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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역' 스틸컷 |
최근 한국 영화 속에 사실적으로 풍자된 사회 현상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 언론, 경찰과 정부 등 권력을 향한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묘사가 관객들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서울역'(감독 연상호)에서는 갑자기 창궐한 좀비떼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찰들은 원인을 밝히려는 조사나 대화 노력 없이 경찰 버스로 벽을 치고 사람들을 막아섭니다. 사람들은 좀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소리를 치고 버스를 넘으려고 하지만, 경찰은 이들이 시위를 한다고 생각하고 물대포를 쏘며 막습니다. 생존을 위한 외침을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물대포를 쏘는 모습은 9시 뉴스에서 익히 봤던 장면과 오버랩 됩니다.
주인공 혜선과 노숙자들이 좀비에게서 도망쳐 달려간 경찰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좀비떼가 단지 불만에 찬 노숙자 시위대라고 생각한 경찰은 자신의 총을 좀비가 아닌 노숙자에게 겨눕니다. 좀비떼에 쫓기고 경찰 앞에서 막힌 상황에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나는 평생을 국가를 위해 일했다. 모든 것은 빨갱이들의 잘못이다"라고 외치는 노인을 볼 때면, 씁쓸한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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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터널' 스틸컷 |
영화 '터널'에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언론은 생존자의 목숨보다 단독 취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인공 정수(하정우 분)가 터널을 곧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구조대원의 이야기에 "하루만 더 버티면 신기록을 깨는데 아깝다"라고 말합니다. 또 구조를 위한 드론 작전을 촬영하기 위해 작전을 시행하는 구조대원들에게 "앞이 안 보이니 좀 앉으라"고 말해 헛웃음을 유발합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 취재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장관님'으로 나오는 김해숙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생존자를 구하는 자체보다, 생존자를 구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그 공을 내 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은 여느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터널에 갇힌 남편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내 세현(배두나 분)과 함께 줄줄이 인증샷을 찍는 장면은 말 그대로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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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터널' 스틸컷 |
오는 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그랜드파더'에도 공권력을 향한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월남전 전쟁에 참여해서 훈장까지 받았던 기광(박근형 분)은 고엽제 피해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지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이 됐지만, 나라에서 그에게 해주는 것은 참전 군인들에게 주는 수당 8만원 뿐입니다. '왕년에' 나라를 지키며 총도 쐈지만, 남은 것은 병으로 인한 고통과 잔인한 기억들 뿐입니다.
영화 속 기광은 자살로 결론 난 아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여겨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지만 거절당합니다. 끈질기게 담당 경찰을 쫓아다녀도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냉대 뿐입니다. 이후 기광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또 한국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내몰린 손녀를 위해 복수를 결심합니다.
사냥꾼용 엽총을 들고 복수를 감행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수하라는 경찰의 설득에 "내가 경찰에 가서 아무리 말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외침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이처럼 최근 한국 영화는 언론이나 경찰 그리고 정부의 모습은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풍자를 보며 그냥 웃어 넘기는 것이 아니라, 뜨끔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