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모 "나사 몇개쯤 풀어졌으면 좋겠다"(인터뷰)

영화 '가비'의 주진모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3.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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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기자


미술 작품을 분류하듯 조각 미남을 분류할 수 있다면 주진모(38)는 고전적 남성상의 대표군에 속하게 될 거다. 오목조목, 날카로운 콧날과 부리부리한 눈, 강인한 입매가 다 들어있는 조막만한 얼굴, 검게 그을린 피부와 다부진 체격, 깊은 눈빛까지.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남성상 자체인 것 같다.

개봉을 앞둔 영화 '가비'(감독 장윤현)에서도 그같은 면모가 보인다. 조선 고종이 일본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옮겼던 시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주진모는 사랑을 위해 조국마저 등지고 극단을 향해 질주하는 일본 스파이 일리치 역을 맡았다. 격동의 시대를 격정적으로 살아낸 남자다.


그 끝을 맛본 탓일까? '시나리오가 들어와야 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밤 하소연을 이어가던 주진모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건 조각같은 미남 배우의 오랜 갈증이기도 했을 터. 확신에 찬 어조로도 허술함을 감추지 않는 주진모를 보며, 그에게 귀여운 남자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얼굴이 살아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젖살이 빠져서 그런가. 연출자들에게 많이 듣는다. 어렸을 적 뵀던 분들이 오랜만에 보면 '애였는데 이제 남자가 됐구나', '남자 얼굴 나온다' 이러신다. 주름도 살짝 잡히고, 이럴 때 영화 많이 찍어야 한다고. 이제 영화 많이 찍고 싶다. 그런데 책(시나리오)을 안 준다.


-곽경택 감독님 작품 기다린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3년째 기다리고 있다.(웃음) 그 부분에서는 감독님과도 이미 이야기를 했다. 완성도 있게 준비하시는 동안 저도 다른 작품 할 수 있다고. 어쨌든 그게 시나리오 안 들어오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비'엔 어떻게 합류했나.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을 비우고 오신 느낌이었다. 거절하려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제가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셨다더라. 결정하고 난 다음에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못 들어갈 뻔한 영화였더라. 재기의 불씨를 안긴 사람이 저라고 들었다.

-어떤 점에 마음을 움직였나.

▶고종 때문이었다. 그가 내가 알던 왕과 달랐다. 전에 내가 알고 있던 고종의 이미지는 뭔가 힘이 약하고, 책임감 없고, 명성왕후를 잃고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내 백성이다'라며 대한제국을 준비하는 고종은 그게 아니었다. 그게 이 영화에 나와 있었다. 이런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욕심보다는 그런 부분이 컸다.

-사실 주인공은 따로 있는 셈인데.

▶이건 여자 주인공이 주인공이다. 욕심 막 부리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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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기자


-감독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많이 제시한 걸로 알고 있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 구조나 갈등 이런 데 대해 같이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화면에 나오는 비주얼, 앵글의 사이즈 그런 데는 전혀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월권이다. 그런 부분은 그냥 맡긴다.

-일리치라는 인물은 어땠나. 지금까지 한 캐릭터 중에서 제일 극대화된 인물이라고 말했는데.

▶말 그대로 영화에서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인물을 극대화했다는 표현이었다. 일리치라는 인물을 극대화시키는 데 대한 당위성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

처음부터 일리치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처음 일리치는 바른생활 사나이에 가까웠고, '나쁘게 갑시다' 했다. 폭주 기관차처럼 막 갈 수 있게, 내게는 명분 하나만 해 달라. 그럼 왕과 부딪치는 인물로 풀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 극적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선호하는 건가, 아니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역할을 자주 맡게 되나.

▶후자에 가깝다. 하다 보면 또 극대화시키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배우 주진모의 특장점이기도 하다.

▶사실 단점일 수도 있다. 닫혀있는 인물, 현실에는 없는 비현실적인 인물일 때가 많으니까. 또 요새는 생활에 묻어나는 연기를 또 높이 보는 분위기가 아닌가. 나도 두 가지 다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미녀는 괴로워'를 한 적도 있으니까. 그건 영화 색깔에 맞춰서 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나리오만 맞춰서 오면 준비가 돼 있다.

-장윤현 감독은 '가비'를 두고 '나라가 아프면 사랑도 아프다'라고 하더라.

▶맞는 이야기다. 감독님이 전체를 그리는 틀을 그렇게 잡았다. 그러면서 멜로영화지만 스릴러와 추리를 가미하고 싶어 하셨다. 저는 좀 더 감성적으로, 현실의 사람들이 애틋해하고 갈망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고.

-그러고 보면 사랑이야기에 천착한다 싶을 정도로 크게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사랑'이라는 영화도 있고, 사랑이야기 소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좋아한다. 사랑이라는 건 남녀만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나 그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감정을 움직이는 이야기,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는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지껏 해왔던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캐릭터를 했던 것 같다.

-사랑 이야기도 말랑말랑한 이야기보다 밀도 높은 진한 사랑 이야기에 더 끌리나.

▶그건 아니다. 나한테 주어지는 책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 사실은 우리 주변에 있는, 소소한 사랑 이야기도 하고 싶다. 공감하고, 또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책을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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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기자


-선 굵은 외모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선입견이 무섭다. 정말 생긴 것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성형 수술을 해서 어떻게 할 수는 없잖나. 내가 인물에 대한 해석을 바꿔서 할 수 있을 거다. 릴랙스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왜 못하겠나. '얘는 이런 걸 할거야' 하는 선입견을 버려주셨으면 좋겠다.

-귀여운 남자 캐릭터는 어떤가.

▶겉은 멀쩡한데 나사가 하나 풀린, 엉뚱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완벽남들은 너무 인식이 판에 박혀 있지 않나. 저도 나사 몇 개쯤 풀어져서 보이고 싶다. 너무 조이다보니 나사가 닳았다. 빨리 풀려야 한다.

-실제 주진모는 로맨티스트인가?

▶모르겠다. 다만 한 번 빠지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다른 걸 안 본다. 하나만 보는 성향이 있다. 로맨티스트라고 하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하는지 모르겠다.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나 백마 탄 왕자님이 못 되는 사람인 건 맞다. 그런데 내 여자한테만큼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짝을 찾으라는 압박이 심하지 않나.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다. 평온하다. 이제는 운명을 믿으려고 한다. 그리고 혼자 있는 데 익숙해지니까 연기를 더 잘 할 것 같다. 갈구하는 연기로는 끝을 볼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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