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황보령, 대체불가한 이 쾌감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3.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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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령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음반재킷.


거의 매일 쏟아지는 음원, 음반의 홍수속에 의외로 '묻히는' 앨범이 너무 많습니다. 'Let It Go'나 '썸' 'Come Back Home' 정도가 귓전을 때리고 있는 요즘, 스타뉴스가 차트성적만이 아쉬웠던 앨범을 두서없이 골라보려 합니다. 인디레이블 발매 음반 중 듣자마자 확 댕겼거나 들을수록 감칠맛이 났던 모던록, 힙합, 슈게이징, 록, 팝, 포크, 보컬, 인스트루먼탈 등 다채로웠던 음반들. EP 이상 정규앨범 중 '훗날 2014년을 대표할 만한 인디음반'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지난해 연말 스타뉴스가 연재했던 '대놓고인디-올해의 음반20선'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①황보령 EP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 이것이구나. 그동안 갈급했던 사운드와 보컬과 노랫말이라는 게.'

지난 2월 나온 여성 싱어송라이터 황보령의 미니앨범(EP) 첫 인상은 너무 쉽게 도드라진다. 1번트랙 '매일 매일 매일(Everyday. feat 방승철)'의 첫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부터가 귀를 옭아맨다. 잔잔하게 재생되는 어쿠스틱 기타현 특유의 맑고 투명한 울림.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어렴풋이 오버랩되는 한국가요사의 튼실했던 어쿠스틱 기타사(史). 트윈폴리오 뚜아에무아 박인희 양희은 김세환 김두수 조동진 이정선 김의철 함춘호 이병우 박학기 김광석 자탄풍 유리상자 이상순 조정치 정성하 박주원. 과한 일렉트릭 사운드, 정신없이 나대는 킥드럼 베이스에 지친 팬들이라면 그야말로 3분47초짜리 힐링 타임이다.

까실까실한 황보령의 음색과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듯한 창법은 이런 사운드에 날개를 달아줬다. '불후의 명곡'이나 'K팝스타3'가 부추긴 광폭의 고음 성대에서 진작 비껴난 황보령만의 대체불가한 보컬. 방승철이 지은 노랫말 역시 요즘 계절에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린다. 나른한 봄에 나타난 자그마한 체구의 전령 쯤? '..창가에 졸고 있는 작은 화분에 물을 줘보니/ 신기하게 일어나서 노랠 부르네/ 라랄랄라/ 아름다워 봄의 놀이터 숨쉬는 나의 작은 방/ 아름다워 나의 짝사랑 어쩌면 또 그녈 볼지 몰라 거울을 보자..' 세상에, 봄과 놀이터라는 단순 단어 조합이 전해주는 이미지가 이리 셀 줄이야. '매일 매일 이런 날이 올까 꿈을 꿔보네'로 끝나는 이 노래, 내년 이 맘때 다시 찾아들을 팬들, 많을 듯.


2번트랙 '마법의 유리병(feat. 한희정)'은 황보령과 기타, 드럼, 첼로, 퍼커션의 예상못했던 화음이 돋보이는 곡. 특히 중저역을 담당하는 첼로는 가요에서 좀체 듣기 힘든 악기인데, 마법이 풀리기를 오매불망하는 버려진 유리병의 속내를 거의 완벽히 대변해준다. 이번 앨범이 사운드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 하긴 황보령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이미 1998년 1집 '귀가 세개 달린 곤양이'부터였으니. 또 하나. 곡 중반, 한계를 모르고 바닥으로 떨어지던 황보령의 중저음 절규에 살짝 섞이는 한희정의 맑은 목소리, 묘한 긴장감을 풍기는 두 사람의 합창은 이번 앨범이 준비한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다소 민망해지는 말장난 혹은 언어유희(아저/씨/발/냄새나요) 속에 거침없이 속내를 터트린 '밝게 웃어요'를 지나 찾아온 4번트랙 '곤양이 노래(feat. 조용민 송은지)'는 앨범 타이틀을 정서적으로 대신 말해주는 곡. '여기저기 이곳저곳 언제나 분주한 사람들/ 집에 오면 곤양이 두 마리 나를 위로해주네/../ 생각해 너를 보고 싶어서/ 난 잠이 와 나른하게/ 집에 있으면 곤양이 세마리/ 나도 같이 함께 하네'. 35mm 단렌즈로 찍은 기막힌 일상이랄까. 1분53초 짧은 곡의 임팩트가 아주 제대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5번트랙 '어디로(feat. 진선)'를 위한 전주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선의 반도네온이 일궈내는 쓸쓸한 탱고 분위기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다. 황보령의 보컬 역시 그 강도를 더욱 높여 스피커에서는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무지막지한 모래바람이 느껴질 정도다. 아니, 이건 그냥 절규다. 반도네온과 칼칼한 보컬의 조합, 감내할 수 없는 황량한 분위기 때문일까. 지난해 야야의 2집 '잔혹영화'에서 가장 혹독하게 청자를 잡아맸던 'Truth', 아니면 98년 황보령의 1집 1번트랙 '탈진'이 그대로 연상된다. 이쯤 되고 보면, 황보령은 자신의 보컬마저 앨범의 대체불가한 통울림 악기로 활용했음이 명백하다. 아, 노래 한 곡, 앨범 한 장 듣다가 또다시 돋는 이 소름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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