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송승헌 "밀당 못해..운명 만나면 당장 결혼"(인터뷰)

'인간중독'의 송승헌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4.05.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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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 / 사진제공=호호호비치


송승헌이 영화 '인간중독'(감독 김대우)을 한다 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보고 나서도 한 번 더 쳤다.

아직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전쟁의 상흔을 아직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오던 전쟁 영웅 김진평이 '인간중독'의 주인공. 사랑 따위에 익숙할 리 없는 엘리트 군인은 오묘한 매력을 지닌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에게 정신없이 빠져들고 만다. 남자는 맹렬하게 사랑을 향해 질주한다. 파국이 예정된 사랑이지만, 그에게는 그걸 돌아볼 새 따위가 없다.


감정 표현에 서툴기 그지없는 천상 남자. 조금은 굳어있는 듬직한 어깨. 맞춤복처럼 어울리는 군복. 탄탄한 근육질 몸매. 그리고 원조 한류 멜로 스타. 이만큼 절묘한 어우러짐이 있단 말인가. 과거 운명같은 사랑으로 열병을 앓았고, 지금도 운명같은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취미가 장기라 장기판을 싸들고 비행기도 탔다는, 조금 옛날 남자 같은 남자 송승헌은 김진평과 참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인간중독'은 그에게 도전 자체이기도 했다. 많은 것이 처음이었다. '방자전', '음란서생' 등으로 이름난 김대우 감독과 손을 잡고 18금의 진한 베드신을 소화해야 했다. 세상이 손가락질 할 치명적인 사랑을 그렸다. 본격 유부남 연기조차 처음이었다. 그 모두를 해낸 건 이젠 마흔이 돼도, 예순이 돼도 그저 연기하겠다는 조금 뒤늦은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인간중독'은 배우 송승헌의 각오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파격적인 영화다. 송승헌에게도 파격이다.


▶청소년관람불가다, 파격이다, 부하의 와이프 사랑한다 하니까 걱정하신 분들도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게 아니라 김진평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마무리가 되니까 걱정하신 분들이 마음을 좀 놓으신 것 같다. 소외 벗다가 끝나는 영화면 하지 않았을 거다. 자극적인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노출이 어느 정도냐' 질문도 한 적이 없다. 믿고 갔다. 뭐 사우나 간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지, 그런 마음을 먹고 찍었다. 하면서도 '이거 어쩌지' 하며 고민했다면 저는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영화 안팎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배우가 돼야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배우인데 왜 배우가 되라고 하나'하고 이해를 못했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20대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최근에야 내가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마흔, 환갑이 돼도 내가 갈 길은 연기자라고 정하고 나니 한 작품 한 작품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어쩌면 막연한 자신감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이 들어서도 배우를 하려면 이런 작품도 해야 하고, 이런 캐릭터도 해야 하지 않겠나. 목표를 정하고 나니 이 안에서만 머물면 안 될 것 같다. 기존 송승헌의 이미지에 머물면 안된다는 거다. 돌이켜 보면 항상 이미지의 반복이었고, 연기적인 점수도 못 받았고. 이젠 이미지를 만들고 할 나이도 지났고, 울타리를 나가봐야겠다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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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 / 사진제공=호호호비치


-도덕적으로도 비난받는 일을 저지르는 캐릭터도 처음 아닌가.

▶악당이라도 늘 바르고 정의롭고, 결국엔 선한 인물을 많이 했다. 스스로 파격이라고 한다면 도덕적으로 박수 받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거다. 20대의 송승헌이었다면 단순히 불륜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거절했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잘 소화한다면 알아봐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맞다. 나는 일탈을 하고 싶은 게 맞다. 늘 바르고 예쁘고 그런 이미지 반복에서 벗어나 다른 나를 보여드리고 소통하고 싶은 거다.

-과거 발언들을 보면 연기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었다.

▶3~4년 전만 해도 많은 생각이 있었다. 배우 말고 딴 거 할 생각도 했다. 실제 식당 운영도 해 봤다. 배우 선배들도 연기보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고, 연기만 하겠다는 분도 있다.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가 다를 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행착오를 줄여보고자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했더니 지인 중 누군가 그러더라. '너 에너지 낭비하는 것 같다'고. '배우 안 할 거면 상관없는데 그게 아니라면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오케이, 나는 정했다. 늙어서도 연기해야지. '인간중독'이 내가 다양한 캐릭터를 하는 시작점이 되더라. 그리 생각하니 편했다. 항상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고, 결과에 흔들렸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져서 너무 좋다.

-최근 예능에 많이 출연했는데, 가장 놀란 점이 송승헌이 의외로 순진무구한 데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진평과도 참 닮았다.

▶아직도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제일 많이 만나고 술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그런다. 환갑이 돼도 똑같을 것 같다. 저번 주에도 밥 먹고 주차장에서 이야기하면서 '이게 고등학교 담벼락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랬다. 애같다는 이야기를 요즘도 듣는다. 철이 없다. 아직도 운명의 사랑이 있다고 믿고 있고, 연애에 있어서도 여자의 심리를 잘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인간중독'의 김진평 같다. 김진평이 더 연애경험이 맣고 현실적이었다면 저렇게 단순하게 사랑하지 못했을 거다. 그 사람이 그만큼 순수해서 그랬던 거다. 사랑하는 방법이 저랑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빠지면 주변 상황을 잘 못 알아챈다.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좋아해야하는 것 아니야 이런 식이다. '밀당'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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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 / 사진제공=호호호비치


-'인간중독'은 상대역 종가흔이 마치 김진평을 유혹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소위 '마구 흘린다'고나 할까.

▶시사회를 하고 나니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라. '아니 그게 뭐가 꼬시는 거예요' 그랬다. 정말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남자의 촉과 여자의 촉이 확실히 차이가 난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종가흔이 김진평을 꼬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확실히 남자가 단순한 것 같다. 또 하나 생각이 든 건, 사랑이 정말 어렵다는 거다. 운명 같은 사랑을 한 번 만난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이 원할 때 오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하다. 결혼을 이미 했는데 다른 여자에게 빠지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그렇다는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한 선배들은 설렘도 길어야 몇 년이지 시간이 지나면 그 두근거림을 포기해야 한다는데 어쩌나. 그 와중에도 송승헌은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 결혼은 안 하려고 하나?

▶운명적 사람이 있으면 나는 딴 거 안 따진다. 나는 간다. 그런 사람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하고 싶다. 그런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다. 맘 같아서는 통조림 찍어내는 공장 같은 결혼식은 싫고, 조용한 데 훌쩍 가서 하고 오고 싶다.

-송승헌의 다음이 궁금하다. 어떤 걸 해보고 싶나.

▶'인간중독'을 하고 나니 전이랑 확 다른 캐릭터들이 들어온다. 물론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이전이라면 제게 주지 않으셨을 역할들도 온다. 제가 변하고 싶어하는 걸 알아봐주시는 것 같다. 당연히 흥행했으면 좋겠고, 배우로서 보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흥행한 것보다 더 좋을 것 같다.

다양하게 연기해보고 싶다. 20대 촬영이 막 재밌다기보다 연기를 끝내야 홀가분했다면, 요새는 점점 연기하는 게 재밌다. 더 욕심이 난다. 안 해본 게 너무 많다. '트레이닝 데이'의 악한도 좋고, 치명적인 뱀파이어, 사람 아닌 인물도 좋다. 송승헌이 하지 않았던 것, 비열한 것, 의외의 것들을 해보고 싶다. 뜻밖의 것을 해보고 싶다.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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