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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봄이라고 벚꽃만 떠올리고 비발디의 '사계'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국내 최고의 하모니카 연주자 중 한 명인 전제덕이 8년만에 선보인 정규 3집 'Dancing Bird'는 향긋한 봄 향기 패키지다. 클래식, 팝, 재즈, 국내 가요 어디서고 좀체 들을 수 없는 하모니카가 재즈, 발라드, 퓨전, 스윙 등 다양한 장르에 실어 봄 향기를 한바구니 가득 전한다.
패키지 문은 타이틀곡 '봄의 왈츠'가 연다. 크로매틱 하모니카의 스타카토 연주와 재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베이스의 핑거링 주법이 절묘하게 엉켰다. 꽃이 피려는 순간의 설렘 같은 것. 하지만 이어지는 피아노 타건음의 긴장감과 드럼과 비브라폰, 클라리넷의 잔잔한 사운드가 조금은 위태로운 봄의 단면을 전한다. 다시 듣고보니 이 하모니카라는 악기, 연주자의 입술에 직접 맞닿아 가늘게 떨리는 그 모습과 음색이 태생적으로 슬픈 악기다. (이러한 하모니카의 우수에 찬 선율은 4번트랙 '뒷모습', 7번트랙 '멀리 있어도'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번트랙 '다시 만날 때까지'는 웬지 모르게 멜로디가 익숙하다. 한때 대한민국을 광풍처럼 휩쓸었던 케니 지 스타일의 퓨전재즈, 바로 그 느낌이다. 그것도 도회적이고, 창백하며, 쿨한 그런 인스트루먼탈 재즈. 하모니카 역시 '봄의 왈츠' 때보다 크기와 통울림이 더 커진 것 같다. 하지만 전제덕의 하모니카에는 소프라노 색소폰은 따라올 수 없는 회환과 후회, 망설임과 자조가 숨어있음이 분명하다. 곡 후반, 현악과 목관 악기들이 일궈내는 오케스트레이션에선 그만 침이 꼴깍 넘어간다.
봄은 그래도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라 약동하고 경쾌해야 한다면, 3번트랙 'Dancing Bird'가 제격이다. 처음부터 삼바 리듬이다. 곡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퍼커션 사운드가 우선 흥겹고, 피아노와 일렉 베이스기타도 이번 곡에서는 업비트다. 살짝살짝 들리는 목관악기군의 나긋한 사운드는 마치 봄 요정의 수군거림 같다. 전제덕 역시 모든 것을 잊고 자유롭게 비상하려는 새의 활동적인 모습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연주자 모두 앉아 있는 사람은 없다. 마치 댄서블 재즈처럼 흥겹다.
5번트랙 '항해'는 같은 소속사에서 전제덕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작곡하고 연주자로도 참여한 곡. 힘이 가득 실린 첫 기타 음부터 '박주원'표다. 6번트랙 'St. Peterson'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재즈 느낌이 강한 곡. 그럴 만한 것이 재즈 색소폰의 전설 소니 롤린스의 'St. Thomas'와 한국과 일본에서 더욱 인기를 모았던 재즈 피아노의 거장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럼, 피아노, 베이스의 리듬섹션이 이 곡 무대를 시끌벅적한 1950년대 미국 스토리빌의 한 비밥 재즈 술집으로 완전히 옮겨놓았다.
전제덕이 작곡한 9번트랙 'Skyway'은 이번 앨범의 비기라 할 만하다. 21세기 대한민국 펑키 퓨전재즈의 자랑스러운 한 단면이라 해도 좋다. 하모니카의 거침없는 질주도 인상적이지만, 윤석철의 탄력 넘치는 피아노/키보드와 이순용의 질펀한 일렉 베이스기타 라인, 한웅원의 치카치카거리는 드럼사운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네 사람 모두 컨디션 극강의 상태에서 녹음했음이 분명하다. 벚꽃 다 떨어져 세상 다 시든 듯해도 이 곡 한 곡만 있으면 웬만한 근심걱정 따위는 잊을 듯.
간만에 제대로 몰입해서 들을 수 있는, 이 봄에 딱 맞는 연주앨범이 하나 탄생했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