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이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활용한 씁쓸한 방식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10.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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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스틸


'연애의 온도'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노덕 감독이 두 번째 상업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이하 특종)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특종'은 광고주를 비판했다가 잘릴 위기에 놓인 방송사 기자(조정석)가 연쇄살인범과 관련한 희대의 특종으로 단숨에 주가가 최고조로 올랐다가 그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노덕 감독의 전작 '연애의 온도'의 감성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당황스러울 정도로 사뭇 다르다. 특종과 속보 경쟁에 목을 매는, 그래서 오보라도 밀어붙이면 사실이 된다는, 그런 언론의 속성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로 잘 버무렸다.

기자 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특종'에 관해 일반 관객들과 좀 다른 반응들이 더러 들린다. 몇몇 기자들 중에선, 특히 고참급들 중에선, '특종'이 기자를 너무 양아치로 그린다는 볼 멘 소리를 하곤 한다. 언론사 풍경이 사실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도 많다.

비판의 대상에 언론이라고 없을 순 없다. 그렇게 따지면 '부당거래'는 경찰에 최악의 영화일 것이며, '베테랑'은 재벌 총수들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실에 보다 근접한 걸 보고 싶다면 다큐멘터리를 찾는 게 더 났다.


기자 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특종'에서 좀 더 눈에 띄는 게 더러 있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활용법이다. '특종'에는 실제 언론사 사명 중 한겨레와 조선일보만 정식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조정석이 일하는 방송사, 아마도 종편일 언론사 이름조차 CNBS다.

영화에 실제 언론사 제호가 등장하기 위해선 제작 전에 해당 언론사와 협의를 거친다. 제호만 등장할지, 사옥도 등장할지, 지면에 영화 속 내용이 담길지 등등을 협의한다.

'특종'에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등장하는 건 이런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한겨레는 영화 초반 중요한 소품으로 쓰인다. 한겨레는 조정석이 발견한 연쇄살인범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를 그대로 1면에 받는 언론사로 등장한다. 다른 언론사가 특종으로 터뜨린 걸, 그대로 1면에 받는다는 건 그만큼 희대의 특종이란 뜻이다.

물론 그게 맞는 건지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받아 쓴 언론사지만 한겨레는 나름 신뢰의 상징으로 쓰인다. 조정석은 자신의 기사를 1면에 받아 쓴 한겨레를, 이혼 위기에 놓인 만삭인 아내에게 자랑하려 들고 간다. 한겨레까지 받아 쓴 특종을 썼다는 자랑인 셈이다.

이 특종이 희대의 오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메모란 게 알고 보니 '량첸살인기'라는 가상의 중국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가 쓴 것이란 사실은 영화 초반 바로 등장한다. 딱히 스포일러랄 것도 없다.

이게 희대의 오보인 줄도 모르고, 다른 언론사들은 타사의 단독 후속기사에 우왕좌왕하고, 경찰의 브리핑을 그저 받아쓰기에 급급하다. 한겨레도 그 중 하나다. 경찰이 지목한 사건 현장을 쫓는 언론사들의 차량 중 한겨레가 눈에 띈다.

신뢰의 상징조차 다른 언론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언론사 중 하나로 전락한다.

압권은 마지막 조선일보다. '특종'에서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슈몰이가 중요하고, 사실의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갈파한 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광화문 언론사 전광판은 조선일보의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도 의미심장하다. 양 극단에 놓인 두 언론사의 활용법, '특종'이 비판하는, 어쩌면 지금 관객들이 바라보는 언론의 모습인 것만 같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11월에는 언론을 다룬 또 다른 영화도 등장한다. 연예 매체를 배경으로 한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가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기레기의 상징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소문까지 파다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씁쓸하지만, 그것도 역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언론의 한 단면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역시 11월에 개봉하는 '내부자들'에서도 기자는 사회의 어둠에 일조하는 그런 인물로 나온다. '내부자들'은 '미생'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동명웹툰을 영화화한 작품. 사회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고 있는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날카롭게 해부한 범죄드라마다. 사회에 영향력이 큰 보수신문의 논설위원이 악의 축인 내부자들 중 한 명이다.

기자란, 언론사란, 이제 신뢰의 상징에서 그만큼 멀어지고 있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죄스러울 뿐이다.

한동안 영화 속에서 기자는, 진실을 찾아 거대 권력과 싸우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다뤄졌다. 아니면 조금 부패하거나 무능했다.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TV드라마나 영화가 유독 흥행이 안된 데는 그런 전형적인 기자상도 한몫을 했다. 바라고는 있지만 현실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어느새 기자는 파랑새 같은 존재가 됐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들 속 기자들은 극악하다. 대중이 기자를 바라보는 눈높이다. 씁쓸해도 사실이다.

경찰이 살인까지 서슴치 않았던 '부당거래'에서 경찰이 재벌 3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테랑'이 나오는 데까지 5년이 걸렸다. 기자가 다시 대중문화에서 정의로운 직종으로 돌아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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