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야신(野神)’ 김성근과 ‘전신(戰神)’ 조훈현의 숙명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6.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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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의 좌우명 일구이무(一球二無). /사진=김성근 감독 자필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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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의 좌우명 무심(無心). /사진=조훈현의 저서 '고수의 생각법'






‘야신(野神)’이라 불리는 한화 김성근(73) 감독이 5연패를 당한 21일 마산구장 한화-NC 다이노스전을 TV 중계로 지켜보면 ‘야신’도 생각처럼 안 풀리는 야구를 놓고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다. 김성근감독은 OB 베어스 감독(1984~1988년) 시절 팀의 포수였고 야구 제자이자 후배인 김경문(57)감독에게 한화의 시즌 첫 ‘3연전 전패’를 당했다.

한국 바둑계에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필적할 만한 승부사 조훈현(62)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별칭은 ‘전신(戰神)’이다. ‘싸움의 신(神)’이라고 바둑계가 붙여준 수식어로 ‘내일이 없는 야구’를 하는 김성근감독에게도 어울린다.

‘전신(戰神)’ 조훈현이 15일 에세이집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출판했다. ‘고수(高手)’라고 하면 어느 정도 수준일까? 기본적으로 ‘야신’ 김성근감독과 ‘전신’ 조훈현은 야구와 바둑에서 ‘고수’의 반열 위에 올라서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공통적으로 ‘신(神)’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수(高手)’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수가 높은 사람’, 혹은 ‘어떤 분야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고수는 ‘인간계(人間界)’의 영역이다.


‘싸움의 신’인 조훈현은 1990년 2월2일 자신과 함께 살며 바둑을 배운 제자인 이창호에게 반집 차로 패했다. 제29기 최고위전이었다. ‘전신(戰神)’도 패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1995년에 이창호에게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던 대왕 타이틀을 빼앗겨 ‘무관(無冠)의 신(神)’이 되고 말았다.

이창호에게 첫 패배를 당한 1990년 이창호의 나이는 15세였고, 1953년 생인 스승 조훈현은 37세였다. 22살 차이가 났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한화는 6월2~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주초 3연전에서 넥센에 1승2패로 뒤졌다. 당시 넥센 염경엽 감독은 선발 투수 한현희에게 5이닝 투구 기회를 주지 않고 동점 상황에서 일찍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김성근감독은 “참 대단한 힘으로 맞붙어 왔다. 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 붓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야신’ 김성근감독이 졌다.

그런데 1942년 생 김성근감독과 1968년생인 염경엽 감독의 나이 차이가 26살이다. 비록 짧은 3연전이었지만 한화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에 복귀한 김성근 감독은 ‘감독 염경엽’과 맞붙게 됐고 번번히 힘든 경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70대인 김성근 감독이 쌓은 ‘경험과 목숨을 건 야구’가 ‘젊고 힘이 넘치는 야구’에 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성근감독과 조훈현은 비슷한 점이 있다. 김감독은 재일교포였다. 그리고 전남 목표에서 태어난 조훈현은 9살 때 프로에 입단한 뒤 이듬해인 1963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스승이 세고에 겐사쿠(당시 74세)이다. 현재 김성근감독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모두 일본과 각별한 인연을 가졌다.

‘전신(戰神)’ 조훈현의 에세이집, 고수의 생각법을 살펴보았다.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더 멀리 예측하라’, ‘아플수록 복기해라’, ‘생각을 크게 열어라’, 사람에게서 배워라’ 등으로 장(章)이 구성돼 있다. 김성근감독의 야구와 같은 방향의 ‘생각법’이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그리고 ‘아플수록 복기하라’는 부분이다. ‘복기(復碁)’는 ‘한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해 두었던 대로 처음부터 다시 놓아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야구의 가장 핵심이 바로 ‘복기’이다. 그의 모든 전략과 작전이 전(前) 경기에 대한 복기에서 출발한다. 김성근감독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 투수가 던진 공이 커브인지 슬라이더였는지까지 복기해낸다.

마지막으로 ‘야신’ 김성근감독의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이다. ‘전신’ 조훈현은 ‘무심(無心)’이라고 했다. 그의 에세이집 ‘고수의 생각법’에는 자신이 직접 쓴 ‘無心’이 나온다. ‘일구이무’의 야구는 공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승부이다. 공 하나를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심(無心)’의 바둑은 어떤 승부인가. 조훈현은 ‘이겨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구이무의 야구’와 ‘무심의 바둑’에는 무엇인가 미세한 차이가 느껴지면서도 결국은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패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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