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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28,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AFPBBNews=뉴스1 |
타자/야수로는 처음으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어느덧 메이저리그에서 첫 해 반 시즌을 넘어섰다. 많은 기대는 물론 상당한 우려 속에서 시작됐던 데뷔시즌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다.
현재까지 그의 시즌 성적을 보면 총 68게임에 출전, 타율 0.263에 4홈런, 27타점, 23득점, 5도루, 출루율 0.338, 장타율 0.378, OPS 0.716을 기록하고 있다, 솔직히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준의 기록은 못되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럽다고 할 수도 없는, 한마디로 ‘무난한’ 성적이다, 당초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 좋아질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시즌을 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소속팀 역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총 162게임 시즌에서 8일(현지시간)까지 총 84경기를 치러 이미 시즌의 반환점을 돈 피츠버그는 시즌 성적 50승34패로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빨리 시즌 50승 고지에 올라섰다. 하필이면 가장 먼저 50승 고지에 오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55승30패)가 같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팀이어서 4.5게임차로 뒤진 채 지구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지금 페이스라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난할 전망이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첫 시즌부터 가을야구 무대를 밟게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빅리그 무대에서 나타난 강정호의 모습을 살펴보면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비춰졌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피츠버그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팀들이 강정호에 관심을 갖게 만든 시발점은 지난해 넥센에서 시즌 40홈런을 치며 보여준 그의 상당한 파워 잠재력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그의 파워숫자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시즌 첫 84게임에서 때린 홈런은 4개로 이 추세를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시즌 두자리수 홈런도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한국 무대에서 40홈런을 때린 ‘거포’였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는 숫자다. 물론 그가 시즌 초반 경기 출전시간이 들쭉날쭉 했던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최근 들어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으로 나온 홈런이 지난 6월17일이었다는 점에서 최소한 홈런부문에서만큼은 기대(욕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강정호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홈런포가 터지기만 목타게 기다리는 1차원적 선수가 아니란 사실에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수비에서 그는 지금까지 유격수와 3루수는 물론 2루수까지 소화하며 어디에 배치해도 야수로서 제 몫을 해내는 말 그대로 ‘유틸리티 플레이어’(만능선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초반 주전 유격수인 조디 머서가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였을 때 주로유격수로 나서 제 몫을 해냈고 머서가 점차 타격감이 올라오자 주로 3루수로 뛰며 공수에서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유격수로서 그의 능력에는 물음표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지만 3루수로서는 벌써 ‘믿을만하다’(dependable)는 평가를 얻었다. 빠른 순간 반응능력과 결정력은 물론 다이아몬드를 가로지르는 1루 송구 능력에 있어서도 충분한 메이저리그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피츠버그 주전 3루수인 조시 해리슨이 왼손 엄지손가락 인대파열로 수술을 받고 약 2개월여 결장하게 됐지만 이에 대해 팀 내에서 특별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강정호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욕심만큼 홈런은 나오지 않고 있어도 타자로서 그의 활약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고비에서 놓치지 않고 득점타와 진루타를 때려주고, 때론 끈질긴 타격으로 상대 투수를 괴롭힌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씩 터지는 장타들은 그의 파워 잠재력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클린트 허들 감독이 최근 빈번하게 강정호를 팀의 4번타자로 기용하고 있는 것도 그의 이 같은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아직 완전히 터지지 않고 있는 그의 거포 본능을 깨우자는 뜻도 함께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압박하는 모습은 강정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홈런타자로 인식됐던 강정호는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현재까지 홈런(4)보다 도루(5) 수가 더 많다. 물론 이 정도 도루를 가지고 발 빠른 선수라고 명함을 내밀 수는 없지만 꼭 도루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한 루를 더 넘보는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는 그를 ‘뚜벅이’ 선수라고 생각했던 피츠버그 구단과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피츠버그가 5연승 행진을 이어간 8일 샌디에고 파드레스전은 바로 강정호의 이 같은 장점들이 고루 드러난 케이스였다. 피츠버그는 이날 샌디에고 선발 앤드루 캐시너의 위력적인 투구에 6회까지 단 1안타로 꽁꽁 묶이며 끌려갔지만 2회 1득점에 이어 7회 1점, 8회 3점을 뽑아 5-2로 역전승을 거뒀고 이 3차례 득점과정엔 모두 강정호가 있었다. 강정호는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센터쪽으로 빠지는 안타를 때렸고 타구가 다이빙한 유격수의 글러브에 맞고 센터 쪽으로 굴러가자 지체없이 2루로 달려 단타성 타구를 2루타로 만들어냈다. 빠른 판단력과 발로 단타를 2루타로 늘린 강정호는 후속 타자들의 내야땅볼과 외야플라이로 홈에 들어와 팀의 첫 득점을 뽑아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력과 발이 만들어낸 팀의 첫 득점이었다. 피츠버그가 6회까지 강정호의 안타와 득점 외엔 캐시너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점수였다.
강정호는 7회 동점 득점 과정에서도 제 몫을 했다. 무사 1, 2루에서 비록 안타를 치진 못했으나 센터쪽에 깊숙한 외야플라이로 2루 주자가 3루로 갈 수 있도록 했고 그 주자가 내야땅볼로 홈을 밟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8회말엔 2사 후 볼넷 2개와 2안타로 4-2로 경기를 뒤집은 상황에서 타석에 나서 좌중간 적시타로 쐐기타점을 뽑아내며 승부에 못질을 했다. 화려하진 않아도 영양가 만점짜리 활약이었다.
강정호는 이제 시즌 중반 또 한 차례 고비를 맞고 있다. 해리슨이 부상으로 약 두 달여동안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포커스가 그에게 맞춰지게 된 것이다. 강정호가 해리슨의 결장기간동안 3루수로 풀타임 출전하면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가 장기적으로 그의 빅리그 선수로서 거치를 입증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가 이 기간동안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해리슨의 공백을 아무런 타격없이 넘길 수 있도록 해준다면 메이저리거로서 롱런할 수 있는 완벽한 토대를 쌓게 될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다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강정호는 최근 구단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내 성적에 만족하지 못한다”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보다는 더 잘 해야 한다”고 못 박아 말했다. 그동안 “더 많은 경기에 나갈수록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해왔던 강정호가 이제 붙박이 주전 3루수로 나설 기회를 잘 살려 빅리거로 롱런의 기틀을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