깨알같은 병사들이 함성을 외치며 달리고 또 쓰러지는 장면을 포착한 슬로우 화면은 그의 말처럼 '마법처럼' 카메라에 담겼다. 그 잔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뜨거운 여름 영화 대전의 중심에 있다.

▶올 여름 보니까 날씨도 더운 것 같다.(웃음) 영화마다의 차이가 있지 않나. 다른 거고. 아직 외면할 수 없는, 여전히 현실인 부분이 담긴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재미가 있으니까 편하게 와서 봐주셨으면 한다.


-한국전쟁을 도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영화에 강하게 반영된 느낌이다.

▶프리프로덕션 할 때부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쓰지 않고 전쟁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쟁 부분을 너무 오락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화려하거나 통쾌하거나 시원하거나 그런 것들이 맞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 전쟁이면 오락적으로 그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는 그럴 수가 없겠더라.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실제적인 실재감 있는 규모감이나 이런 것들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런 차원에서 다른 전쟁물과는 다르게 집중한 부분이 있다면?

▶예산 많이 들어간 전쟁영화로서 한국 전쟁을 소재화해서 오락 영화로만 비칠 수 있는 묘사들이나 장면들을 찍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재감 느껴지는 상황에서 규모감 보여주고 같이, 빽에 걸린 인물들 보여주는 신이 많지 않다. 효과적으로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길게 같이 움직이는 부분. 못 봤던 장면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그래서 제목이 '고지전'이 된 건가. 제목도 독특하다.

▶원래부터 제목이 '고지전'이었다. 제목을 보고 사극인가? 하면서 거절하려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박상연 작가님과 제목을 바꿀까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이걸 다르게 볼 것인가. 전쟁 영화를 또 봐야하냐. 기존 전쟁영화와 뭐가 다르냐. 제가 초점을 맞춘 것이 바로 고지였다. 반복적인 전투가 고지로 집중이 되더라. 그것이 맞을 수 있겠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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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송지원 기자 g1still@


-실제로도 경사가 대단하더라. 카메라가 실제 앵글로 돌아가서 배우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세계 전쟁사를 찾아봐도 고지전이 많지 않다. 베트남전 하면 밀림하고 땅굴, 2차대전 하면 노르망디 전투 같은 게 이미지화 돼 있지 않나. 한국 전쟁이라면 또 다른 무엇이 있고 그것을 못 봤던 비주얼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최우선의 과제였다. 실제 고지 전투를 경사면에서 찍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경사면 전투를 인물 가까이에 가서 잡은 영화가 별로 없고 대부분 빠져 나와서 보여준다. 장비 사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야만 고지를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비지 않았다. 나무도 없고 온통 흙산인데 비교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없으니까 가파른 느낌을 담기가 쉽지 않더라. 촬영감독이 워낙 잘 해주셨다. 김우형 다른 전쟁영화와 비교해도 장면적으로 다른 태도를 가지고 만들었고 특별하고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의형제' 이후 다시 남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남북과 관련된 소재인데 '의형제'가 끝나고 바로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쉽게 엄두가 안 나더라.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준비할 것도 많았다. 그러려면 마음을 먹어야 하니까 쉬고 싶기도 해 거절하려고 했었다.

-다시 해보니 어땠나? 또 해보겠다는 생각도 드는지.

▶보신 분들이 물어보시더라. 남북 이야기를 두번이나 만들었으니, 감독님 생각하기엔 통일이 언제 될 것 같냐고. '제가 알면 좋겠네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지금은 말고 통일이 되던 안정적인 때가 왔을 때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의형제'도 그렇고 전쟁, 대립에 대한 허무주의가 짙게 깔린 듯하다.

▶허무주의라. 정치적인 다른 신념을 가진 인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른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물론 다른 점도 많았다. '의형제'는 해피엔딩 아닌가?

▶해피엔딩 아닌데. 톤은 좀 그런 부분이었지만 남한의 남자 북한의 남자, 모두가 이 땅에 못 살고 가족을 찾아서 외국으로 떠나지 않나. '그들이 이 땅에 돌아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 새터민 사이에서 영국 바람이 분 적이 있다고 하더라. 여기서 이방인으로 살기보단 아무도 모르는 데서 이방인으로 살겠다는 거다. 사실은 좀 슬픈 느낌이라고 봤다.

-배우 고수, 신하균, 이제훈과의 작업은 어땠나?

▶고수는 하든 안하든 끝날 때까지 그 인물이 돼 있다. 맥주를 한 잔 하고 숙소에 있든 늘 그 인물 상태다. 역할이 정신적인 악어 중대장인데, 촬영이 끝나도 역시 정신적인 중대장으로 부대원들을 이끌었다.(웃음)

신하균 선배는 워낙 연기 경험이 많고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촬영 때의 집중력이 좋다. 촬영이 아닐 땐 사람 좋은 신하균 배우고, 촬영할 땐 몰입해서 그 인물이 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고수는 촬영 없는 날도 산에서 체력을 연마한다면 신하균 선배는 내일 찍을 걸 머리로 생각하면서 푹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이제훈은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사실 현장이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못 만들어준다. 장비를 계속 달고 있어야 하고, 배우 한 사람당 세 사람이 따라다니고, 가장 감정이 좋은 타이밍에 못 할수도 있다. 고수, 신하균도 마찬가지지만 제훈씨는 나이가 어린데도 집중을 잘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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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 ⓒ송지원 기자 g1still@


-우연히 포착된 인상적인 장면들도 있나?

▶음… 그렇기보다는 전투신들 찍을 때마다 적게는 100명, 많으면 300명. 합을 맞춰야 하는데 동선이 다 다르다. 리허설을 하면서 그들의 그림과 위치가 맞아서 어떤 정서나 느낌이 나오는 순간을 찾는다. 그게 약간의 차이로 안 나올 때가 많다. 한 명만 틀려도 그게 안 된다. 운이 굉장히 좋아야 한다. 보통이라면 따로 찍겠지만 이번에는 같이 맞춰서 하는 게 콘셉트였다. 300명 200명이 같은 느낌을 생각하면서 합을 맞춰 어떤 느낌을 만들어가는 그 순간, 그것이 맞아들어갔을 때, 마치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정말 마법같은.

-참고한 이미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기록사진을 많이 참고했다.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정서를 주기도 한다. 그런 정서들을 영화 장면에 최대한 담자고 했다. 신마다 키 샷이 있었고, 촬영 전마다 상의를 해서 방법을 고심했다. 포탄 한 발이 터지더라도 정서적이어야 한다고 강요를 했다. 효과로 보이면 안 된다고. 스태프들이 막막하셨을 거다. 그랬을텐데 촬영감독님이나 류성희 미술감독님 모두 저보다 영화를 많이 하신 분들이라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시더라.

-감정적으로도 많이 절제한 부분이 눈에 띈다.

▶막 울리고, 너무 많이 드러내는 걸 사실 좀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가 '울어야 돼' 그러면 어떤 분은 울 수도 있지만 저는 성향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런 톤이 '고지전'에 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도 그렇고 '의형제'도 그렇고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많이 찍었다.

▶사람들이 마초라고 한다.(웃음) 마초 아닌데…. 남자영화 찍고, 여배우들이 나오긴 해도 비중이 많지 않으니까 남자영화 찍는 마초라고 하는 것 같다. 저는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엔 여배우가 다수 등장하고 멜로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남자 이야기는 또 찍을 것 같긴 하다. 남자 이야기가 편한 것 같고, 좋아하기도 한다. 나중에 언젠가는 여배우들이랑 멜로를 꼭 찍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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