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운 당신, 엔딩크레딧은 좀 보고 나가세요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11.05 09:50
  • 글자크기조절
image
'늑대소년' 이보영 송중기 ⓒ'늑대소년' 스틸


간만에 영화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빤한 신파인데, 예상 가능한 '막판 눈물 몰아주기' 영화 작법인데 이 놈의 눈물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 겁니까.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영화 막판은 거의 제대로 볼 수가 없더군요.

개봉 첫 주에 129만명이 본 '늑대소년' 얘깁니다. 송중기가 늑대소년으로, 박보영이 그 소년을 사랑한 소녀로 나오는 조성희 감독의 영화입니다. 아, 그 소년을 괴롭히는 악역으로는 '건축학개론'의 '압서방' 유연석이 또 나오더군요.


사실 늑대소년 컨셉트는 영화 보기에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베네치오 델 토로의 '울프맨' 혹은 휴 잭맨의 '엑스맨' 등 할리우드 영화와 뭔가 달라야 할 텐데 이를 어떻게 끌고나갈지 괜한 걱정이 앞섰던 탓이지요. 물론 송중기 박보영, 두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이름값은 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요.

그런데 영화는 '울프맨'이나 '엑스맨' 류가 아니라 김하늘 장근석 주연의 '너는 펫' 류에 가깝습니다. 초능력 늑대소년이 악당을 물리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힘없는 여린 소녀가 오히려 '야생남' 늑대소년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지요. "앉아, 기다려, 먹어" "아이, 잘 했어" 이런 식으로요. 실제로 영화에는 박보영이 작정하고 애완교본을 보는 대목까지 나옵니다.

다행히 영화는 자칫 닭살만 돋았을 이 설정에 남녀의 '순정'을 아주 적절히 가미해 촘촘하게 러닝타임 2시간을 끌고 갑니다. 황정민 전도연의 '너는 내 운명'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순정' 말입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믿고 사랑하는 순정,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배반하지 않는 순정,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그 순정 말입니다. 결국 129만 관객은 자신들이 잊고 산 이 멸종 직전의 순정에 왈칵 눈물을 뺀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이 '늑대소년'은 결국 웰메이드 판타지 최루성 멜로로 막을 내렸다 이겁니다. 군데군데 예상 가능하고, 심지어 식상하기까지 한 대목도 꽤 나오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로 박보영은 '역시' 소리를 들을 것 같고, 송중기는 자타공인 '대세'로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p.s.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영화 막판부터 극장 여기저기에선 훌쩍 훌쩍 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제 앞줄에 앉은 여고생 4명 중 한 명은 아예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보통 상황이었으면 다른 관객이 쳐다봤을 텐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다른 관객도 오십보백보였으니까요.

좋습니다. 영화가 그리고 남녀 주인공이, 특히 늑대소년이 한 소녀에게 순정을 다 바쳤다면 이렇게 펑펑 울어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본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 올라가는데 왜 '일어나서' 버티고 있는 겁니까. 스태프 이름 찬찬히 확인하려 했다면 '대단한데'라는 느낌이라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예 스크린을 등 뒤로 하고 가방을 챙기는데 거의 2분 이상 걸리더군요.

'영화를 만든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야 진짜로 끝난 것이다'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뒷좌석에 앉은 다른 관객에 대한 배려 운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늑대소년'은 정말 엔딩 크레디트가 중요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엔딩 크레디트 배경에는 계속 송중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관객의 마지막 눈물까지 더 쥐어짜내게 하는 대단한 공력이 깃든 장면입니다. 어쩌면 본 영화 2시간보다 더 많은 의미와 감동과 판타지를 포함하고 있는, 가슴 저릿한 풍경이었습니다. 올 겨울에는 직접 한번 해보고 싶고 보고 싶은, 머릿속까지 새 하얗게 만드는 먹먹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2시간이 뭐 그리 길었다고, 가방 싸는 게 뭐 그리 급하다고, 벌떡 일어나 그 소중한 장면들을 놓치는 겁니까. 이미 울 만큼 다 울었고, 볼 장 다 봤다는 건가요?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에서 원 신 원 테이크로 잡은 송중기의 희미한 표정과 천진난만한 동작을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아닐 겁니다. 100%의 감동이 120% 감동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스스로 포기하나요?

'늑대소년'만이 아닙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아바의 'I Have a Dream'을 다시 부른 덕분에 극장 문 나서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 '맘마미아', 류승룡 이광수 김지영의 '히든 코믹 영상'으로 한 번 더 웃고 나온 '내 아내의 모든 것' 이런 영화들의 엔딩 크레디트를 놓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아이언맨' '퍼스트 어벤져' '토르' 그리고 '어벤져스'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초강력 단서 제공 '쿠키영상'은 아예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맞습니다. '모-오-든'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 다 올라가고 스크린이 환해졌을 때 진짜 끝난 겁니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