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vs '내아내', 나의 여자를 잃는다는 것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5.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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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후궁: 제왕의 첩',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내(임수정)가 싫어 카사노바(류승룡)를 끌어들인 남편(이선균)의 이야기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나의 여자를 버리려 했다'는 이야기이고, 카사노바 입장에서 보면 '남의 여자를 탐하려 했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결국 '나의 여자를 잃는다는 것'에 대한 남편의 두려움으로 황급히 마무리됐지만.

이처럼 나의 여자를 잃거나 남의 여자를 탐한 영화는 수두룩하다. 멀리로는 빚을 갚기 위해 억만장자(로버트 레드포드)에게 하룻밤 아내(데미 무어)를 맡긴 '은밀한 유혹'(1993년)도 있고, 가까이로는 한국에 온 파란 눈의 외국 유부녀(이자벨 위페르)와 놀아났거나 놀려고 했던 남자들(문성근 유준상)의 이야기인 '다른 나라에서'(2012년)도 있다.


6월6일 개봉을 앞둔 김대승 감독의 '후궁: 제왕의 첩'은 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나의 여자를 잃는다는 것'과 '남의 여자를 탐한다는 것'에 천착한 에로틱 스릴러다. 잃고 탐하는 과정에서 욕정 가득한 섹스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에로물이고, 잃고 탐하는 과정이 필히 불러올 죽음이 어른거린다는 점에서 스릴러다. 영화가 더 심각해지는 건, 두 남자(김동욱 김민준)의 '여자'가 동일인물(조여정)이라는 데 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했던 조선의 한 시기, 선왕이었던 이복 형(정찬)의 급사로 후궁의 아들에서 왕위에 오른 김동욱. 중전까지 맞았지만 그의 연심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다름 아닌 사가에서 본 처자이자 생전 선왕의 후궁에까지 올랐던 조여정이다. 영화는 명백히 남(선왕)의 여자, 형수를 탐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더욱이 이 조여정은 진작 또 다른 남자(김민준)의 여자였으니 영화는 '남의 여자'를 두 번이나 탐한 한 남자의 심리를 찬찬히 좇아간다.

하지만 '후궁: 제왕의 첩'을 김민준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달라진다. 잠자리를 같이 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이가 바로 조여정이었으니까. 여차저차해서 후궁이 된 것도 모자라 이번엔 임금 같지도 않은 임금이 '나의 여자' 조여정을 향해 연정의 눈빛을 감추지 않으니까. 내 여자를 두 번이나 잃은 슬픔과 분노, 자책, 이런 김민준의 시선에서도 영화는 촘촘하게 진행된다.


그러면서 두 영화는 이 '나의 여자를 잃은' 두 남자가 그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데도 맥을 같이 한다. 아슬아슬한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 두 남자의 고통과 무기력과 후회의 이야기. 이선균은 놀이공원에서 아내와 카사노바의 밀회 현장을 지켜봤고, 김민준은 별궁에서 내 여인을 탐하려는 임금의 욕망을 어쩔 수 없이 지켜봐야 했다. 더욱이 카사노바나 제왕이나 '남의 여자'를 탐하는데 있어서는 제약이나 가책 따위는 애초에 없는 인간들 아닌가.

'후궁: 제왕의 첩'이 '내 아내의 모든 것'보다 더 무겁고 치명적인 건 시대가 조선이라는 데 있다. 극중 대비(백지영)가 말했듯 "왕은 궁의 모든 여자를 가질 수 있는" 곳이 조선의 궁궐이자, 일개 내시 정도는 단 칼에 없애버릴 수 있는 게 조선의 제왕이었으니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이선균이야 내 의지로 나의 여자를 버리려 했지만, '후궁'의 김민준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왕에게 강제로 뺏긴 꼴이니까. 김동욱이든 김민준이든, '후궁: 제왕의 첩'이라 써놓고 '후궁: 나의 여자'로 읽어도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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