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 花樣年華(In the mood for love)

[문PD와 임감독의 음악속의 영화, 영화속의 음악]②

임성운 영화감독 / 입력 : 2015.0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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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1990년대는 다이나믹했다. 80년대의 냉전체제에서 미국이 승리했고, 소련이라는 나라는 러시아가 되었다. 독일에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미국 음반시장에선 펄잼(Pearl Jam)과 널바나 (Nirvana)를 선두로 얼터너티브 록이 시장을 장악했고, 한국에선 서태지를 기점으로 한 새로운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혁명이 대중에게 전파되기 시작하며 희망에 들뜬 마지막 세기를 예고했다.

그런데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자살을 했고 (94년), 일본 귀신의 대명사 '사다코'는 TV에서 기어나왔고 (98년), 미국에서 가장 큰 히트를 친 영화 중 한 편은 공포영화 ‘블레어 위치’(99년)였다. 그리고 한국에선 IMF가 터졌다. (97년) 그러니까 1990년대는 21세기를 맞이하는 희망과 공포가 공존하는 시대였고, 낙관과 두려움이 한데 어우러져 기묘한 역동성을 만들어낸 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가 되는 2000년, 홍콩의 스타 감독 왕가위는 우리에게 지난 날을 되돌아볼 것을 권유하며 화양연화 (花樣年華)를 만든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2년 홍콩, 첸(장만옥)과 차우(양조위) 부부가 같은 날 같은 아파트 옆집으로 이사를 온다. 홍콩의 아파트 복도는 비좁았고 첸과 차우는 각자의 짐을 나르며 마주친다. 첫 만남에서부터 둘은 몸을 스치며 지난다. 첸은 무역회사 비서였고 남편은 일본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이었다. 차우는 지역신문사의 편집국에서 일했고 아내는 호텔에서 일했다. (2004년에 발표되는 영화 '2046'의 주 무대는 호텔이다.)

어느 날 첸과 차우는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불륜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첸과 차우는 이 사실에 분노하지 않는다. 체념하고 슬퍼한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기에 둘이 불륜에 빠졌을까 고민한다. 둘은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이혼을 염두에 두지만 이 또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첸과 차우라는 인물은, 순진하다 못 해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뒤통수를 친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뒤통수를 맞았는지, 내 뒤통수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첸과 차우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위로한다. 성경책에 나오는 서로를 '긍휼이 여기는'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물론 둘은 맞바람을 피워 볼 생각을 갖는다. 함께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둘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또 고민한다. '그 둘은 이런 걸 어떻게 했지?' 라면서. (영화에는 안 나오는 삭제 신이다.) 그 후 첸과 차우는 서로를 상대로 이별연습을 하며 사랑인지 '긍휼'인지 모를 감정에 빠져든다.

마침내 첸과 차우는 헤어진다. 첸은 이사를 가고 차우는 캄보디아에 간다. 캄보디아의 가장 비극적인 전쟁, 내전의 상흔이 남긴 앙코르와트의 총알 자국에 대고 차우는 조용히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비밀이 무엇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그리고 관객에게 말해 주지 않은 차우의 마지막 대사, 이것이 왕가위 감독이 21세기를 맞은 관객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화양연화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첸과 차우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 때가 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첸과 차우가 '순수'하기 때문 아닐까?



유메지 테마


고통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지만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첸과 차우는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가장 순수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을 내려놓고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언제라고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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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운 영화감독 caraxx@gmail.com

연세대학교 졸업

2008 영화 달려라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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