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의 '짱구일기'③- 마침내 권투입문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4.03.3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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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가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시대의 레전드들을 드라마로 읽는 연재물입니다. 전설로 남은 스포츠와 연예스타들의 삶속에 담긴 드라마틱한 석세스스토리를 드라마작법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레전드의 삶을 구축하는 다큐물이 되겠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드라마적 재미를 곁들여볼 예정입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지난 2000년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된 ‘짱구’ 장정구입니다. 1983년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후 15차 방어에 성공하고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던 장정구의 삶을 시작으로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막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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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아미동 산동네 비탈길

자막: 1975년 7월 11일

어린 정구가 달려내려간다. 이따끔씩 팔을 빙빙 돌리는 양이 제법 신이 나있다. 저만치 놀이터에서 놀고있던 친구들이 정구를 향해 소리친다.


친구 짱구야! 니 불 맞았나? 어데 가는데?

정구 (고개만 돌려) 내 바쁘다. 말걸지 말래이.

친구 긍까네 어데가는데?

정구 뽁싱장간다. 뽁싱장!

저희들끼리 아리송해하는 아이들을 뒤로 남기고 서둘러 달려가는 정구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

정구(E) 돈 여있심더.

S#2. 극동체육관

책상위에 백원짜리 십원짜리 지폐가 꼬깃한채 놓여있고 잔뜩 기뻐 흥분된 표정의 정구가 서있다. 사무직 아가씨가 지폐를 세는 사이 정구는 시선을 유리창 밖으로 돌려 그너머 복싱장 풍경에 넋을 뺀다. 낮이라 몇없는 복싱장엔 줄넘기하거나, 샌드백치거나 미트치는 몇몇이 각각 열심히 운동중이다.

여직원 맞네. 천오백원. (하고는 등록증을 내민다) 자.

정구 (받아서 보면 512번이란 숫자가 보인다.) 근데 여 512번이 뭡니꺼?

여직원 니가 우리 극동종합체육관 복싱부에 512번째로 등록했다는 말이야.

정구 그카믄 지 앞으로 오백열한명이나 더 있는 겁니꺼?

여직원 응. 지금은..근데 그만두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면 니 번호도 앞당겨질거야.

정구 그럼 언젠간 지가 1번 될 수도 있겠네예.

여직원 (피식 웃으며) 그렇지.. 근데 굉장히 오래 다녀야 될건데.

정구 지는 세계 챔피언 될 때까지 다닐깁니더.

여직원 (피식 웃으며) 그래?

정구 근데 여 운동시간은 어떻게 됩니꺼?

여직원 따로 없어. 맘대로 해도 돼.

정구 (정말 반갑다) 그래예?(환하게 웃음이 피어나는 정구)

S#3. 정구집/ 밤

정구모와 정구형 누나들이 밥을 먹고 있다.

정구형 정구는요?

정구모 잔다.

정구형 밥도 안먹고예?

정구모 어데. 내도 집에 와 보께네 찬밥 싹싹 긁어먹고 지 방서 코골고 자고 안있나.

정구형 허허. 자슥. 꼰투가 그리 재밌나?

정구모 근데 짱구 자가 하도 졸라서 도장비는 내줬다마는 걱정이데이. 돈도 그렇고..

정구형 놔두소 마. 핵교도 못보내는데 지 좋다는 그기라도 시켜줘야 안되겠심까.

정구모 돈도 돈이지만도 삐쩍 골은 아가 그 험한 걸 한다니께네.

정구형 어무이요. 걱정마소 마. 어무이 막둥이가 아미동 짱굽니더. 아미동 꼬맹이들 사이에선 막둥이가 대가리라예.

정구모 그래도..

정구형 그냥 놔둬 보소.. 누가 압니꺼? 지 말 맹크로 어무이 막내아들이 세계참피온될런지..

정구모 그래 매 맞아 참피온되믄 그기 뭐 좋나? 내는 우리 아가 매맞아 돈버는 짓은 안했으먼 좋겄다.

정구형 걱정마소 마. 참피온되기가 쉬운교. 뽁싱이란게 엄청 힘든거라예. 지도 하다 말낍니더

정구모 그럴까?.. 짱구 저 고집통머리가 ...

형의 위로에도 얼굴 펴질줄 모르는 어머니 표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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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경기만 보면 집중력이 남달라지는 장정구.


S#4. 체육관 사무실

소파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자고있는 사람이 있다. 소파앞 탁자엔 소주병과 라면 냄비따위 전날 음주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놓여있다.

사무실은 소파사내의 코고는 소리와 함께 ‘탁탁탁탁’ 규칙적인 소음에 쌓여있다.

문득 코골이가 뚝 그친다. 그 위로 계속 들려오는 ‘탁탁탁탁’소리. 소파의 사내 귀를 막아본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 사내 더욱 몸을 움츠리고 있고.

그때 문이 열리며 여직원이 들어오다 만행의 현장을 목격한다.

여직원 (인상 쓰며) 하이고 냄새... 진짜(하면서 허리에 손 올리고 소리 빽 지르려는데)

사내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으아! 진짜!(이영래 사범이다.)

여직원 (깜짝 놀라) 이.. 이.. 이사범님

이사범 (벌떡 일어나며) 뭐꼬 절마 (유리창쪽으로 다가가 보면 정구 혼자 줄넘기를 하고 있다. 여직원 보며) 김양아! 저 꼬맹이. 저 머꼬?

여직원 짱군데예..

이사범 짱구?.. 지가 짱구면 짱구지.. 와 꼭두새벽부터 저 난리고 난리가.

여직원 아홉신데예.

이사범 아홉..(말막힌다).. 내 말은 아홉시믄 와 학교도 안가고 여와서 저 지랄하냔 말이다.

여직원 짱구는 학교 안다니는데예.

이사범 안.. 하 저.. 말도 안되는 자슥.. 에이!(하며 머리를 북북긁으며 나간다)

여직원 (벙떠 보다 소리 빽) 이거 치우고 가야죠!

S#5. 놀이터

짱구없는 놀이터에 친구1, 친구2가 미트놀이 등을 하며 놀고 있다.

갑배 제법 불량기있게 중학교교복을 입고 가방을 옆구리에 꿰찬 채 다가온다.

갑배 야들아! 짱구 어뎄노?

친구1 뽁싱장에 있을기다.

갑배 뽁싱장? 짱구 뽁싱 배우노?

친구2 한 한달됐다.

갑배 아 그래서 안뵀나보네..

친구1 (비아냥)니도 중학생됭께 잘 안보이데..

갑배 (거들먹) 아, 내 그냥 딴 아들 맹키로 학교만 댕기는기 아이다.

친구2 아니믄?

갑배 써클안하나. 써클.

친구1 써클이 먼데?

갑배 하아 자슥들.. 니네 중탁 아나?

친구2 중탁?

갑배 (답답하다) 중앙탁구장 모리나? 롤라장 위에 중앙탁구장!

친구1 거길 중탁이라 부르노?

갑배 그래. 거게는 아무나 못가는데다.

친구2 와?

갑배 이 부산바닥서 젤로 잘나가는 형아들만 가는데 아이가. 찌질이들 왔다간 맞아뒤진다.

친구1 근데?

갑배 우리 써클 행님들이 그 중탁을 꽉잡고 안있나? 내도 행님들 일 좀 도와주고 그칸다.

친구1,2 (부러움에) 와!

갑배 아, 내 짱구한테 중탁 한번 놀러 오랄라 켔는데...

친구1 와 짱구만 부르노? 우리도 함 가자!

갑배 니들? (같잖다는 눈길로 아래위 훑고) 그래, 날 함 잡자. 내는 간데이(하고 거들거들 멀어지면)

친구2 저 새끼.. 한번 패뿔까?

친구1 니 갑배 이기노?

친구2 대꾸없이 갑배 뒷통수만 본다. 친구1은 응?응? 답을 재촉하고

S#6. 체육관/ 밤

이영래 사범이 육성선수 박태훈의 미트를 받아주고 있다. “원 투. 원투. 원투쓰리 포.”등을 카운트하며 팡팡 받아준다. 스트레이트를 유도하다 미트 아래로 내려 복부 훅을 유도하기도 하고 원투 후 머리위로 미트를 휘익 돌려보기도 하면 박태훈은 더킹으로 이를 피하고 다시 원투 치고 한다.

저만치 샌드백옆에서 정구 저혼자 움찔움찔 해가며 배우는 모양새.

이영래 (성이 안찬다) 약해. 더 세게 더. 더 . 더 세게 (그냥 받아주기만 하는게 아니고 미트를 맞받아치듯 팡팡 밀어제낀다)

마지막 피치인 듯 밀어붙이는 이사범의 기세에 정신없이 미트를 두들기면서 뒤로 밀리는 박태훈, 마침내 엉덩방아 찧고만다.

이영래 (앉아 퍼진 선수 상대로) 벌써 하체 풀린거 봐라 자슥. 니 그캐서 4라운드나 뛰겠나 자슥아. 내 뭐래. 뽁싱은 하체라 캤어 안했어?

박태훈 했지라.

이영래 했제? 근데 미트질 3분도 못버티노 자슥아. 니 로드웍 몇키로 뛰노?

박태훈 4키로 뛰는구만요.

이영래 약해. 약해. 낼부터 6키로다. 알았제?

박태훈 야.

이영래 몇키로?

박태훈 6키로요.

이영래 (미트 벗으며) 내 보믄 다 알아. 학실히 해라이.

박태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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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한 동료들과 함께.


S#7. 사무실

미스 김 주판으로 결산 맞추고 있다.

문열리면 이영래 사범 땀닦으며 들어온다. 수건 목에 건채 급수대의 주전자서 물을 한잔 따라 마시다 유리창을 통해 저만치 물을 따라 오고있는 정구를 본다.

이영래 미스 김아

미스 김 예?

이영래 절마 이름 뭐라 캤제?

미스 김 (정구쪽 흘끗 보고) 정구요. 장정구요.

이영래 (고개 갸웃하며) 아닌데? 그런 이름 아녔던 것 같은데?

미스 김 아 짱구요.

이영래 그래 그래 짱구.. 근데 저놈아는 와 집에 안가노? 꼭두새벽부터 남 잠 깨우고카드만

미스 김 모르셨어요? 쟤 입관한지 두달 넘도록 내~ 체육관서 살았는데.. 아침에 나와서 밤 돼야 가요. 출퇴근 확실하다니까요.

이영래 그래?

물마시며 정구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다. 이영래 사범의 의미심장한 시선에서.

S#8. 체육관/ 밤

박태훈이 씁쓸한 기분으로 붕대를 풀고 있다. 그 앞에 들이밀어지는 물잔. 보면 정구다.

박태훈 (피식 웃으며) 고맙고먼. (하고 달게 마신다)

정구 아재요. 뽁싱 한지 얼마나 됐심꺼?

박태훈 (마시던 물 푸우 뿜는다) 아재?

정구 (당황해서) 와 예?

박태훈 아그야. 너 몇 살이냐?

정구 열두살인데예.

박태훈 열두살.. 나는 딱 스물여. 스물.

정구 예에... 근데예?

박태훈 니가 요로코롬 물도 떠주고 착한줄은 알겄는디. 그렇다고혀서 여덟살 차밖에 안나는 니가 나를 아재라 부르고 그러는건 명백한 실수랑께.

정구 그럼.. 뭐라..캐야 되는데예.

박태훈 존 말 있잖연 마. 형.

정구 형예?

박태훈 그려. 형.. 인자 우리 정식으루다 인사나 허자. (악수 청하며) 난 쩌그 전남 광양서 온 박태훈여.

정구 (어른스런 대접에 기분좋아 맞잡으며) 지는 쩌그 아미동서 온 짱구, 아니 장정구라예.

박태훈 형을 붙여야진 마 끝에.

정구 형.

박태훈 그래 짱구야

하며 정구의 머리를 기분좋게 흐트려준다. 웃는 두사람.

저만치 사무실에선 그런 모습을 이영래사범이 미소로 지켜보고 있다.

S# 9. 놀이터/ 밤

정구형이 어둠속에 담배 피고 있다. 저만치 골목으로부터 로드웍하며 올라오는 정구모습 보인다.

정구형 짱구야!

저만치 정구의 작은 실루엣 “행님요”하며 반갑게 달려온다.

정구형 늦었다이. 배안고프노?

정구 괘안심더. 인자 가서 먹으면 됩니더.

정구형 점심은 우쨌노?

정구 아침에 배 땡땡하게 먹구 가믄 괘안심더. 꼰투가 재밌어가 도장에 가 있으먼 배도 안고픈기라예.

정구형 그카믄 점심은 숫제 굶는기라?

정구 야.. 인자는 습관돼서 암시랑토 않아예.

정구형 후우(길게 담배 연기 뿜는다) 정구야.

정구 예 행님.

정구형 꼰투가 그래 좋나?

정구 예.

정구형 (안쓰러워) 니 만할때는 끼니 안거르고 잘 먹어야 키가 크는긴데...

정구 그래가 아침 저녁 자안뜩 먹는다 안합니꺼.

정구형 (작심한 듯 담배 비벼끄며) 니 꼰투 관두믄 안되겠나?

정구 예? (너무 뜻밖이다).. 와예?

정구형 니도 인자 머 알낀 알아야 될끼고... 니 도장비 안있나?

정구 (알고 있다. 고개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야.

정구형 우리 행편에 감프다. 내 말 알긋나?

정구 (더욱 기어들어가며) 야.

정구형 내도 어린 니가 그케 좋아하는거 꼭 시켜주고 싶은데. 어무이도 이 행님도 많이 에렵고마.

정구 (고개 번쩍 쳐들며) 행님요. 1년만 채우면 안되겠심까?

정구형 어이?

정구 1년만 넘으면 도장비 안내도 되예. 그런 선배들 많심더.

정구형 니 지금 댕긴지 얼마나 됐노?

정구 (다시 주눅든다) 석달 댕겼심더.. 인자 석달째라예.

정구형 석달.. 안즉도 아홉달이나 남았고만..후우.. 알았다. 쪼매 더 생각 좀 해 보자. 가자. 배고프겄다.

앞장서 가는 정구형이나 고개 숙이고 그 뒤를 따르는 정구나 그 뒷모습이 많이 쓸쓸하다.

이영래(E) 니 쌈 잘하나?

S# 10. 체육관 사무실

소파에 다리꼬고 앉아있는 이영래 사범앞에 정구가 열중쉬엇 자세로 서있다.

이영래 니 쌈 잘하냐고?

정구 쪼매 합니더.

이영래 쌈 더 잘할려고 뽁싱장 나오나?

정구 어데예? 지는 챔피온 될려고 나왔는데예.

이영래 챔피언?

정구 야.

이영래 꿈좋네. 근데 그거 아나? 챔피언이 될라카믄 먼저 뽁서가 돼야되는기라. 그카고 이 뽁서는 주먹을 링에서만 쓰는기라. 아나?

정구 야.

이영래 링밖에서 주먹쓰는 놈들은 깡패야. 뽁서가 아니야. 긍까네 암데서나 주먹자랑카고 그러는거 아이다. 어이?

정구 야.

이영래 니 이달말이면 여 다닌지 3개월이네.

정구 (주눅들어 고개 떨구며) 예

이영래 그래. 담달부터 니는 관비없다.

정구 (고개 번쩍 치켜들며) 예?

이영래 와? 꼭 관비 내고 다니고싶나?

정구 어, 어, 어데예. (절하며) 감사합니데이. 감사합니데이.

이영래 그래. 인자 니는 우리 식구다. 식구중에 막내. 막내는 체육관 청소도 하고 카는기다. 됐나?

정구 야. 됐심더. 됐심더. 됐심더 (기쁨에 겨운 정구의 얼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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