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 음반 20선⑪라벤타나 3집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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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2008년 8월 나온 탱고&재즈밴드 라 벤타나의 정규 1집은 오디오파일들에게는 필청음반이다. 귀가 고마워할 정도로 사운드적으로 만족감을 준다. 밴드가 표방한 캐릭터 그대로 앨범제목도 'Como El Tango, Como El Jazz'다. 1번트랙이 피아졸라 원곡의 'Liber Tango'. 올해 '개그콘서트'의 '댄수다' 코너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그 음악이다. 타이틀곡 'Valse Primavera'를 비롯해 '향월가' 그리고 가장행렬 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La Cumparsita'까지 탱고와 재즈 필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운드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앨범이었다.

이들의 2집은 2010년 6월에 나온 'Nostalgia And The Delicate Woman'. 탱고와 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 컨셉트 앨범의 백미는 역시 타이틀곡 'Yo Soy Maria'. 피아졸라 원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이 황홀경. 이들의 연주와 자기주장은 그만큼 더욱 확고해졌고 더욱 강렬해졌다. 결국 이 음반은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재즈&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 음반부문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5월 나온 3집 'Orquesta Ventana'. 밴드 멤버는 정태호(아코디언) 박영기(피아노) 황정규(베이스) 정승원(드럼). 1,2집 때의 보컬 정란이 빠졌다. 과연 이들은 3년만의 새 앨범에 자신들의 무엇을 담았을까.


그 명징한 대답을 클래식 음반 스타일로 표현하면 이것이다. '라벤타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탱고 협주곡 1~9번'. 협연한 아티스트가 보컬리스트가 됐든 연주자가 됐든, 이들은 작정하고 다채로운 탱고의 세계를 협주곡 형식을 통해 진득하니 파고 든 것이다. 재즈와는 잠시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어쨌든 9개 트랙 모두 피처링을 담은 이 음반에서, 이들의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트랙은 첼리스트 이정란이 함께 한 2번 'Jalousie',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함께 한 5번 'Adios Nonino', 포크&팝듀오 10cm가 함께 한 6번 '빨간풍선', 그리고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함께 한 9번 '사의 찬미'다. 피처링 면면이 이쯤 되면 영양과다를 걱정해야 할 만큼 진수성찬이다.

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수석 첼리스트 이정란의 서주로 시작한 'Jalousie'. 처음부터 품격의 의미를 알려준다. 솔로이스트 연주의 품격, 원곡(야콥 가데)의 품격, 그리고 편곡 오케스트라로서 밴드의 품격(특히 아코디언과 피아노). 1집 때가 전체적으로 비교적 원곡에 충실, 탱고 인트로의 의미가 강했다면 이번 3집에서는 이들이 진짜 숨은 색(혹은 고민)을 슬슬 과시(혹은 토로)하려 한다는 느낌. 첼로와 아코디언,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총주로 이 곡이 끝나면 곧바로 3번트랙 'Que Nadie Sepa Mi Sufrir'가 이어지는데 웅산의 보컬이 그야말로 '피어오른다'. 두 트랙의 대비효과가 대단하다.

하몬드 오르간 연주자 성기문의 피처링이 돋보이는 'El Dia Que Me Quieras'를 지나면 마침내 최근 정규 3집 '캡틴'을 낸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활보하는 'Adios Nonino'와 만난다. 강렬한 파워의 핑거링이 '한 귀'에도 박주원이다. 이어지는 아코디언과 기타의 주고받기. 아코디언은 때로는 한없이 유려하고 때로는 톡톡 튀며, 기타 현은 격랑과 잔물결을 오고간다. 두 솔로들의 이 배틀 아닌 배틀을 나즈막하게 받쳐주는 베이스와 드럼. 이게 바로 라벤타나가 작정하고 만든 탱고 협주곡이라는 것이다.


6번트랙은 아마 이번 앨범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다 할 '빨간풍선'. 10cm의 권정열이 예의 끈적끈적한 보컬을 보란듯이 내뿜어낸다. '휘파람을 불지마 그건 너무 쓸쓸해/ 촛불을 끄지마 어두운 건 싫어/ 너와 나 빨간 풍선 하늘 높이 날아/ 가슴 깊이 묻어둬 너의 슬픔이랑..' 산울림의 1978년 원곡이 이렇게 35년이 지나 그것도 탱고로 리메이크될 줄이야. 이 버전의 탱고색채란 게 하도 세서 그잠깐 사이 원곡 창법을 까먹을 팬들도 많을 듯. 또한 그동안 이 앨범에서 왠지 침잠했던 밴드의 피아노 사운드가 본격 가세한 점도 반갑다. 분명 피아노의 낭랑한 터치를 귀로 듣는데 입에서 뭔가가 녹는 듯한 이 감각의 혼돈.

이어지는 7번트랙 'Histoire Du Tango-Cafe 1930'(feat. 박윤우), 8번트랙 'Concierto Para Quinteto'(feat. KoN) 역시 별 다섯개를 줄 만큼 매력적이지만, 앨범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트랙 '사의 찬미'다. 윤심덕의 1926년 원곡과 1941년 이병일 감독의 영화 '반도의 봄' 대사가 마치 흑백화면처럼 허공에 뿌려지면, 이어 한국 재즈계의 대모 박성연의 꾹꾹 눌러담는 듯한 허스키 보컬이 시작된다. 어두운 밤,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이 트랙의 길고 긴 여운. 이들이 3년만에 내놓은 앨범 마지막 트랙으로 내세운 이유다.

이제 끝으로 이번 음반 배급사인 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의 설명을 소개한다.

"미러볼뮤직엔 미러볼재즈월드라는 재즈 앨범 유통 전문 레이블이 있다. 미러볼뮤직과 에반스레코드가 함께 만들었고 미러볼뮤직은 유통, 에반스레코드는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운영의 주체만 존재했다면 결코 론칭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재즈 아티스트와 작품 그리고 레이블이 함께해줘서 론칭이 가능했다. 갓 론칭한 미러볼재즈월드를 더욱 빛나게 해준, 그 화려한 시발점이 바로 라벤타나이다. 참고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재즈음반상을 2011년 박근쌀롱 1집과 2012년 이원술 1집이 수상하였는데 모두 미러볼재즈월드에서 발매한 작품이다.

(라벤타나가 한국대중음악상 크로스오버음반상 수상작인 2집을 낸 지)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2013년 초 제작사 에반스레코드로부터 라벤타나의 신보 출시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굉장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직전 작품의 평가가 너무 좋았기에 그에 따른 기대는 자연스러웠고 메인 보컬 정란의 부재와 3년이라는 공백이 걱정되었다. 아마도 아티스트와 제작사 역시 같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기대와 걱정으로 더욱 작품에 공을 들이게 되고 심사숙고한 흔적은 3년이라는 시간을 담보하였다.

라벤타나의 3집은 침착하지만 버라이어티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탱고의 정통성으로 더욱 곤고히 하고자 작품 수록곡 대부분을 탱고클래식으로 채우고 있다. 기존의 탱고 명곡들이 라벤타나만의 재해석을 통해 또 다른 명곡이 되었다. 3집의 재킷을 통해서도 클래식컬한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세세한 부분 하나 하나 놓치지 않았다."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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