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음반 20선⑬10cm '2nd EP'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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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니면 아무도 안돼' 혹은 '너 없으면 아무것도 아냐'.

사실, 일에 치이고 자식 뒷바라지 하다 보면, 이런 감정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기 일쑤다. 40, 50대는 더욱 그럴 터. 하지만 10, 20대를 돌이켜본다면? 예를 들어 사라 본의 'It's You or No One'. 1947년에 나온 이 재즈 보컬곡을 들으며 "이게 바로 내 마음"이라고 이성에게 고백한 적은 없었던가. 수십만 곡은 나왔을 '연가'가 앞으로도 수백만 곡은 더 쏟아질 이유다.


듀오 10cm(권정열 윤철종)의 'Nothing Without You' 역시 그렇다. 조금은 과한 권정열의 보컬 테크닉은 그의 자신감 혹은 새로운 시도 쯤이라고 해두자. 그냥 가슴에 박히는 게 그의 가사고 금세 귀에 박히는 게 멜로디니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너의 남방 너의 청바지 낡은 냄새가 베인 목도리/ 한참을 멍하니 만져보다가도 문득/ I'm nothing without you/ I'm nothing without you/ 종일 웃고 있다가도..괜한 운이 좋을 때도..' 한마디로 너가 없다면 내 일상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그런 상황. 무심히 듣다 큼직한 귤이 어금니에 갑자기 박힌 듯한 이 거역할 수 없는 신내. 10cm는 어떻게 이런 감정을 여전히 갖고 이를 이렇게 근사하게 노래할 수 있는 걸까.

두서없이 3번트랙 'Nothing Without You'부터 끄집어 얘기해서 그렇지, 올해 2월 나온 10cm의 두번째 EP 'The 2nd EP'는 다섯 트랙 모두가 근-사-하-다. 지난해 정규 2집이 탱고라는 형식미를 너무 진득하니 탐구해서, 그래서 그 바람에 묻혔던 후끈한 스토리텔링이 이번에는 되살아났다. 적당히 두운과 각운을 활용한 일종의 말장난(pun) 센스도 살아났고, 편한 구어체에 담긴 젊은 청춘들의 파릇하고 진솔한 감성도 살아났다. 윤철종의 기타연주도 아주 똘망하고 준열하게 들린다. 그래, 이게 바로 10cm 월드라는 것이지.

10cm가 누구였나. 2010년 이들의 첫 EP 배급사인 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의 회고다.


"요즘엔 앨범을 내기 전 인디신에서 주목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작품을 통한 평가와 공연의 내용을 통해 검증받고 주목받는다. 그러나 2010년엔 분명 아무런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스타성을 인정받은 팀이 있었다. 바로 10cm였다. 클럽을 가도, 레이블 관계자를 만나도 빠짐없이 10cm 얘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소속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유통사인 우리는 더욱 그들과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10cm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람의 연락이었고 급하게 EP를 발매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제작한 앨범인지라 음질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근래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재기 발랄함과 뛰어난 서정성이 있었다."

그러면 이번 두번째 EP는? 이창희 대표의 말을 듣고 비로소 무릎을 친다.

"세상에... 10cm가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다니! 2013년 2월23일은 인디밴드 최초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가 있었던 날이다. 어느 고등학교 체육관이 아니라 올림픽 체조경기장이었다. 체조경기장은 올림픽홀, 테니스경기장, 핸드볼경기장 등 공연장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올림픽공원 내 장소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만5000석 규모의 공연장이니 정말 꿈 같은 곳이다. 10cm는 여러 인터뷰에서 체조경기장 단독 콘서트는 자신들의 꿈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0cm의 두번째 EP 'The 2nd EP'는 바로 그들의 꿈이었던 체조경기장에서의 단독 콘서트를 위한 앨범이다.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이런 저런 스타일의 곡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곡을 만들었고 연주해보니 좋았다. 공연장에서 보다 잘 소통하기 위해 앨범 발매까지 결정했다고 한다.앨범 리뷰에 이런 글이 써있다. '옆에서 지켜본 10cm의 창작과정은 한가롭고 치열하다. 계산보다는 자신들의 기분이 우선이고, 멋있는게 나오면 그것을 발표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는 이 작품이 단연코 10cm 최고의 명반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나'는 10cm의 절친인 소란의 고영배이다.)"

결국, 이번 앨범은 눈 앞에서 곧 자신들의 음악을 듣게 될 팬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것. 앨범을 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내일 모레면 만날 공연장 팬들 1만5000명을 떠올리고 썼다는 것. 맞다. 앨범 발매일이 그래서 2월4일이구나. 결국, 이러한 '공연전 아드레날린'에 자신들의 비기와 장점과 부족한 점이 척척 아귀가 맞아떨어져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을 보면 이들은 천상 '밴드'다.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한 새로운 작품인 이번 앨범은 이전 작품의 여집합과 교집합이 잘 배합된 앨범"이라는 이창희 대표의 평가는, 그래서 옳다.

1번트랙 '오예'는 첫트랙답게 유쾌하고 흥겹다. '네가 나를 냉장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인다'는 발상, '누가 날, 누가 날, 누가 날'을 반복해 다른 단어처럼 들리게 하는 이들의 말장난도 재밌다. '베이베' 소리를 마치 로큰롤 시절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과장되게 내는 권정열의 장난기, '철종이' 호명 다음에 이어지는 윤철종의 낭창거리는 기타 사운드. 노래 안에 2명이 꽉 찼다. 2번트랙 '근데 나 졸려'는 좋게 말하면 생활밀착형 남자, 나쁘게 말하면 찌질남의 깜찍한 하소연, 4번트랙 'Don't Let Me Go'는 절정에 달한 듯한 권정열의 자신만만한 보컬 쇼케이스. 이어 공연장을 찾은 연인들을 위한 달달한 선물 '모닝콜'로 마무리. 깔끔한 엔딩, 입가에 번지는 미소.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⑫서상준 EP 'Wannabe' ⑬10cm EP 'The 2nd EP'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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