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김대승 감독 "야시시하게 꾸미고 싶지 않았다"①

영화 '후궁:제왕의 첩'의 김대승 감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6.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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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기자 leekb@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 6월, '후궁:제왕의 첩'(감독 김대승·제작 황기성사단, 이하 '후궁')은 누가 뭐래도 가장 '핫'한 기대작이다.

'후궁'은 세 남녀의 삼각관계가 주축이다. 어린 시절 함께 자라며 사랑을 키운 화연(조여정 분)과 권유(김민준 분)는 화연을 왕의 아내로 들이려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다. 그러나 이내 붙잡혀 화연은 병약한 왕의 아내가 되고 권유는 거세당해 쫓겨난다. 애시당초 화연을 마음에 뒀던 왕의 이복동생 성원(김동욱 분)은 형에 이어 왕이 되지만 이미 형수가 된 화연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한다. 남편이 죽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화연은 살 길을 찾기 시작하고, 때마침 복수의 칼을 갈던 권유가 내시로 궁에 들어온다.


세 사람이 사는 궁은 소유와 생존, 권력에 대한 날것의 욕망이 꿈틀대는 지옥이자 감옥 같다. 수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베드신에선 순수한 사랑보다 권력과 욕망이 읽힌다.

그 영화를 만든 이가 바로 김대승 감독이다. 파격적인 묘사도 놀랍지만 김대승 감독이라 더 놀랍다. '후궁'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사랑을 그렸던 '번지점프를 하다', '가을로'의 감독이 그린 사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파괴적인 사랑을 담았다. 하드보일드한 핏빛 사극이었던 '혈의 누'의 감독이 그런 러브신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농밀하고 세다. '가을로'가 흥행에 실패한 뒤 차기작 '연인'을 개봉하지 못했던 그다. "칼을 갈고 돌아왔느냐" 했더니 김대승 감독은 "그런 심보가 있긴 했던 것 같다"며 두런두런 영화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도 제대로 칼을 갈았구나 싶지만 뭐니뭐니 해도 감독이 제일 그런 것 같다.

▶제가 그랬을까요? 무서운 말이긴 한데 그런 심보는 있었을 것 같다. 영화가 한 두 개 잘못되고 끝날 것 같은 위기감이 생기면 두 가지 선택이 남는다. 하나는 마구 머리를 써서 흥행이 잘 되는 길을 찾는 거고, 하나는 '못하면 말지' 하고 내 길을 가는 거다. 이번 영화는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달렸던 것 같다. 주변 제작자나 프로듀서는 여기서 상업적 코드를 찾아내고 하신 게 있으니까. 그냥 믿고 그 길로 뚜벅뚜벅 간 거다.

-'가을로'만 있었으면 모를까, '연인'을 다 찍고도 개봉하지 못한 기억이 있어 상처가 더 깊었을 것 같다.

▶그런 게 없다면 거짓말이다. 깊이 상처받았다. 어느 날 임권택 감독님에게 여쭤봤다.(김대승 감독은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개봉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 했더니 딱 한마디 하시더라. '빨리 잊어. 이런 일 많아.' 그 이후로 억한 심정이랄까 이런 걸 좀 털었던 것 같다. 김미숙, 백윤식 이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했다. 그분들에게는 연락도 못 한다. 그 영화, 정말 보여드리고 싶다.

한 때는 그 생각에 취하면 화도 내고 그랬다. 그런데 그게 내가 화내는 이들이 아니라 나를 망치겠더라. '후궁'은 깊이 잠수하고 있었던 나를 건져준 고마운 영화다. 칼을 갈았다기보다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준. 절박하게 '이거 잘돼야 된다'가 아니라 오히려 대범해지고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다.

-'후궁'을 본 사람들 중에는 '이게 '가을로' 감독이 만든 영화야' 하면서 충격받는 이들도 있더라.

▶생각나는 게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 좋아하셨던 분들이 '혈의 누'를 보고 지었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웃음) 그것도 저고, 이것도 저다. 어쨌든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탐색해가는 과정이었으니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분들도 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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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궁' 스틸컷


-'후궁'은 내내 꽉 찬 이야기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밀도있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든다.

▶박철민, 조은지의 장면이 탐욕이 드러나지만 쉬어가는 신이라고 하긴 한 거고. 못 쉬셨다면 그거야 뭐. 배우들도 냉정하다는 이야기를 하긴 한다. 뭔가를 주고받다 보면 감정의 끄트머리가 남는데 그걸 담고 가는 경우도 있고 딱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다. 과감하게 감정을 끊어내고 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박지영씨가 밀궁에 갇혀서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끝 울음을 잘라버렸다. 사실 배우 입장에선 야속할 수 있다. 찍으면서 스태프들이 박수를 쳤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마지막을 맞는 대비와 새 시대를 맞는 화연이 같은 인물이구나' 대비가 중요했다. 감정보다도 더. 그렇게 충돌시키는 게 맞다고 봤다.

제가 추구했던 영화도 밀도 높은, 단단하고 차돌멩이 같은 영화였다. 그런 영향도 있을 것다.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고 감정을 표현하면 보시기는 좋으시겠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에둘러 가는 느낌도 있었다.

-사실 그 부분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도 의아했을 거다. 자극적이고 야한 영화로 포장이 됐는데 영화 자체는 친절하지가 않다.

▶에로틱한 면이 주는 쾌감이 분명 있다. 그런 걸 보러 오시는 분도 있고. 하지만 섹스라는 걸 그렇게 가까이 들여다 봐야 하는 건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첫 베드신만 해도 서로 다른 탐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중전도 빨리 왕자를 생산하고 싶고, 대비도 뒤를 든든하게 하고 싶고, 그 와중에 당사자인 왕은 생각이 딴 데 가 있는데다 남들 다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해야 하니 어지러움이 섞인다. 그런 탐욕이 녹아내리는 막장으로서의 섹스여야지, 근사하고 아름답게 야시시하게 꾸민 건 아니라고 처음부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사각의 링에 오른 것 같다. 그 주변에 관객도 구경하고 있고.

-다른 베드신에서도 사랑이 안 보인다.

▶섹스가 다 뭘 말 하냐면 권력이다. 중전이랑 왕 장면에선 왕이 권력자고 폭력적인 섹스다. 금옥과의 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그것이 바뀐다. 더 많이 사랑하는 놈이 약자지 않나. 맨 처음 화연과 권유가 도망갔을 때만이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다. 그 뒤의 모든 섹스가 사랑이 아니다. 다 욕망의 과정이고 그 사이에서 권력이 들어간다. 물론 카메라가 깊이 개입해서 소프트한 조명을 하고 야하게 하려면 왜 못하겠나. 하지만 그렇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여정씨에게도 처음부터 약속했던 게 그 부분이었다. 당신 몸을 볼거리로 제공하지 않겠다. 신체 부분을 클로즈업하고 그런 건 없다고 약속했다. 그게 제가 조여정이라는 용기있는 배우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그렇다 해도 묘사나 수위가 파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권력 관계가 다른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조형욱 음악감독이 음악을 했는데 마지막 살해 장면에서도 클라이막스가 살해가 아니라 화연이 올라서는 순간에 맞춰져 있다. 표현적으로도 권력 관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조은지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그렇다. 승은을 입은 궁녀는 사실 인생 동안 손에 물이 마른 적이 없고, 해 떠있을 때 누워있어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아닌가. 자기 방에 처음 누워보는 거다. 그런 여자가 내시 찾아가 아들 낳는 약을 지어달라 하고, 섹스가 험하고 폭력적이지만 그래서 그 뒤가 더 슬프고 욕망이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맥을 짚어보면 야하고 예쁜 섹스신은 처음부터 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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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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