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이종범의 '눈물과 은퇴' 그리고 '해설가 도전'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2.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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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이 2012년 5월 2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겸 은퇴식에 앞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OSEN





시간은 지난 2009년 10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태 시절 9차례, 그리고 모기업이 바뀐 후 KIA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거즈는 마침내 한국시리즈 'V10'의 위업을 달성했다.


지금은 그 찬란했던 빛을 잃어가고 있으나 야구 명문 KIA 타이거즈를 상징하는 선수가 이종범이었다. 조범현 감독의 지도 하에 10번째 우승을 차지한 KIA는 10월 28일 광주구장에서 팀 마무리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훈련 첫날 이종범이 '최근 2년간 겪은 고생, 어려움, 팀 우승의 영광이 겹치며 많이 울었다'고 밝혔다.

이종범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1993, 1996, 1997년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로 떠났다가 2001시즌 중 복귀했다. 그리고 타이거즈 선수로는 1997 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과연 타이거즈로 돌아온 후 어떤 일이 있었기에 '불혹(不惑)의 나이를 목전에 둔 1970년생, 39세의 이종범이 눈물까지 흘리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냈다.


개인적인 문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외형적으로 이미 드러났던 것들부터 짚어 보았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첫 번째가 부상 등의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고 두 번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은퇴 권유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 이종범이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0번째 우승을 달성한 후 정상의 자리에서 명예롭게 은퇴를 할 것이라는 분석과 추측도 나왔다. 이에 구단이 그 기회를 반드시 줘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까지도 관계자들은 잘 알겠지만 정말 우여곡절 끝에 이종범은 2009시즌에도 현역에서 뛰면서 ‘V10’의 감격을 어린 후배들과 누리게 됐다.

KIA 타이거즈의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후 글쓴이는 여러 각도로 이종범이 앞으로 어떤 야구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한국 야구에는 물론 본인에게 가장 바람직한가를 생각해보았다. 길은 정확하게 두 갈래였다. '화려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은 지도자 수업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은 뛸 수 있다는 신념과 각오로 1년 더하는 것을 선택하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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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4일. KIA가 나지완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2009년 프로야구 챔피언에 등극하며 'V10'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종범을 헹가래치고 있는 KIA 선수들. /사진=OSEN





이종범은 2009한국시리즈 우승 후 마무리 훈련 첫날 ‘내년 시즌에도 후배들을 이끌어 우승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겠다. 체력적으로 1년은 충분히 더 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우승을 바탕으로 2008 시즌 후 은퇴 직전까지 가기도 했던 이종범은 팀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 시켜주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고 1년 더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 글쓴이는 ‘과연 이종범이 한국시리즈 우승 후 자신의 명예로운 은퇴 시점을 심각하게 고민했는가?’ 궁금해 했다.

2009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벌어진 안타까운 일들 중의 하나가 히어로즈의 전준호 방출이었다. 통산 550개의 한국 프로야구 최다 도루 기록을 가지고 있고 2000경기 이상 출장, 2000안타 돌파 등으로 철저한 체력 관리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그는 마치 밀려나기라도 하듯 쓸쓸하게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전준호는 팬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밝혔다. 프로야구에 남긴 족적(足跡)만큼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오판으로 그 시점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해 전준호의 나이가 40세였다. 그는 1969년생이다. 이종범은 한 살 적은 1970년 생, 39세였으며 이종범은 2010년에 전준호의 나이가 되는 때였다.

2009년 페넌트레이스를 돌아보면 한화 송진우의 은퇴 경기가 9월 23일 대전에서 열렸다. 1966년생인 그는 43세에 현역에서 물러나게 됐다. 소속팀인 한화는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을 맴돌았고 결국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3할 대 승률을 기록하며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의 은퇴 경기를 접하며 송진우가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은퇴 기회는 사상 첫 3000이닝을 돌파한 4월 9일 두산전 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200승, 2000 탈삼진을 넘어선 그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대기록을 작성한 후에 곧 바로 명예로운 결단을 내렸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아쉬움을 글쓴이는 가지고 있다.

이종범이 과연 어떤 시점에 은퇴 결단을 내릴 것인가 주목을 했던 이유가 송진우, 전준호 등 한국프로야구 레전드급 선수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더욱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은퇴 소식은 그 후로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이종범은 2010년,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불혹의 나이에도 그라운드에서 후배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팬들은 한국 야구가 낳은 '대 선수' 이종범이 더 이상의 눈물 없이 아름답게 그라운드와 이별을 고할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며 그를 성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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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사진=뉴스1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이종범은 스스로 유니폼을 벗게 됐다. KIA 타이거즈는 2011시즌 페넌트레이스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SK에 패했고 KIA 구단은 1년 계약 기간이 남아 있즌 조범현 감독을 10월18일 전격 경질하고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선동렬 전 삼성 감독을 영입했다. 이종범으로서는 타이거즈 왕조(王朝)시대를 함께 했고 광주일고 대 선배인 선동렬 감독과의 재회는 가슴이 뛰는 기쁨이었다.

이종범은 은퇴 고민을 접어 두고 새로운 사령탑, 선동렬 감독과 마무리 훈련을 함께 하고 2012년 스프링캠프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시즌 개막을 목전에 둔 4월 1일, 만우절 같은 '이종범 은퇴 선언' 기사가 터져 나왔다.

선동렬 감독과 구단은 '플레잉 코치'를 제안했다는 등 여러 분석과 추측이 나왔지만 이종범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은퇴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이종범은 그라운드를 떠났고 2012시즌 후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복귀한 김응룡 감독 코칭스태프의 일원이 돼 코치로 돌아왔다. 김응룡 감독의 부름에 흔쾌히 응한 것도 '타이거즈 왕조'를 함께 열었던 인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룡 감독도 한화를 살려내지 못하고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김응룡 감독의 후임이 김성근 감독이다. 이후 이종범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방송 해설가로의 변신이다. 그는 올 시즌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으로 팬들을 만난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사실상 처음으로 '타이거즈 전설'을 벗어나 혼자가 됐다. 선수 때나 코치 시절, 주위에는 함께 땀을 흘리는 동료 선후배들이 있었다. 그러나 방송 해설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이종범이 방송 해설에서 '전설'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명한 결단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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