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리치 힐의 '퍼펙트' 만류한 로버츠 감독의 속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9.1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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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힐 /AFPBBNews=뉴스1


7회까지 퍼펙트게임 행진을 이어가던 LA 다저스의 선발투수 리치 힐이 단 89개의 공을 던진 상태에서 교체돼 역사적인 대기록을 달성할 기회가 무산된 것이 계속해서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퍼펙트게임이란 기록이 150년에 육박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무려 40만회가 넘는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단 23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그야말로 엄청난 대기록이기에 과연 아무리 감독이라고 해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기록을 앞둔 선수의 도전을 포기시킬 권리가 있느냐, 또한 팀의 필요가 반드시 선수 개인의 위대한 업적보다 우선해야 하느냐는 등 갖가지 논란이 끊이지 있다.


이에 대해 LA타임스는 12일자에서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 보도했다. 이 기록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로버츠 감독이기에 더욱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또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필연적으로 지적과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전후사정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LA타임스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지난 토요일 밤(현지시간 10일) 다저스 불펜에 설치된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들리자 10여명의 불펜투수들은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울리는 전화기 쪽을 돌아봤다. 선발투수 리치 힐이 퍼펙트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제 겨우 6이닝이 끝났는데 불펜 전화가 울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스 스트리플링을 비롯한 불펜투수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불펜코치를 지켜봤다.

스트리플링은 “전화가 오자 우리는 모두 ‘도대체 지금 전화할 일이 뭐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집(Blister)이 어떻고…’라는 말이 들렸고 우리는 모두 ‘오! 노. 정말 운도 없네’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7이닝을 마친 뒤 힐을 마운드에서 내리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린 지 12시간 이상이 지난 일요일 아침에도 다저스 클럽하우스 안은 큰 실망감과 허탈함감에 무겁게 눌려 있었다. 힐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24번째 퍼펙트게임을 완성할 찬스를 잃은 것은 물론 단 89개의 공을 던진 상황에서 퍼펙트게임을 유지한 채 7회 이후에 강판된 사상 첫 번째 선수가 되는 달갑지 않은 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을 내린 책임은 로버츠 감독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구단 프론트의 지지와 맥주 여러 병의 ‘도움’에도 불구, 토요일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는 몇 달 전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노히터 행진을 이어가던 스트리플링을 교체한 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화를 냈던 아들 콜(15)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결정에도 화가 났는지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콜은 아버지에게 이번엔 화를 내지 않았다고 밝혔고 로버츠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요일에 시리즈 최종전을 위해 경기장에 나올 수 있었다.

지난 8월1일 트레이드로 다저스에 온 힐은 왼손 손가락 물집으로 인해 트레이드 당시에도 부상자명단(DL)에 올라 있었고 이로 인해 다저스 데뷔가 계속 늦어져 지금까지 3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다저스의 트레이닝 스태프들은 힐의 손가락에 물집이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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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 /AFPBBNews=뉴스1


로버츠 감독은 일요일 경기가 끝난 뒤 전날 상황에 대한 여러 보도에서 나온 잘못된 사안들을 해명하길 원했다. 우선 그는 “트레이너들이 힐의 손가락에서 물집의 전조현상인 ‘열점’(heat)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힐은 마운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부상 악화 가능성에 대한 구단의 우려를 뒤집지는 못했다.

트레이너들은 이날 매 이닝이 끝날 때마다 힐의 손가락을 점검했다. 힐은 이미 두 군데서 물집이 생길 증후를 보이고 있었다. 하나는 커브볼 때문에 악화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패스트볼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날 문제가 된 것은 패스트볼 물집이었다. 스태프는 손가락 검진과정에서 의심지점 피부가 매우 약해진 것을 발견했다. 로버츠 감독은 “그것은 본격적인 물집으로 변하는 것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징후였다”고 밝혔다.

로버츠 감독은 6회가 끝난 뒤 그때까지 75개의 공을 던진 힐을 마운드에서 내리기로 결정하고 불펜에 전화해 그랜트 데이턴에게 몸을 풀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힐은 로버츠 감독을 불러 함께 덕아웃에서 클럽하우스로 가는 터널로 자리를 옮긴 뒤 제발 자신을 경기에서 빼지 말아줄 것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로버츠 감독은 결국 7회에도 그를 마운드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회 힐은 또 다시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2사 후 다저스 좌익수 야시엘 푸이그는 좌중간 쪽으로 미사일처럼 날아간 마틴 프라도의 2루타성 타구를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 힐의 퍼펙트게임 꿈을 살려냈다. 하지만 그는 이 엄청난 호수비로 로버츠 감독의 혈압도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아마도 그때 로버츠 감독은 “도대체 젠 왜 저런 걸 잡고 난리야”라고 속으로 탄식했을 지도 모른다. -역자 사족>

7회가 끝난 후에 힐은 또 다시 로버츠 감독을 상대로 자신을 마운드에 계속 남겨줄 것을 간청했지만 이번엔 로버츠 감독이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힐은 덕아웃 뒤쪽 터널에서 분통을 터뜨린 뒤 8회부터 망연자실 한 채 덕아웃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구원투수 조 블랜튼이 8회말 2사 후 안타를 맞는 순간 합작 퍼펙트게임의 희망마저 날아간 실망감과 아픔을 억눌러야 했다.

경기 후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힐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로버츠 감독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실망감은 감출 수 없을만큼 완연했다. 또 로버츠 감독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게 화난 다저스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진정한 다저스 팬이라면 내 역할이 (선수 개인이 아니라) 구단 전체와 팀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리플링은 이번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입장이다. 그는 지난 4월8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8회까지 노히터 행진을 이어갔다. 메이저리그 데뷔전 노히터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그가 8회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투구수 100개를 기록하자 그의 건강과 팀의 승리를 위해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스트리플링은 지난 2014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었고 이날 경기가 그가 교체될 때까지 1점차의 박빙 승부였다는 것이 그 배경이었다.

다음 날 아침 스트리플링의 부친은 팀 호텔 로비에서 로버츠 감독을 만나 아들을 보호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스트리플링이 이젠 그날을 잊기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 5개월이 지난 현재도 수시로 트위터나 기자들로부터 그날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리치(힐)도 어제 퍼펙트를 완성할 수 있었을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그 사실은 항상 남아있을 것”이라면서 “그걸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끝없이 그걸 생각하며 계속 아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로버츠 감독은 이번 힐의 교체 결정에 대해 “만약 시즌 초반이었다면 그를 계속 던지게 했을 것”이라면서 “지난 2월부터 우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 위해 노력했다. 시즌을 2주 반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리치는 지금 메이저리그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투구를 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그런 그를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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