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선동렬 감독에게 햄버거는 어떤 의미일까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8.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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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롯데 양승호 감독(왼쪽)과 함께 여자 야구 재능기부에 나선 선동렬 감독이 햄버거를 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자신을 낮추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사진=스타뉴스





1904년 시작된 한국야구 111년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傳說) 선동렬(52) 전 삼성 KIA 감독이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햄버거' 하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선린인터넷고 인스트럭터인 투수 후배 안병원이 콜라를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자 물을 마시면 된다고 말린 뒤 "참 오래간만에 햄버거를 먹는다. 언제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맛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기도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한국여자야구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 야구 재능 기부를 위해 기꺼이 나선 선동렬 감독은 여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햄버거로 때웠다.

선동렬 감독의 갑작스런 방문에 이날 2군 퓨처스리그 경기를 위해 챔피언스파크를 찾은 두산 이상훈 코치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았고 해태 시절 6년이나 선동렬 감독과 한 방에서 생활한 1년 후배 차동철 현 건국대 감독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단체 생활을 할 경우 '방졸'이라는 표현이 있다. 두 명이 한 방을 쓸 때 '선배를 모시는 후배'를 말한다. 차동철 감독은 "제가 선동렬 감독님의 6년 '방졸'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선동렬 감독의 '방졸'이었다는 것도 그 누군가에게는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추억이 돼 있다.

선동렬 감독은 김응룡 감독이 사령탑이었던 해태 타이거즈 선수 시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제패 타이 기록이 지난해 삼성에 의해 세워졌고, 류중일 감독의 삼성은 올 시즌 5년 연속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건국대 차동철 감독은 선수로서 현재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해태에 이어 1990년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돼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LG 트윈스 사령탑은 백인천 감독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여자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 오후 6시가 돼 끝났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차동철 감독이 선동렬 감독도 "처음 들었다"고 한 비화를 털어 놓았다. 놀라운 얘기였다. 차동철 감독은 "제가 선동렬 감독님의 방졸로 해태 투수 생활을 할 때 감독님의 아버님이 따로 제게도 아무도 모르게 보약을 해주셨다. 아버님은 '동철아 네가 힘내서 잘 던져야 팀도 우승하고 내 아들, 동렬이도 무리하지 않게 될 것 아니냐'며 보약을 챙겨주셨다"고 했다. 선동렬 감독은 이 말에 숙연해지며 "그런 일이 있었네"라면서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고 선판규씨)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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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감독이 1일 국가대표 여자 상비군 훈련에서 직접 배팅볼을 던져주고 있다. 여자 선수들은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다. /사진=스타뉴스





글쓴이는 선동렬 감독이 햄버거를 마지막으로 먹은 때를 1999년 12월로 기억한다. 그 후 사석에서 기회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선동렬 감독은 그해 '나고야의 태양'이라고 불리며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스를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선수단과 함께 미국 라스베가스, LA 여행을 왔다.

당시는 선동렬 감독이 은퇴를 발표한 후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를 기다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설득했다. 선동렬 감독은 가족들과 LA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관광하고 보스턴 행 추진에 나선 박찬호의 전 에이전트 스티브 김을 LA 코리아타운에서 만났다.

보스턴 구단은 팀의 마무리 투수 톰 고든이 부상을 당해 2000시즌을 앞두고 비상이 걸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 자리에 올랐고 36세의 나이에도 시속 150㎞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선동렬이 간절히 필요했다. 보스턴은 최선의 조건을 제시했으나 선동렬 감독은 결국 은퇴를 단행했다. 그리고 그라운드를 떠나 2000년 한국야구위원회 홍보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상황도 비슷하다. 선동렬감독은 지난 10월 KIA와 2년 재계약을 했다가 자진 사퇴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무엇보다도 가족, 그리고 거금을 제시한 메이저리그의 유혹에서도 지켜낸 자신의 명예와 품격(品格)이 중요했다.

선동렬 감독은 현재도 주니치 드래곤스의 연고지인 일본 나고야의 홍보대사이다.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한국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인스트럭터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데 선동렬 감독과 함께 나고야를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양승호 감독은 "선동렬 감독이 공항에 도착하면 '마이바흐'가 대기했다가 모신다"고 했다. 마이바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세계적인 명차이다.

그러나 선동렬 감독에게는 그 누구의 접대를 받는 것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더 중요하다. 햄버거 하나를 먹고 8시간 가까이 선수들과 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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