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청계천 스타일' vs 싸이 '강남스타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9.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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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스틸.


김기덕 감독은 물었다. 한번 빠져든 빚더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 고통을 아느냐고. 이자가 원금의 10배라 제 한 몸 어디 하나 불구로 만들어야 겨우 빚을 갚을 수 있는 그 지옥을 아느냐고.

지난 4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6일 개봉)는 지독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흠뻑 빠져 애써 피하고 싶었던, 거대 도시 서울의 또 다른 음산한 얼굴이 대놓고 드러났다. 청계천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그래서 돈 비린내와 원한과 욕정이 뒤섞여 몸부림치는 김기덕 감독판 '청계천 스타일'이라 해도 무방하다.


청계천을 무대로 살아가는 악덕 사채 추심원 강도(이정진). 돈을 못 갚으면 채무자의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려 보험금을 타게 만들 정도로 악질 중의 악질이다. 노모 앞에서도 채무자의 뺨을 때려 노모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든다. 채무자를 안 죽이는 이유도 "죽으면 보험금 수령이 곤란해져서"다.

이런 강도 앞에 "내가 네 엄마"라는 여인(조민수)이 등장한다. 30년만이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강도를 낳자마자 버렸단다. "내 아들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며 채무자의 부러진 다리를 또 짓밟는 모진 모정이다. 천하의 악질 강도도 결국 이 '엄마'의 등장에 뼛속까지 흔들린다.

'피에타'는 두 모자(母子)가 일궈가는 특이한 관계에 천착한다. 넘어서는 안될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리고, 엄마의 등장에 변해가는 강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러면서 영화 막판 터져 나오는 반전을 향해 조금씩 다가선다. 역시 '나쁜 남자'나 '빈집' '사마리아'의 김기덕 감독답다.


하지만 역시 '피에타'에서 두드러지는 건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의 청계천이다. 번듯하게 정리된 그 관광명소로서 청계천이 아니다. 영세 1인 공장이 밀집해있고, 저 멀리 강북의 고층빌딩이 보이는 허름한 도시의 상징으로서 청계천. 강도가 사는 연립주택, 채무자들이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손바닥만하고 지저분한 숨 막히는 공간으로서 청-계-천.

더 숨 막히는 건 그곳에서 겨우 겨우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어두운 삶. 철제 셔터만 내리면 외부세계와 모든 게 단절되는 이 공장 저 공장에서 돈에 질리고 빚에 허덕이는 청춘과 노년들이 살아간다. 힘들다.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 불구를 택하고 스스로 추락사를 택하는 안쓰러운 인간들. 그리고 이들을 지근거리에서 싸늘하게 바라보고 모질게 괴롭히는 강도와 '엄마'조차도 비루한 청계천 주민들이긴 마찬가지다.

결국 '피에타'의 청계천 스타일이란 돈 300만원을 갚지 못해 프레스에 제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삶이다. 사채를 되돌려 받기 위해 그런 끔찍한 삶을 채근하는 강도의 스타일이다. 클럽에 가고 싶은 '압구정 날라리'나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강남스타일'의 사나이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그런 삶.

그나저나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진출한 '피에타'를 본 파란 눈의 외국인은 몹시 궁금해 할 것 같다. 유튜브 조회건수 1억건이 넘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김기덕 감독의 '청계천 스타일'이 모두 한 도시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를 외치는 청년과, "갚을래야 갚을 수가 없는 300만원 때문에 죽기 바로 직전인" 청년이 진정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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