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비행기란 순수의 아이러니(리뷰)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태평양전쟁 日전투기 개발자 다뤄

도쿄(일본)=김현록 기자 / 입력 : 2013.07.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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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원미디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돌아왔다. 초록 동심의 세계를 노닐던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은 5년만의 신작 '바람이 분다'에서 판타지에서 눈을 돌려 옛 일본을 바라본다. 군국주의가 열도를 휩쓸던 시절, 시대를 잘못 만난 열정을 스크린에 담았다. 지난 20일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바람이 분다'는 6일만에 150억엔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감독의 저력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26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 기자단을 상대로 한 '바람이 분다'의 시사회가 열렸다. 한국 관객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논쟁적인 인물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서 한국의 기자들이 이를 직접 보고 평가해주길 바라는 감독 및 스튜디오 지브리의 뜻이 담긴 자리였다.


'바람이 분다'는 주인공은 실존인물인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 가미가제 폭격기로 알려진 전투기 제로센을 만든 장본인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품을 만들며 급성장한 당시 미츠시비내연기(현 미츠비시중공)에서 항공 설계주임을 맡았던 그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가볍고 빠른 전투기 제로센을 개발해 일본군의 힘을 더했다.

영화는 지독한 근시로 '내가 비행기를 설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소년 지로가 성장해 자신의 꿈을 담은 비행기를 만들어내기까지를 담았다. 동경하던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 백작과 지로의 만남이 꿈결처럼 교차되는 가운데 비행기에 대한 청년의 순수한 열정, 애틋한 사랑 이야기, 당시 일본의 상황이 펼쳐진다. 암울한 전쟁의 시대를 품고 있음에도 지브리 스튜디오의 고집스럽고도 아름다운 2D 화면에 담긴 청년의 이야기는 촉촉하고 서정적이기 그지없다.

'바람이 분다'는 천재적인 비행기 설계자부터 일본 군국주의의 부역자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탓에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9), '붉은 돼지'(1992) 등을 통해 비행과 하늘, 바람에 대한 동경을 표현해 왔던 미야자키 감독은 개인의 순수한 꿈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시대의 문제를 끌어들였다.


전쟁을 일으켜 파멸을 향해 가는 나라 덕에 소망하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던 지로의 꿈은 아이러니 그 자체. 입을 꾹 닫은 채 비행기 제작에 몰두하는 지로 대신 주변인이 그를 양심을 자극하거나 열정을 변호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게 나아"라고 일갈했던 '붉은 돼지'만큼 직접적으로 군국주의를 비판하진 않지만, 야만의 시대를 만난 순수가 어떤 비극을 낳을 수 있는가를 돌이키게 한다. 또 당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성실한 일본의 사람들이 과연 무고한가 혹은 죄인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동시에 논란거리는 영리하게 피해갔다. 태평양전쟁, 관동대지진, 제로센을 다루는데도 흔한 전투장면 하나가 없다. 죽음과 상처를 묘사하는 데도 대단히 조심스럽고 사려깊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히노마루(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린 게 처음이라는 미야자키 감독은 "그러나 히노마루가 달린 모든 것이 추락하고 만다"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처음으로 담은 어른의 이야기, 사랑에 대한 묘사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로맨스 부분은 호리코시 지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 소설가이자 시인인 호리 타츠오의 소설에서 따왔다. "아이시떼루"(사랑합니다) 한 마디 없어도 가슴을 저미는 사랑 이야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총감독으로 잘 알려진 안노 히데아키가 주인공 지로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사람의 목소리로 빚은 지진의 굉음과 효과음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바람이 분다'는 거장의 깊어진 숨결, 성찰의 흔적이 분명한 수작이다. 스스로 비행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기에 그가 전하는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이란 메시지가 더 깊게 울린다. 영화는 제 7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오는 9월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소재와 인물, 다분히 일본적인 이야기와 분위기가 어떤 평가를 받을 지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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