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on Air] '국민 감독' 김인식, 2017 WBC서도 '단기전의 신' 될까

오키나와(일본)=김우종 기자 / 입력 : 2017.02.1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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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대표팀 감독. /사진=김우종 기자





흔히들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잘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명예와 인기, 그리고 커리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단 한 번의 또 다른 기회조차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도 '백전노장' 김인식(70)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2015년 대표팀을 이끌며 '프리미어12' 야구 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한국은 일본(4강), 미국(결승)을 차례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특히 일본과의 4강전. 0-3으로 지고 있던 9회말 4점을 뽑으며 대역전승을 거뒀던 '도쿄대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중심에는 '단기전의 신'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김인식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생활은 사실 프리미어12 대회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또 한 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지난해 9월 한국야구위원회는 전임감독제 등을 고려했으나, 결국 김 감독의 경험을 믿고 대표팀 감독직을 요청했다. 김인식 당시 기술위원장 역시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25세에 어깨부상으로 은퇴한 김인식 감독은 배문고-상문고-동국대 감독을 거쳐 1986년 해태(현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프로 무대에서는 쌍방울 감독(1990~92), 두산 감독(1995~2003), 한화 감독(2004~2009.09)을 거쳤다.


국가대표팀과는 2000년 처음 연을 맺었다. 당시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의 코치로 선임, '드림팀'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다. 그리고 안방에서 승승장구한 끝에 결승에서 대만을 제압, 감격의 우승을 맛봤다. 1998년 방콕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두 번째 대회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단기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일본서 열린 1라운드에서 3전 전승을 따냈다. 이어 미국서 열린 2라운드에서도, 일본과 미국 및 멕시코를 제압하며 준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앞서 두 차례 모두 물리쳤던 일본에게 4강서 0-6으로 패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김 감독은 2009년 열린 제2회 WBC에서 또 한 번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의 지도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1라운드에서 일본을 1-0으로 물리친 뒤 2라운드에서도 멕시코와 일본을 연달아 제압했다. 마침내 준결승에서 베네수엘라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결승에서 3-5로 패배, 눈물을 흘렸다.

이후 김 감독은 한화 감독직을 끝으로 현장 일선에서 물러나 각종 위원장직을 맡았다. 기술위원장, 규칙위원장, 야구팀 창단 추진위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다. 그러다가 2015년 프리미어12 대표팀을 맡으며 또 한 번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뒤집고 우승을 일궈냈다. 김 감독 개인으로서는 2002년 이후 13년 만에 따낸 값진 우승이었다.

과연 이번 WBC는 어떨까. 여전히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대표팀을 감싸고 있는 상황. 과연 김 감독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궈내며 '단기전의 신'으로 등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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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 woodybell@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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