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음반 20선⑮윤석철트리오 2집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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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팬들에게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트리오 구성은 매력적인 조합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엘라 피츠제럴드의 보컬, 아트 페퍼의 알토 색소폰, 커티스 풀러의 트럼본, 아니면 예전 카운트 베이시의 빅밴드 사운드도 좋지만, 이들이 빠진 이 간결한 트리오도 표현력이 참으로 풍부한 것이다. 국내에서 인기 많은 바비 티몬스의 'This Here Is Bobby Timmons'(1960), 듀크 조던의 'Flight To Denmark'(1974), 케니 드류의 'Recollections'(1989) 모두 앨범 아티스트가 재즈 피아노를 담당한 피아노-베이스-드럼 트리오 명반들이다. 입맛 다실 정도로 낭랑한 피아노, '둥~ 둥~' 들릴 듯 말듯해 더 애간장을 태우는 베이스, 기막히게 리듬을 타고 들어오는 드럼의 하이햇 사운드. 이게 바로 재즈 트리오의 매력이다.

윤석철 트리오는 이러한 재즈트리오의 듣는 맛을 국내에 전승, 전파해오고 있는 흔치 않는 사람들이다. 순수 국내파 윤석철이 피아노, 정상이가 베이스, 김영진이 드럼을 맡아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2월 나온 정규 2집 'Love Is A Song'은 이들이 4년만에 선사하는 근사한 코스요리. 그것도 재즈신에서 흔히 말하는 '모던' 혹은 '블루노트' 어법에 충실한 메인 요리에다, 퓨전과 일렉트로닉한 느낌의 전채와 후식까지 가미한 특선 요리다. 자, 이제 갑갑한 이어폰은 빼버리고, 늦은 밤 우퍼 냄새 그윽한 스피커로 이들의 'Love Is A Song'을 진득하니 들어보는 걸로. 그리고 몇몇 곡은 상쾌한 이슬 내리는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듣는 걸로. 10곡 모두에 취해봐야 47분밖에 안된다.


우선 정통 재즈어법에 충실한 곡부터. 3번트랙 'Show Must Go On', 5번트랙 '막무가내', 7번트랙 'Trampoline'이다. 올드 재즈 팬들이 좋아할 만하다. 재즈 피아노 특유의 타건음과 뒷박에 놓이는 박자감도 그렇고, 때로는 빠르게 종종, 때로는 느리게 성큼성큼 대는 베이스의 운주도 그렇고. 한마디로 교과서적인 재즈트리오 어법. 그렇다고 버드 파웰이나 빌 에반스, 맥코이 타이너처럼 피아노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스타일이 아니라, 쿼텟 혹은 퀸텟 시절의 호레이스 실버나 오스카 피터슨처럼 피아노가 다른 연주자들과 적당히 호흡을 맞춰 양보할 때 화끈하게 양보하는 쪽에 가깝다. 특히 9번트랙이자 이 음반 타이틀곡인 'Love Is A Song'에선 무대에서 눈신호를 보내는 이들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서로 주거니 받는다. 4곡 모두 100점짜리 연주곡이다.

하지만 이들 4곡은 이번 앨범에서는 오히려 '튀는' 곡들. 앨범의 전체 분위기는 오히려 한때 국내에 광풍처럼 일었던 재즈록퓨전 스타일에 가깝다. 그리고 악기 특성상 역시 이러한 분위기 쇄신을 주도한 것은 윤석철의 피아노다. 1번트랙 'No Matter'은 전기밥을 먹인 몽롱한 신시사이저 소리부터 정통 재즈 사운드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곡. 역시 피아노가 이 곡과 이 앨범 변신의 핵심이다. 세 악기가 스피커 한가운데서 단단한 음장을 형성하는데, 느닷없이 한쪽 귀퉁이에서 출발한 낯선 신시사이저가 결국에는 전체 사운드를 주도하는 형국. 1990년 나온 데이빗 베누아의 'Inner Motion' 앨범을 떠올릴 팬들도 많을 듯.

2번트랙 'We Don't Need To Go There'는 드럼이(마치 전성기 재즈메신저스 시절의 아트 블레키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이런 드럼에 멍석을 깔아준 것은 다름아닌 일렉트릭 피아노다. 뒤로 물러나도 존재감이 느껴지는 베테랑의 포스라 할 만하다. 재즈 연주곡에서는 좀체 들을 수 없었던, 록처럼 느닷없이 드럼이 마무리를 짓는 스타일도 재미있다. 4번트랙 'Three Points Of Views', 6번트랙 '음주권장경음악', 8번트랙 '안녕히 주무세요' 등은 이러한 '플러그드 사운드' 느낌에 대한 윤석철트리오의 단계별 심화학습 트랙. 마지막트랙 'Muse'에선 피아노가 다시 서정적이고 단정한 옛 스타일로 돌아갔는데 드럼이 변화한 사운드로 곡을 주도하고 있어 이채롭다.


그러면 'Love Is A Song' 앨범은 '정통 재즈어법으로 무게중심을 잡고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변신(변색)을 꾀한 카멜레온 같은 앨범'으로 평가하는 게 온당할까. 아니다. 틀렸다. '변신'이 아니다. 클래식, 스윙, 비밥, 모던, 쿨, 이스트코스트, 프리, 록퓨전, 컨템포러리, 제3세계 등 재즈는 사실 어느 한 얼굴만 보여준 적이 결코 없으니까. '대한민국 실력파 재즈 트리오가 들려주는 현재진행형 재즈 모음곡'. 이게 맞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윤석철 팬이라면 귀가 솔깃할 만한 '증언' 한토막. 이 음반을 배급한 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의 귀뜸이다.

"윤석철과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윤석철트리오 2집 발매 직후였다. 이번 2집 제작사인 에반스레코드 홍세존 대표와의 술자리였고, 내 기억으로는 두툼한 손이 인상적이었으며 굉장히 위트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참 좋아보였다. 그러다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윤석철을 봤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거다. 재즈뮤지션이 그 프로에 출연한 건 흔하지 않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연주도 좋았지만 유희열과 주고 받는 말솜씨에 수수하고 담백한 위트가 담겨있었다. 예전 루시드폴이나 10cm처럼 한 코너를 맡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인간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그는 분명 재즈의 대중화에 한몫 할 것이라 본다. 유머러스하고 위트있는 남자는 참 인기가 많다. 그러니 그도 멋진 연애를 하고 있을 것 같다."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⑫서상준 EP 'Wannabe' ⑬10cm EP 'The 2nd EP' ⑭강백수 1집 '서툰말' ⑮윤석철트리오 2집 'Love Is A Song'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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