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戰無退 背恩忘德..상반기 흥행작 7편 '4자풀이'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6.1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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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상반기 관객은 '어벤져스'를 보며 옛날 화랑도의 임전무퇴 정신을 떠올렸고, '부러진 화살'의 안성기에서는 '맹자'의 수오지심을 읽었다. 올 상반기 국내외 흥행작(올 개봉작 기준) 7편을 4자 한자성어로 풀이해봤다.

어벤져스 705만명 = 임전무퇴(臨戰無退)


조스 웨던 감독의 SF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의식을 찾으라면 단연 '임전무퇴'다.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이는 바로 미군 장교 출신으로 특출 난 리더십과 희생정신을 과시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물불 안 가리고 외계 악당들을 헤집고 다닌 헐크(마크 러팔로)의 철칙이었다.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를 이끄는 닉 퓨리 국장(사무엘 L.잭슨)도 같은 부류. 아, 영화 막판 혈혈단신 적진을 뚫고 들어간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도통 물러설 줄 모르는 전사 중의 전사였다.

범죄와의 전쟁 468만명 = 배은망덕(背恩忘德)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의 최익현(최민식)에게는 이 '배은망덕'이 제격이다. 부산 비리세관원에서 한 탕 하기 위해 조폭 두목(최형배)과 손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더욱이 형배는 먼 친척뻘이다. 자신의 장기인 세치 혀 놀림으로 형배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하며 점점 서열이 올라가는 익현. 그러나 건달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이 허접한 '반달'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배은망덕'이었다. 안분지족의 미덕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익현은 그럴 그릇도 아니었다. 하여간 의리 외치는 놈 치고 의리 지키는 놈 없는 법이다.


건축학개론 409만명 = 오매불망(寤寐不忘)

건축설계사 승민(엄태웅)은 사무실로 이혼녀 서연(한가인)이 찾아왔을 때 "누구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승민의 얼굴에 잠깐 스쳐간 그 미묘한 흔들림으로 관객은 알아챘다. "아, 승민이 서연을 무지 좋아했었구나." 맞았다.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의 서연은 고교시절 승민(이제훈)이 그토록 '오매불망'했던 첫사랑(배수지)이었던 게다. 살 떨리는 버스정류장에서의 첫 키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걷던 철길의 추억, '압서방파' 선배와 관계에 대한 사무치는 오해를 세월이 흘렀다고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막판 관객은 깨달았다. 서연 역시 승민을 오매불망했다는 것을.

댄싱퀸 388만명 = 비익연리(比翼連理)

이석훈 감독의 '댄싱퀸'은 서울시장에 출마한 마음 훈훈한 남자(황정민),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삶이 무료한 여자(엄정화)의 이야기지만, 이 두 남녀가 다름 아닌 부부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분유 구입 에피소드' 등으로 극중 후보토론회 시청자들을 울린 이 남자는 끝내 아내에 대한 순정을 만천하에 폭로함으로써 관객의 없는 눈물까지 짜냈다. '너는 내운명'에서 은하(전도연)를 향했던 순정남 석중의 화신이랄까. 비익연리, 암수가 눈 하나에 날개가 하나라서 짝을 지어야만 난다는 비익조와 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 가지와 맞붙어 통한다는 연리지. '댄싱퀸'은 이 비익조와 연리지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내 아내의 모든 것 380만명 = 토사구팽(兎死狗烹)

"너 없이는 못살 것 같다"는 말로 사랑을 시작한 이 땅의 수많은 연인과 부부. 하지만 그 끝은 오히려 "너랑은 못살 것 같다"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결국 이들은 상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게 아닐까. '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은 이러한 안쓰러운 이야기를 남자(이선균)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다. 멀리 보이는 사랑을 잡기 위해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임수정)에게 온갖 감언이설을 다했으되, 사랑을 잡았다 싶으니까 그 여인을 버리려는 그 못난 토사구팽의 정신! 이선균에게 사랑은 토끼였고 여인은 개에 다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여인을 다른 남자(류승룡)에게 맡기려 했다는 것.

부러진 화살 341만명 = 수오지심(羞惡之心)

맹자는 사람의 천성은 본디 선한 것이어서 4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시 시비지심)의 마음을 제대로 키우면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이룰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자신과 남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수오지심'이었고 이를 통해 '의'(義)가 구현된다고 봤다. 석궁테러사건을 둘러싼 법정공방을 모티프로 한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은 피고인 교수(안성기)의 '수오지심'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는 결국 '옳지 못한' 결정을 한 대학 당국과 '옳지 못한' 판결을 해댄 판사들(문성근 이경영 김응수)에 대한 힘없는 개인의 싸움이었으니까. 맹자는 왕도정치를 꿈꿨지만 안성기는 제대로 된 법치주의를 꿈꿨다는 게 달랐다면 달랐다.

맨인블랙3 323만명 = 교우이신(交友以信)

베린 소넨필드 감독의 '맨인블랙3'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조작, 현재를 바꾼다는 큰 얼개로 진행됐다. 지구에는 외계인이 가득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MIB 조직은 건재하며, MIB의 두 절친으로 윌 스미스(요원 J)와 토미 리 존스(요원 K)가 나온다는 설정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는 악당 보리스(제메인 클레멘트)가 망쳐놓은 과거 K의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J의 눈물겨운 투쟁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젊은 시절 선배 요원 K가 J에 대해 쏟았던 무한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신뢰! 맞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인외계인을 막론하고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는 신뢰가 최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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