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19)

이광수 / 입력 : 2014.03.0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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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토트골드 /사진제공=메타뮤직사운드


어느날 나는 회사 직원들에게 3일간 출근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평일에 3일씩이나 쉬라는 내 말에 직원들은 의아해하며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빔13.5에 이어 펜토드를 개발할 즈음 나는 큰 손해를 당했다. 우리 회사에 도둑이 들어와 많은 것을 가져갔다. 만들어놓은 제품 몇 개와 당시 수입해 사용해 쓰고 남은 GE 6550A 400여개, JBL 하츠필드 스피커 세트 그리고 토랜스 124 턴테이블과 카트리지 3종 승압 트랜스, 인터선 케이블까지 거둬 가지고 갔다.


나는 이렇게 손실을 보고 나니 그동안 내가 매사에 느슨하고 습관에 젖은 생활이 불러온 결과라고 생각하고 자신부터 돌아볼 기회를 가져 보려는 것이 쉼의 목적이었다. 그 전에도 한번 도둑이 들어와 휘젓고 간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사무실만 뒤져보고 가져간 물건이 없어 그냥 지나쳤었다.

나는 3일간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네 것은 내가 막 가져가도 된다"고 하는 경멸적 존재로 전락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비애스런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고 또 매우 슬프기도 했다.

금품을 노리는 일반 도둑과 달리 물건들을 가져간 사람들은 이 연구소와 나를 잘 아는 사람임이 틀림이 없었다. 가져간 물건들을 보면 마니아급 이상인 사람이 아니면 가져갈 물건들이 아니며, 또 단품과 달리 앰프를 만들면 꼭 끼워줘야 할 진공관을 수백 개나 가져간 것을 생각하면 사업의 싹을 잘라 놓겠다는 것이 잘 아는 사람의 짓이라 생각되어 더 괴롭고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그 때 우리가 있던 곳은 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밤이면 인적이 드믄 곳으로 적막하기까지 했었다. 나는 제조만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이전했는데 일반 손님들이 찾아오기에는 불편한 곳이고, 또 손님들을 맞을 수 있는 공간도 준비를 안했기 때문에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하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 상담으로 대신하고 듣고 싶으면 취급점을 알려주곤 했다.

그러므로 다녀간 사람의 수는 많지 않고 물건을 가져간 사람은 그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착잡했다.

3일간의 휴기를 끝내고 출근을 해서 나는 회사의 구조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한 뒤 인원을 많이 줄였다. 최근 벌어진 어려운 일과 더불어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한 듯 별 문제없이 해결이 되고 사무원과 제작기사 5명만 두고 모두 줄였다.

그리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주변에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정황들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큰 환풍기가 매달린 곳을 뜯어내고 들어 왔으며 공장 옆 골목에 작은 트럭이 있었고 전기 불을 켜 놓고 작업을 하였으며 사람은 2명이었다... (이하 생략)

어쨌든 팬토드 골드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차질이 없이 진행은 되었으나 없어진 출력관을 대신할 진공관이 없어 다시 구입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 미국의 GE 회사는 진공관 생산을 막 중지한 상태여서 다시 들여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우리와 거래를 해 왔던 유럽의 어느 딜러를 통해 EL34와 KT88 1000개씩 들여왔는데, 이 진공관은 붉은 글씨로 'Lee Laboratory EL34, KT88'이라고 인쇄된 출력관이었다, GE 6550보다 신뢰성은 조금 떨어지나 내구성이 좋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이 팬토드 골드는 간단한 스위치 조작으로 KT88과 EL34 출력관을 교체 사용해 진공관에 따른 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 회로는 내가 1989년에 특허를 받은 것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펜토드 골드(pentode gold)에 적용이 된 기능이다. 그래서 앰프를 구입하면 EL34와 KT88 2조 16개씩 가지고 가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마감은 가죽의 세무 같은 질감의 무광 커피색과 중회색을 띤 바디 위에 골드 칼라를 씌워 처리를 하였는데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질감과 촉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앰프를 튜닝하면서 B&W 801 스피커를 가지고 실험을 많이 했는데, 우퍼를 두 번이나 망가뜨렸으며 한쪽의 고음도 망가뜨렸었다. 그때 주 시험은 내입력을 많이 받는 스피커를 드라이브 하는 시험이었다.

자기 바이어스와 고정 바이어스 중에서 앰프의 드라이브 능력 테스트 과정을 거치면서 구동이 좋은 고정 바이어스 쪽으로 앰프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팬토드 골드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물건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 또는 호기심 같은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는데, 빔13.5의 후속으로 이 모델이 나오자 먼저 모델보다 판매가 훨씬 더 많았다. 물론 13.5보다 외관이 더 좋아지고 진공관 앰프로 저능률 스피커에 대응할 마땅한 앰프도 시장엔 별로 없어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처음 시도된 몇 가지들이 구매자들의 구매요인이 되기도 한 듯 했다.

1991년경 코엑스에서 전기전자 박람회가 있었다. 한 외국인이 우리 부스에 들려 열심히 들어보고 살펴보고 갔다. 마지막날 그가 다시 왔다. 그러면서 자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고 우즈베키스탄 국립대학교 교수라고 하면서 펜토드 골드 앰프를 한 조 사겠다고 해서 그에게 한 조를 팔았다. 내가 그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보내주겠다고 하자 그는 항공료가 많이 비싸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하면서 두 개에 40kg이 더 되는 무거운 앰프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다. 그 나라까지 가지고 가기엔 너무 고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이 앰프를 내 놓으면서 두 가지 실수 아닌 실수가 있었다. 첫째는 KT88 출력관과 EL34 출력관의 사용을 변환해 주는 스위치의 부착이다. 사용자들의 오조작으로 바이어스 전압이 틀려져 출력관 또는 앰프가 고장 나는 경우가 발생 되는 실수와 세라믹 8핀 소켓을 수입해 사용한 것인데 이 소켓 핀의 텐션이 안 좋아 접촉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모르고 사용한 실수이다.

어쨌든 이 펜토드 골드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리며 훨씬 개선된 펜토드 플래티넘(Pentode Platinum) 모노 앰프와 소리의 일그러짐이 없는 톤 콘트롤(tone-control. treble, bass) 볼륨이 달려 있는 프리 앰프도 곧 선보일 예정인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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