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음반 20선⑫서상준 'Wannabe'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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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 앨범 만들고 있어요.' 2012년 가을 어느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서상준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모던록밴드 보드카레인의 드러머이자, 지금 한창 뜨고 있는 프롬과 레전드 밴드 델리 스파이스의 드러머다. 드럼 연주 이외에도 재주가 많았다. 서상준이 연출 및 편집한 프롬의 티져영상은 얼마전 대한민국 최고 예능프로인 '무한도전' 방송 직후 소개되어 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예전부터 재미있는 음반 하나 만들어보자고 했다. 조금은 가볍게 했던 말이었는데 서상준은 드럼 연주 앨범을 기획하고 있었다. 제대로 말이다. 그리고 2013년 2월 마지막날 서상준 EP 1집 'Wannabe'가 출시되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재주를 뛰어넘어 이미 엄청난 작품들을 만들었다. 드럼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멋진 프로그레시브 음반이 완성되어 있었다. 쪼개지는 리듬이 현란하게 펼쳐지지만 그 위에 느리게 움직이는 그림 몇 점이 그려진다. 스피드와 슬로우 모션이 동시에 덮친다. 그래서 더 자유롭다.


(이번 음반에서는 또한) 보드카레인 때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이요한(현재 10cm 건반)과 음악적 합을 맞췄다. 그리고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단지 그의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작업이 진행되었다. 정말 대단했다. 결국 앨범이 출시된 후 그의 음악-영상 작품 제작기는 네이버뮤직 3월의 뮤직스페셜로 선정되었고 '보드카레인 서상준의 홀로서기 다이어리'로 오픈되었다."(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

지난 2월 발매된 'Wannabe'는 EP 구성(보드카레인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는 주윤하도 최근 미니앨범을 냈다)을 취했지만 총 러닝타임이 5곡, 16분에 불과하다. 순 연주곡이 3곡, 보컬이 담긴 곡이 2곡. 하지만, 이창희 대표 설명처럼 매 트랙마다 서상준 본인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 5편이 부가됐다. 그만큼 영상에서도 꼭 뭔가를 읽어주길 바란다는 것. 서상준이 북치고 영상찍고 노래하고 혼자 다 한 'Wannabe', 첫 곡부터 진하게 들어보기, 스타트.

1번트랙 'Sailing'. 뮤직비디오 영상이 묘사하듯, 아주 인정사정 없는 모진 질주 한 판이다. 그것도 쉼없는 도심의 질주. 터널속을 직접 달리는 것이어도 좋고, 네온사인 휘황한 고가 전철을 보는 것이어도 좋다. 하여간, 이 속도감, 이 숨참. 사운드적으로는 시종 실키한 음색 위에 몽롱한 타건음을 뿌려대는 건반과,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리듬을 쪼개고 붙이는 드럼의 듣기 좋은 배틀이다. 라이드, 하이햇, 탐탐, 스네어, 베이스의 이 기분 좋은 밀당. 드럼의 각 파트는 이런 유혹을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저번 비둘기우유 음반 때도 그랬지만 서상준의 이 곡 'Sailing'은 꼭 터널안에서 크게 듣는 걸로. 뮤직비디오는 역설적으로 빨간신호등으로 끝났지만, 질주는 하얀 설국을 가로지르며 계속되는 걸로. 참으로 무수한 연상과 상상을 자극하는 연주곡이다.


2번트랙 'Plan B'는 그야말로 질펀한 2분25초짜리 드럼 난장. 늘 밴드 뒤에서 묵묵히 리듬파트 역할만 하던 드럼의 참고참았던 자기주장이자 속내랄까. 그래서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많은 수의 마이크는 단지 녹음을 위한 게 아니라, 드럼의 사운드와 드러머의 육성을 만천하에 '생중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맥락에서 'Plan B'는 예전 고(故) 김대환의 1972년 앨범 '드럼! 드럼! 드럼! 앰프키타 고고! 고고! 고고!'를 떠올리게 한다. 고(故) 이남이가 베이스기타, '가왕' 조용필이 기타와 보컬, 그리고 선생이 드럼을 맡은 김트리오 시절의 그 명반. 그 중에서도 3분8초짜리 2번트랙 '꿈을 꾸리'를 주도하던 드럼의 싱싱한 독주가 지금 서상준의 녹음 스튜디오에 살포시 달라붙었다.

맞다. 아까, 그 마이크는 녹음용이 아니었던 게다. 3번트랙 'Little Chance'에서 서상준은 드럼이 아닌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 조금은 아쉽고 쓸쓸한 이별 후일담, 그런 것. '가난했던 오후에 지루했던 날들에/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취해가는 노을에 잠못이룬 달 아래/ 너는 날 추억이나 할까../사라진 내 아침에 쓸쓸해진 오늘에/ 왜 난 너의 생각을 할까' 사실, 이런 날, 스틱을 잡는 것부터가 힘들테니. 강력해진 건반의 타격음과 새로 가세한 어쿠스틱 기타현의 묵직한 울림이 그래서 더욱 신산하다. 뮤직비디오 역시 갖은 흑백화면에 역주행 뿐(사실 앨범재킷도!). 영상도 그렇고, 사운드 그렇고 불안하고 음습하기 짝이 없는 4번트랙 'Moth'까지 슬슬 이 음반의 속내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정말 궁금해진 마지막이자 타이틀곡인 'Wannabe'. 이 곡은 지난 2007년 보드카레인의 첫 정규앨범 수록곡 '날 원해'의 리메이크곡이다. 구성은 단출해졌지만 사운드는 더 강력해진 드럼과 보컬이 사정없이 부유한다. 앞의 4곡에서 혼돈과 고민, 역주행과 탈색을 겪은 한 드러머의 타협없는 고백 혹은 끊임없는 자기최면이 마침내 터져나온다. 드러머는, 드럼과 늘 함께 했지만 드럼만으로는 부족했던 이 아티스트는, 그래서 자신의 생간같은 성대와 성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난 날 원해 말 없는 날 원해 죄없는 날 원해 완벽한 날 원해../ 난 날 원해 이렇게 날 원해 이런 날 넌 원해 처음부터..'

해서, 이 앨범에 대한 두세줄평은 이것이다. 드러머가 작정하고 만든 영리한 EP. 아티스트로서 펼쳐놓은 인문학적 형이상학적 덫에는 안걸려도 좋다. 건반과 드럼, 순수배틀만으로도 빛나는 16분짜리 옴니버스 단편영화니까. 그리고, 이 앨범의 마지막 곡까지 들은 당신을 위한 팁. 다시 1번트랙 'Sailing'을 쉼없이 곧바로 들을 것. 마치 6번트랙으로 원래 실려있던 것처럼 더 증폭된 테마로 당신을 새롭게 빨아들일테니.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⑫서상준 EP 'Wannabe'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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