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민 감독 "'광해', 이병헌도 힐링됐을 것"(인터뷰)

사진=홍봉진 기자

'마파도'와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광해,왕이 된 남자'까지. 얼핏 다른 보이지만 네 편의 영화는 인물이 영화 중심에 선 작품들이다. 추창민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이다.

추창민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우란 생각을 갖고 있다. 그의 영화가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인물이 이야기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그 때문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마찬가지.


'광해,왕이 된 남자'는 조선 광해군 시절을 배경으로 독살 위협을 받고 있는 왕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가짜왕을 내세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지난 13일 개봉해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둘 정도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해,왕이 된 남자'는 대선을 앞둔 요즘, 올바른 왕에 대한 이야기로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과연 추창민 감독은 영화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다. 이야기도 '젤다의 성'이나 '데이브', '카게무샤' 등 익히 봤던 것이고.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뒤 비슷한 소재로 '왕이로소이다'란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데이브'는 잘 몰라서 나중에 봤고. '카게무샤'는 워낙 좋아하는 영화고. 그러다보니 차별화를 두는 게 아니라 앞의 영화들은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소재 영화들을 의식해서 더하거나 덜하지 말고 내 옷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기획, 개발한 CJ E&M에 내가 쓴 각색 시나리오를 보고 그게 마음에 들면 하자고 했다.

-비슷한 소재들 영화와 가장 큰 차이는 웃음에 있는 것 같은데. 원 시나리오는 지금과는 다르게 더 진중한 이야기였고.

▶차별하려고 웃음을 넣은 건 아니다. '광해'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톱스타가 출연하는 상업영화이다. 가장 쉽게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유머라고 생각했다.

-'왕의 남자'와 많이 비교되는데. '왕의 남자'가 다양한 이야기들로 더 많은 생각거리를 줬다면, '광해'는 이야기가 직선적이다. 그래서 '왕의 남자'는 콘텍스트가 많이 이야기된 반면 '광해'는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맞는 말이다. '광해'는 '왕의 남자'에 비해 쉽고 단순하다. '왕의 남자'를 명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견되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그런 부문이 부족한 부분일 수도 있다.

-원 시나리오보다 사월이(심은경 분)와 조내관(장광 분) 역할이 더 커졌다. 두 사람은 '광해'에서 민중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어쨌든 조연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주인공과 가장 많이 붙어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역할을 더 만들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호위무사 역을 맡은 김인권의 마지막 장면은 오버스럽기도 한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울기도 하던데.

▶편집할 때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그 장면에 바로 그런 의견들이 있었다. 7대3, 8대2 정도로 그 장면에서 감동을 느낀다고 하더라. 만일 5대5였으면 편집했을 것이다. 아트가 아니라 대중영화를 찍는데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병헌의 1인2역 연기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

▶이병헌은 정말 철저하게 준비해오는 배우다. 그와 토론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요구하는 것과 배우가 준비해오는 것이 다를 때 작은 것으로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대스타라 어떨지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이야기가 되는 배우다.

-'광해'를 본 사람들은 이병헌이 스캔들이 많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점 하나 찍지 않고 정극과 코믹,1인2역을 완벽하게 오갔는데.

▶이병헌한테도 이 영화가 힐링이 된 것 같다. 이병헌은 스타성과 범접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런데 만나보니 정말 사랑스러운 점이 많더라. 그래서 계속 사랑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점을 찍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병헌에게 당신의 연기를 믿는다고 했다. 이병헌이 스타가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사람처럼 나오지 않았나.

-하이라이트 직전 이병헌이 영화 주제를 대사로 풀어낸다. 자칫 뻔하고 고루할 수 있는 장면인데 온전히 전달됐다. 앞에서 이야기가 쌓여진데다 이병헌 연기 덕도 상당한 것 같은데.

▶그 장면은 대사가 굉장히 길다. 그 긴 대사와 장면을 한 번에 찍었고, 다시 그렇게 15번을 더 찍었다. 이병헌 감정과 호흡이 쉬지 않고 끝까지 가야했다. 중간쯤에 베스트 샷이 나왔다. 지금 영화에 쓴 장면이다. 그런데 더 좋은 게 나올 것 같더라. 그래서 8번을 더 갔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와 주는데 이병헌은 참 좋은 배우다.

-전작들처럼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데. 그래서 인물들에 집중하게 만들고.

▶관객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빨리 몰입하고 또 멀어지는 게 배우의 연기다. 조명,의상,음악 등은 연기보다 더 빨리 잊는다. 그래서 배우에게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배우는 힘들고, 다른 스태프들은 불평한다. 카메라를 이렇게 해서 가자고 하면 배우가 카메라 동선에 맞춰서 연기하면 감정이 깨질 수 있다고 하는 편이다. 포커스가 나가도 배우 연기가 좋으면 쓴다.

사진=홍봉진 기자

-총총총 걸어가는 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리듬감이 절묘한데.

▶사극에는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장면이 사극에 리듬을 표현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

-'광해' 미술에서 가장 인상적인게 공간의 활용이다. 사극에서 이처럼 내전을 넓게 사용하면서 인물의 심리를 반영한 게 있었나 싶을 정도던데.

▶제일 고민했던 게 공간이었다. 기존 사극과 차별을 공간과 건물로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궁궐이 너무 좋더라. 어렵게 허가를 받아서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하루씩 찍었는데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 기왓장 두께부터 다르다. 경복궁이란 공간이 주는 왕의 권위가 있는데 정말 아쉽다.

-사극 의상은 뻔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질감 탓인지, 조명 탓인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던데.

▶일단 궁궐에서 입는 옷이니 가장 좋은 옷감을 쓰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큰 스크린에서 질감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라다 질감이 느껴지듯이. 또 당시는 촛불을 켜던 때니깐 밝은 조명 대신 조그만 조명을 여러 개 써서 그런 느낌을 자아내려했다.

-조강지처란 단어는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추창민 감독이 각색을 하면서 넣은 것인데. 고 노무현 대통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조강지처란 단어는 그것 때문에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여 지는 데 반대했다. 내 뜻이 강하면 튕겨 나가기 마련 아닌가. 이 영화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지목하거나 교조적인 이야기는 담지 않으려 했다.

-'광해'를 보고 안철수 대통령 후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던데.

▶절반 가량이 그렇게 이야기하던데 나도 놀랐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여러 가지로 해석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깐.

-누구는 사월이가 15살에 죽는 것을 놓고 미순이,효순이도 15살이었다고 연관 짓던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난 이 영화가 편협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광해군에 대한 상반된 역사인식도 역시 균형을 잡아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수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수평적인 덕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니깐.

-두 편 연속 남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기 이야기에 대한 갈증은 없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들도 듣고 싶어 해야 하는데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얼마 전 '건축학개론'을 보고 '사랑을 놓치다'도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란 생각이 들더라. 여전히 내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그 중에 좋은 이야기가 들어오면 하게 된다.

-'광해'는 배우,미술,음악,촬영 등 모든 분야에서 선수들이 모여서 시너지를 낸 것 같은데. 선장으로서 어떻게 조절했나.

▶실력이 있는 만큼 개성도 강하다. 내가 뭘 했다기보다 조절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병헌 류승룡 모두 연기를 잘 하니깐 어떤 부분에서는 줄이고 어떤 부분에선 더하는 그런 식이었다.

-'광해'는 이미경 CJ 부회장이 제작,제공으로 크레딧에 처음 이름을 올릴 만큼 CJ E&M이 강하게 밀었던 작품이다. 간섭이 심하진 않았나.

▶놀랄만큼 간섭이 없었다. 그리고 놀랄 정돌 지원을 해줬고. 요즘은 매일 찍은 분량을 투자배급사에서 보지 않나. 난 모니터도 잘 안보는 편이지만. 그렇게 찍은 게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고. 주위에서 바람막이를 잘 해준 것도 있다. 지나고 나서야 그런 일이 있었냐고 하기도 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