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한화 김성근감독의 숙제 '배영수 살리기'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10.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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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성근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김성근(73)감독을 영입해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던 한화의 '불꽃'은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10월3일 kt전 패배로 스스로 꺼졌다. 3년 연속 최하위에서 탈출했으나 5위 와일드카드를 SK에 내주고 6위로 마감했다. 이제 다시 김성근감독의 한화 2년 차 마무리 훈련이 남아 있다. 한화는 최종전인 3일 kt전이 열린 kt위즈파크 수원구장 2만석을 매진시켰다. 한화 팬들이 대거 원정 경기까지 오렌지색 물결을 이루며 한화의 최종전을 함께 했다.


피를 말리는 접전을 매 경기 펼치며 144경기까지 이끌어 온 김성근감독은 거의 탈진한 표정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까지 마치고 밤 늦은 저녁 식사를 혼자 했다. 과연 김성근감독은 그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화 김성근감독은 시즌 내내 혹사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 어떤 전문가도 대안은 결코 제시 못했다. 팀 성적이 꼴찌를 해도 혹사는 안된다는 것도 아니었다. 성적도 내고 혹사도 하지 말라는 모순을 노출했다.

한화는 3일 최종전 선발조차 없어 상무에서 갓 제대한 김용주를 한번 더 선발 등판시켰다. 그러나 김용주는 1-1로 팽팽하던 4회말 선두 타자 kt 댄블랙을 볼넷으로 진루시켰고 한화는 곧바로 배영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34세의 베테랑 우완 정통파이자 현역 최다승 투수(128승)인 배영수는 혼신의 투구로 6회말 투아웃까지 1-1, 승부를 이어갔으나 kt 김상현에게 비거리 125m의 중월 결승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박경수를 볼넷으로 진루시킨 후 송창식으로 교체됐다. 송창식마저 kt 장성우에게 좌월 2점 홈런을 내줘 한화의 꺼져가는 불꽃에 찬물을 끼얹었다.


배영수가 자신의 올시즌 11패째이자 통산 109패째를 당한 경기였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배영수는 3년 총액 21억5000만원에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김성근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책임져줄 것으로 믿고 그를 한화로 데려왔다. 그러나 성적은 4승11패에 평균 자책점 7.04였다. 한화의 최종전 패전 투수도 배영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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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배영수.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김성근 감독은 마지막 경기에서 쉽지 않은 '겨울 방학 숙제'를 받았다. 배영수 살리기, 혹은 구하기다. 올시즌 구위라면 배영수는 더 이상 선발 투수로 활약하기 어렵다. 패스트볼 스피드가 130km대로 떨어졌고 슬라이더 역시 밋밋하다. 김성근감독은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컷 패스트볼도 익혔는데 제대로 쓰지를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1981년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한화의 일본인 니시모토 타카시 투수코치도 배영수를 살려내지 못하고 시즌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제 숙제는 김성근감독에게 남겨졌다 가장 큰 문제는 패스트볼 스피드 회복이다.

글쓴이는 김성근감독이 메이저리그 아시아 출신 최다승 투수 박찬호(42)를 인스트럭터로 초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배영수 살리기에는 박찬호만큼 적임자가 없다. 박찬호는 한화에서 1년을 뛴 뒤 은퇴했다.

실제로 박찬호는 2008년 LA 다저스에서 재기에 성공해 불펜 투수로 주로 뛰며 팀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박찬호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투구 스피드 회복이었다.

1973년 생으로 2008년 35세였던 박찬호는 시즌 중반에 접어든 6월5일 콜로라도전에서 예상치 못한 시속 158km(98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져 화제가 됐다. 일회성이 아닌가 했더니 사흘을 쉬고 등판한 9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도 154km(96마일)를 쉽게 기록했다. 8회 컵스 4번 아라미스 라미레스부터 5번 후쿠도메 고스케, 6번 지오바니 소토 등 3타자를 상대하면서 모두 10개의 파울볼이 나왔는데 이중 5개가 153km(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에 의한 것이었다.

박찬호는 경기 후 자신의 볼 스피드가 1997년으로 돌아갔다고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당시의 스피드 감은 무려 11년 전 LA 다저스에서 처음으로 5선발 투수가 돼 14승8패, 평균 자책점 3.38을 기록할 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때 한화의 사령탑이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감독인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었다. 김인식감독은 박찬호의 볼 스피드 회복에 대해 ‘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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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시절 박찬호. /사진=뉴스1





박찬호는 그 배경에 대해 “무엇보다 이제야 비로소 몸 전체의 건강이 회복된 것이 가장 큰 이유 같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시절이었던 2006년8월24일 소장 출혈을 막기 위해 메켈게실을 도려내고 조직을 접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박찬호가 말하는 건강 회복은 수술 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메켈게실 이상이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체력이 저하되고 스트레스가 커진 2000년대 초반부터 부정기적인 출혈이 계속 반복됐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오래 지속된 건강 문제가 겨우 정상으로 돌아와 볼 스피드도 빨라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이다.

건강 다음으로 결정적인 이유는 허리 근력 강화 운동 효과이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마지막 해였던 2001년부터 허리에 이상이 왔으나 특유의 근성으로 버텼다. 그러나 결국 허리가 문제가 됐고 이후 그의 웨이트트레이닝에서 허리 강화 훈련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허리에 무리가 올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대신 하체 훈련만 집중적으로 했다. 그러다가 2007시즌을 마치고 겨울 동계 훈련에서 박찬호와 이창호 개인 트레이너는 허리 강화 훈련을 다시 추가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방법은 역기를 어깨에 메고 하는 스쿼트이다. 박찬호는 “하체 훈련만 했을 때와는 투구할 때 느낌부터 다르다. 하체가 강해도 허리가 받쳐주지 않으면 몸 전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 스피드를 낼 수 없다. 그런데 2008시즌에는 스쿼트 덕분인지 허리가 하체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찬호는 톰 하우스와 함께 USC 대학에서 조율한 기술적인 부분의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다른 각도에서도 설명했다. 당시는 자신이 불규칙하게 구원으로 마운드에 오르기 때문에 힘이 비축돼 있어 스피드가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글쓴이가 박찬호를 배영수 인스트럭터로 떠올린 것은 배영수가 2006년 8월2일 대구구장에서 시속 155km의 패스트볼에 144km에 달하는 슬라이더를 구사한 전형적인 패스트볼 투수였기 때문이다. 박찬호 스타일이었다. 그런 위력적인 구질로 삼성을 2006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뒤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아직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같은 좌절의 기간을 박찬호도 겪고 나서 부활했기 때문에 배영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계속>

박찬호가 밝힌 기술적인 접근 방식은 다음 기회에 체인지업에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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