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감독' 구혜선 "배우로 BIFF 오면 민망할듯"(인터뷰)

부산=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10.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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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기범 기자 leekb@


그녀는 연기자이며 화가이고 음악가이자 작가다. 또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다. 이번 제 16회 부산영화제(BIFF)에서는 감독이었다.

신작 '복숭아나무'를 들고 온 그녀가 '감독 구혜선입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을 때의 감흥은 퍽 독특했다. 파격적인 노출 속에 우아한 치맛자락을 흩날리는 여배우 속에서 셔츠칼라의 금빛 미니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또각또각 걸으며 단정히 인사를 건넸다.


곱지만 당찬, 배우이면서 감독인, 유쾌하고도 속 깊은, 뭐라 정의내리기 힘든 '다재다능'의 그녀 구혜선(27). 들썩이는 영화제 한 켠의 문 닫은 카페에서 그녀와 나눈 영화, 영화제, 그리고 구혜선에 대한 이야기.

-첫 상영에서 영사사고가 났다. 사과도 직접 했다고. 너무 속상했겠다.

▶저도 저지만 거기 오신 분들이. 그냥 환불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저희도 영문을 모르고 보니 참 속상했다. 관객들이 '돈이 문제냐, 영화를 보고 싶다'면서 안 나가고 앉아 계시는데 하시는데 울컥 하더라. 영사사고가 종종 있지만 그게 내게 닥칠 줄이야. 제 책임은 아니지만 그 영상물에 대한 책임이 있어서 안타까웠다. 제게 어떤 일이 생기면 거면 모를까,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가고 설명도 안 되고 그러니까 더 당황했다. 어쨌든 관계자가 이야기하는 거랑 제가 이야기하는 게 다를 테니까. 패닉이라는 게 뭔지 실감했다.


-'감독 구혜선'으로 레드카펫에 섰을 때 의상이 생각난다. 완전한 드레스는 아니지만 그 자리에 어울리는. 고심해 골랐나보다.

▶최대한 맞게 했다.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생각하신 게 있어서, 또 여배우로 가는 게 아니고 하니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 바지 정장을 많이 입었더니 이젠 바지도 질렸다 하고. 누군가 '영화제는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오는 거다' 그러셨는데, 너무 해보고 싶지만 예의 없다고 생각하실까봐. 드레스가 보기에는 예쁘지만 멀어 보이지 않나. 마치 우리끼리의 파티처럼 말이다. 가끔은 맞춤형으로,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즐겁게 즐기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드레스 차림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건가.

▶의식적이다. 하는 일이 연기라 연기자로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일도 하니까. 시나리오 작업하고 나면 팔과 어깨 통증을 견디지 못하니까 붓거나 멍들거나 해서 못 입는 점도 있다. 그림 작업하고 망치 들고 돌아다니고 보니 손에도 메이크업을 해야 할 만큼 상처가 많다. 그러다보니 여배우로 어디에 간다 해도 드레스 선택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도 입은 적이 없었나. 잘 생각이 안 난다.

▶방송대상 시상식 가면서 드레스 입은 적이 있다. 여자 연예인은 왠지 섹시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랄까, 압박을 느낀다. TV 나올 때마다 예뻐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외모에 집착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와 집착은 다르다. 발전하기 위한 관리는 좋은 것이지만, 집착은 아니지 않나. 나는 마치 남자친구가 긴 머리에 치마 좋아한다고 계속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는 것 같은. 그러다가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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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기범 기자 leekb@


-감독으로서는 처음 정식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느낌은.

▶'요술' 때도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아 다녀오고 하긴 했는데, 부산은 처음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영화제고 또 국제영화제다보니 확실히 무게는 다른 것 같다. 영광스럽다. 아직은 개봉을 안 한 영화라 긴장을 많이 했고, 아직 그 긴장감이 안 풀렸다.

-그러고보니 배우로 부산영화제에 온 적이 없다.

▶영화를 찍고 여배우로 오면 그게 민망할 것 같다. 영화 관계자들이 다 연렬 돼 있는건데, '구감독 구감독' 소리 들으면서 편한 바지 차림으로 다니다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거기 우리 스태프가 또 있을 텐데.

저 되게 무시당한다. 영화제 레드 카펫 밟고 누가 '예뻐요' 그러면 다 딴 데 보고 못 본 척 하신다. 어제 영화제 술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도 다른 스태프가 '구혜선씨 사진 하나만' 이러면 우리 스태프는 '아니 왜?' 이러는 분위기다. 연예인이랑 일하는 거라고 하시지만 이틀만 작업을 해보면 완전히 달라지실 거다.

-아니 어떻게 이틀을 보내기에 그렇게 되나. '촬영장의 꽃'같은 감독님 아닌가.

▶절대 꽃은 아니고, 망치 각목을 수시로 들고 다니면서 작업을 한다. 옷도 늘 입던 옷만 입는다. 팬 분 중 하나나 그런 글을 올리셨다. '부산에서 소매가 늘어난 후드 티셔츠 뒤집어쓰고 무릎 나온 스키니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사람 있으면 일단 잡아라.' 작업 가방도 언니가 대학 들어갈 때 사준 걸 못 바꾸고 계속 들고 다닌다.

-벌써 두번째 장편이다.

▶그런데 매번 데뷔라고 하시니까.(웃음) 늘 신인의 마음이다. 신인이 좋다.

-'복숭아나무'는 제작 소식부터 의외였다. 흡혈귀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좀 미뤄진 상태고, 갑자기 번쩍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머리가 두개 있는 사람이 두 인물처럼 보이는데 결국엔 한 인물이면 어떨까. 예전에는 잔혹한 걸 좋아했다. 색감도 그렇고.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며, 제가 나이를 먹긴 했다, 보기도 힘들고 만드는 것도 힘들게 되더라. 살인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많아지니까 그게 대중적인 이야기가 됐고. 이제 단편 두 개, 장편 두 개를 만들었는데 과연 내 색깔이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 고민했다. 사실 극장에서는 따뜻한 영화를 본다. 내가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에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좀 더 따뜻하고, 또 내게 맞는 판타지, 또 예산이 적게 드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됐다. 워낙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돈도 거의 안 받으시고 일을 하셨다.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얼마 전 후반 작업하시던 기사님이 '사람 복 많다'고 하시더라. 이런 스태프를 어디서 만나냐고. 저도 정말 감사한데 차마 말은 제대로 못하고 있다.

-샴쌍둥이 이야기를 담은 '복숭아나무'는 마치 그로테스크한 동화같다.

▶그림에 집착한다. 밖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집안에서는 그런 느낌이 난다. 전작 '요술'을 만들 땐 뭔가 난해한 걸 원했다.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스팅이 화려하다. 대체 어떻게 했나.

▶똑같다. 조승우씨 류덕환씨 회사로 시나리오를 보냈다. 감히 직접 줄 수가 없다. 친분 있다고 시나리오를 배우에게 직접 주는 건 무례라고 생각한다. 두 분 다 시나리오를 읽고 오케이 해서 합류하게 됐다. (남)상미의 경우는 이 시나리오 말고, 상미를 두고 쓴 시나리오가 있었다. 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말은 못했다. 같이 하면 '우리 작품'이지만 그 전까지는 '내 작품'일 뿐이니까. 정확하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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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기범 기자 leekb@


-이번에는 구혜선필름에서 제작하면서 제작자 역할까지 맡았는데.

▶다 회사에서 지원하시는 줄 아는데 지금은 아니다. '요술' 때 아마 회사가 힘들었을 거다. 현실은 냉정하다. 연예인이라고 투자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있었다. 제작비 빼고는 다 있었다. 그런데 그거 가지고 되더라. 돈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게 맞더라. 처음 단편 '유쾌한 도우미'를 같이하신 분들이다. 50분이 넘는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함께 해주셨다. 그 분들이 저를 키우고 계신다. 투자, 캐스팅이 안 됐을 때도 이미 스태프가 꾸려져 있었다. 그 와중에 조승우씨가 캐스팅 됐다하니 '으응? 조승우?' 이런 분위기였다. (웃음)

-제작 해보니 어떤가. 돈을 만져야 되는 일이다.

▶아, 그건 못하겠다. 저는 뭘 만드는 사람인데 돈이 오가니까. 맺고 끊는 게 정확하지가 못하다. 저는 안된다. 앞으로도 안된다. 여름이면 에어콘비 겨울이면 난방비, 계속 돈이 든다. '구혜선이 연예인이라고 돈을 많이 벌겠지, 그래서 영화 하겠지' 하지만 저 또한 아버지 퇴직하시고 식구들 벌어 살리는 가장이고 똑같이 생계를 꾸린다. 현실이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 많으니까 영화 제작하고 찍겠지 생각들 하시지만 제가 투자를 하면 경제생활이 힘들어진다. 아 힘들더라. 이번 영화 잘 돼야 된다. 그래야 다음을 할 여유가 생긴다. 배우도 좋지 않나. 보통 영화라면 개런티만으로도 우리 제작비를 넘겼을 거다.

-오래도록 애쓴 결과물을 갖고 여러 일을 하는데, 그걸 보는 편견도 만만찮은 것 같다.

▶뭐든 그것이 노출되면 그때부터인 줄 아시는 거다. 사실 영화도 오래 전부터 준비했고, 그림도 오래 전부터, 음악도 오래 전부터 해 왔는데 그건 잘 모르시는 거지. 막상 노출이 되면 '아 이런 거도 해?' 이렇게 된다. 가수 준비를 오래 하다가 데뷔를 했는데도, 저는 그냥 얼짱 출신의 운 좋게 데뷔한 연기자가 되는 거다. 벌써 원조얼짱, 1세대 얼짱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 안 달라질 수도 있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애쓰고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뭔가 벌써 달관한 것 같다.

▶필요하면 세숫비누 가지고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으려면 이게 있어야 하고, 따뜻한 물이 있어야 하고… 다 갖춰져야 한다고 하다보면 불행해진다. 내가 삶에 편해지는 데 감사함을 느낀다. 예전엔 뭔가가 갖춰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감사한 일이더라. 그 다음부터 뭔가가 편해진 것 같다. '그래도 괜찮아. 감사해.'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하는 일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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