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송두리째 바꾼 신인 드래프트

[손건영의 올어라운드 스포츠]

손건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 입력 : 2017.04.1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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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AFPBBNews=뉴스1


신인 드래프트의 중요함은 종목을 불문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NBA에서는 1984년 신인 드래프트가 역사를 뒤바꾸어 놓았다. 7피트 센터 하킴 올라주원이 전체 1번으로 휴스턴 로키츠에 지명된 가운데 2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포틀랜드 블레이저스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마이클 조던 대신 7피트1인치의 장신 센터 샘 보위를 선택했다. 한 해 전 슈팅 가드 클레이드 드렉슬러를 뽑았기 때문에 조던을 건너 뛴 것이다. 현역 시절 잦은 부상에 시달린 보위는 통산 5,564득점, 3,845리바운드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반면 조던은 3만2,292득점을 올렸고, 자신을 3순위로 지명한 시카고 불스에게 6번이나 NBA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단 한 번도 올스타에 뽑히자 못한 보위와는 달리 조던은 14차례나 별들의 잔치에 참여했다. 정규 시즌 MVP 5차례, NBA 파이널 MVP 6차례 등 ‘농구의 신’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16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마이크 피아자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LA 다저스 소속으로 199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거머쥔 피아자는 올스타 12차례, 실버슬러거 10차례를 차지했다. 통산 타율 0.307에 427홈런, 1,335타점을 기록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공격형 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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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시절의 마이크 피아자. /AFPBBNews=뉴스1


하지만 피아자는 198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62라운드 1,390번째로 다저스에 지명됐다. 그 보다 늦게 이름이 호명된 선수는 고작 5명에 불과했다. 1988년 드래프트 동기로는 앤디 베네스(1번), 스티브 에이버리(3번), 그렉 올슨(4번), 로빈 벤추라(10번), 티노 마르티네스(14번), 찰스 내기(17번), 스캇 서비스 현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64번), 루이스 곤잘레스(90번), 에릭 캐로스(140번), 짐 에드몬즈(169번), 케니 로프턴(428번), NFL 선수를 병행한 디온 샌더스(781번), 마이크 매시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810번) 등이 있다. 나름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화려한 족적을 남겼지만 피아자만이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NFL에서는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5차례나 들어 올리며 슈퍼볼 MVP를 4차례나 수상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톰 브래디를 떠올릴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산 마테오에서 태어난 브래디의 어린 시절 우상은 전설적인 쿼터백 조 몬태나였다. 몬태나처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유니폼을 입는 것이 꿈이었지만 대학 진학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스탠포드 대학을 비롯해 USC, 캘리포니아 등 캘리포니아주의 풋볼 명문 대학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해 미시건 대학으로 진학해야 했다. 3학년 때부터 주전 쿼터백으로 발돋움하며 준수한 성적을 남겼지만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 199번째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간신히 지명됐다. 3일 동안 진행되는 드래프트에서 첫 이틀 동안은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것이다.

패트리어츠에는 당시 최다 연봉자였던 드류 블레드소라는 걸출한 쿼터백이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블레드소가 상대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당하자 브래디가 주전 쿼터백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시즌 막판 블레드소가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빌 벨리칙 감독은 브래디를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며 신뢰를 보냈다.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브래디는 15년째 패트리어츠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으며 자신의 우상 몬태나를 뛰어 넘는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8월이면 만으로 40세가 되지만 브래디는 은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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